[국내외 과거사 정리로 본 5·18의 과제] <8> 독일 나치범죄중앙수사국
2018년 10월 17일(수) 00:00
나치 부역자들 끝까지 찾아내 반드시 처벌한다

나치 범죄자를 추적하는 독일 나치범죄중앙수사국의 옌스 롬멜 국장이 문서보관소에 보관 중인 옛 나치 부역자 처벌 내용이 담긴 판결문을 소개하고 있다.

지난 2015년 8월 94세의 노인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독일 뤼네부르크 법정에 섰다. 그는 유대인이 학살된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근무한 전직 나치친위대 SS대원 오스카 그로닝(당시 94세)이었다.

나치 친위대에 입대하기 전 은행원이었던 그로닝은 2년 간 아우슈비츠에서 유대인들로부터 압수한 세계 각국 화폐를 독일 베를린으로 보내는 업무를 맡았다.

독일 검찰은 “그로닝의 업무가 나치 정권에 경제적 이득을 가져왔고 결국 유대인 학살에 힘을 보탰다”며 살인 관련 30만개 항목의 혐의가 있다고 봤다.

법정에서 그로닝은 단순한 행정업무 담당자였고 직접 유대인을 죽이지 않았으며 화장장에서 일한 적도 없기에 자신은 전쟁 범죄자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법정은 검찰의 손을 들어줬고 고령임을 감안해 금고 4년형을 선고했다. 독일 검찰은 2년 후 그로닝의 건강 상태가 수감 생활을 견딜 수 있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결국 그로닝은 형무소에 갇혔다.

2차세계대전이 끝난 지 70년이 지났지만 독일의 나치 부역자 추적·처벌은 여전히 진행되고 있다. 독일의 ‘완전 처벌’ 정책 중심에는 ‘국가의 사회주의 범죄 수사를 위한 법무·행정 중앙사무국’(일명 나치범죄중앙수사국)이 있다.

지난 4일 만난 옌스 롬멜(Jens Rommel·46) 나치범죄중앙수사국장(수석 검사)은 “당시 독일 내부적으로 90세가 넘은 노인을 굳이 법정에 세워야 하는지, 과거사 청산은 어느 수준까지, 언제까지 할 것인지에 대한 공론이 일었다”며 “그 결과 끝까지 처벌하자는 사회적 합의가 있었고 나치범죄중앙수사국이 운영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독일 남부의 작은 도시 루드빅스부르크(Ludwigsburg)시에 자리 잡고 있는 나치범죄중앙수사국은 올해로 창설 60주년을 맞았다. 연한 노란색의 3층 건물 외양은 일반 가정집과 다를바 없지만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높이 5m의 담장이 범상치 않은 장소임을 알려주고 있다.

독일 남부 루드빅스부르크시에 자리한 나치범죄중앙수사국.


롬멜 국장은 “우리가 하는 일은 나치 처벌이 아닌 전후처리 과정이자 후대에게 독일 정부가 과거사 청산을 어떻게 했는지 남기기 위한 기록작업이다”며 “우리의 정책이 잘됐는지 잘못됐는지 여부는 역사가 판단할 것이다”고 말했다.

지난 1958년 12월1일 문을 연 수사국은 올해까지 매년 평균 30명을 법정에 세우고 있다. 지난 2015년 그로닝 사건이 대표적이다. 전직 간수 명단 30명을 확보해 그로닝을 포함한 12명을 기소했다.

롬멜 대표는 “우리의 활동 방식은 일종의 연구소와 비슷하다”며 “연구소와 다른 점이 있다면 살인 혐의를 중심으로 나치 부역자들의 처벌이라는 명확한 목적이 있다는 점이다”고 말했다.

중앙수사국의 설치는 우연에서 비롯됐다. 1958년 루드빅스부르크시 인근 울름시에서 우연히 나치 관련 재판이 진행됐다. 당시 나치 부역자들에게 어떤 법을 적용해야 하는지 난항을 겪었다. 그때까지는 개인에 대한 형법만 있을 뿐 국가가 저지른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하는 법이 없었다. 또 다양한 국가에서 나치 범죄가 일어났기 때문에 독일법, 범행을 저지른 국가의 법, 국제법 등 어떤 법을 적용해야할지에 대한 논의도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 8월에서야 국가범죄에 대한 법이 제정됐지만 나치 부역자들에게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독일 내부에서는 범죄를 저지른 장소, 가해자의 거주지와 상관없이 체계적으로 추적하기 위해서 중앙수사국을 설치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막상 설립이 됐을 땐 가해자들이 다수 생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사회적 반발이 심했다. ‘그만 잊고 미래를 바라보자’는 의견과 함께 연합군의 만행도 다뤄야한다는 주장이었다. 수사국은 설립된지 20여년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었다.

수사국은 주요 활동은 나치 범죄자 추적이다. 처벌 권한은 없다. 추적이 끝나면 모든 자료는 검사에게 제공해 기소를 뒷받침한다. 1979년 독일 국회는 나치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가 없다고 선언했고 2011년 뮌헨 법원은 수용소에서 벌어진 대량학살을 지켜본 것도 살인방조에 해당한다고 판결하며 추적 대상자의 범위가 확장됐다.

롬멜 대표는 수사국 건물 1층에 있는 인명부 보관실로 안내했다. ‘수사국의 심장’으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는 70년 전 작성된 71만5300개의 나치 부역자 명부, 63만3896개의 범행 장소, 38만1576개의 부대 정보 문서를 보관하고 있다.

인명부 보관실은 피해자 증언을 통해 포착된 나치 범죄자 추적이 시작되는 곳이다. 각종 문서 분석, 탐문을 통해 전세계로 추적한다.

롬멜 대표는 “아직까지 일일이 손으로 명부를 찾고 있다”며 “가해자들이 고령이기 때문에 문서를 전산자료로 만드는 시간조차 아끼고 있다”고 말했다.

수사국은 현재 독일 16개 주에서 연간 120만유로(15억6680만원)의 예산을 지원받고 있다. 인력은 경찰 1명, 판·검사 7명, 각 강제수용소별 담당자 8명, 폴란드·러시아 통역 2명, 문서 보관·정리 1명, 청소부, 수위를 포함해 모두 21명이 근무하고 있다.

3년 전에는 정권과 상관없이 수사국을 계속 운영하자는 법이 16개 주 의회를 통과하며 활동 기간에도 제약이 없어졌다.

롬멜 대표는 “우리의 활동이 끝날 때는 모든 관련자들이 사망할 때다”며 “이곳에 있는 자료는 나치 뿐 아니라 모든 범죄자를 연구하는 데 중요하기 때문에 활동이 종료되면 전부 공개해 역사학자, 심리학자 등에게 제공할 방침이다”고 밝혔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 kimyh@kwangju.co.kr

루드빅스부르크 = 글 김용희·사진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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