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과거사 정리로 본 5·18의 과제] <6> 독일 ‘공포의 공간 기념관’
게슈타포 건물에 기념관 … 나치와 부역자 만행 함께 전시
2018년 10월 10일(수) 00:00

2일 독일 베를린 ‘공포의 공간 기념관’을 찾은 관람객들이 ‘1933 베를린-독재의 길’ 전시를 살펴보고 있다. 이 기념관은 게슈타포(나치 비밀경찰) 본부 잔해와 그 위로 세워진 베를린 장벽을 활용한 야외 전시공간으로, 나치범죄 가해자들의 행적을 조명하고 있다.

지난 2일 방문한 독일 베를린 ‘공포의 공간(Topographie des Terrors) 기념관’은 통일절(3일)을 하루 앞두고 비가 오는 날씨 속에 수백명의 인파가 나치의 만행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곳은 독일 나치 정권(1933~1945) 때 비밀경찰이었던 게슈타포(Gestapo) 사령부와 히틀러 친위대였던 SS(Schutzstaffel)의 본부로 사용됐던 건물 잔해에 자리하고 있다. 사령부 건물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크게 파괴 됐다가 전쟁 이후 철거돼 현재는 지하공간과 기둥 밑 일부분을 굴착해 공개하고 있다.

이 기념관이 특별해 보이는 이유는 게슈타포 건물 잔해 위로 베를린 장벽이 남아있다는 점이다. 2차 세계대전부터 냉전 종식 후 상징적인 건물들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독일 베를린시는 게슈타포와 당시 독일군, 나치 협력자의 행적을 글과 사진으로 설명하고 나치 독일의 만행을 고발하기 위해 이 기념관을 만들었다.

피해자 입장에서 나치의 만행을 알리는 박물관이나 기념관은 독일이나 프랑스 등 관련 국가에 많이 있지만 이 기념관이 특별한 이유는 따로 있다. 이곳은 가해자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한 점이 눈길을 끈다. 나치당 출범 초기부터 2차 세계대전 때 자행했던 만행, 유대인 검거와 학살에 앞장섰던 경찰, 군인, 부역자 등 독일의 치부를 여과 없이 드러내고 있다.

재독 한인단체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는 “역사적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과 달리 독일은 철저한 과거사 청산을 통해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며 “생존한 나치 부역자나 가족들이 있는 상황에서 부끄러운 역사를 전시할 수 있었던 것은 과거사 청산에 대한 독일 국민들의 지지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1933년부터 1945년 제2차세계대전 종전 이후까지의 나치 만행을 상설 전시하고 있는 ‘공포의 공간 기념관’ 내 문서보관소.


기념관은 독일의 상징이자 수도 베를린의 중심에 있는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불과 1㎞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 주변에는 예전 게슈타포 사령부 건물이 있었던 자리였음을 알리는 표지판이 곳곳에 세워져 있어 역사적 장소라는 사실을 알리고 있었다.

베를린 장벽과 한공간에 있는 특이한 형태와 역사적 의미 덕분에 지난해 130만명이 방문하는 등 베를린에서 가장 많은 관람객이 찾는 공간이다.

기념관은 특별한 입구나 울타리가 없는 일종의 개방형 야외 전시장 형태로 지어졌다.

첫 번째 전시는 1987년 베를린 탄생 750주년을 기념해 열렸으며 1992년에는 ‘공포의 공간’이라는 이름의 재단이 세워졌다. 지난 2010년에는 바로 옆에 문서 보관소가 새롭게 지어져 누구에게나 개방된 도서관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외부 전시장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까닭에 기념관이 있는 베를린 장벽에는 세계 각국 관람객들이 다양한 언어로 적어놓은 낙서를 볼 수 있었다. 자기 이름을 적은 단순한 낙서도 있었지만 ‘MADNESS’(광기), ‘HELL’(지옥), ‘necessary?’(꼭 필요했었나?) 등 의미심장한 문구도 있었다. 풍화돼 조금씩 부서지고 있는 장벽과 낙서, 게슈타포 잔해는 서로 어우러져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었다.

베를린 ‘공포의 공간 기념관’ 인근 안홀트역 잔해. 1942년부터 1945년까지 게슈타포에게 조사를 받은 5만여명의 유대인이 이곳을 통해 강제수용소로 끌려갔다.


현재 이곳에서는 ‘1933 베를린-독재의 길(The path to dictatorship)’이라는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전시장 한가운데에는 과거 이곳으로 잡혀온 나치 반대파들이 손을 들고 있었고 나치 군인이 총을 겨누고 있는 모습을 찍은 대형 사진이 설치돼 있어 전시 주제를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신문기사, 사진 등을 통해 희생자들을 조명하고 공간에 대한 의미를 전달했다.

문서보관소 로비에서는 상설전시 ‘공포의 공간:역사적인 장소(Der Historische Ort)’가 열리고 있었다. ‘나치 출범’, ‘공포의 기관(SS와 경찰)’, ‘제국의 공포, 박해 및 종말’, ‘독일 제국이 점령한 영토’, ‘전쟁 종식과 전후 ’ 등 5개 부문으로 나눠 사진, 재판 자료, 신문기사 등을 통해 나치를 소개하고 있었다. 한켠에서는 2차세계대전 당시 베를린 경찰서장을 지냈던 헬도르프(graf von helldorf) 등 나치 정권 부역자들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고 있었다. 개개인에 대한 유년시절, 나치 정권 때 행적과 전후 재판 과정을 상세히 공개하고 있었으며 다수의 관람객들을 주의깊게 살펴보고 있었다.

‘코리아협의회’ 한정화 대표는 “한국에서는 5·18 관련자와 부역자를 조명하는 전시관을 만든다면 정치적으로 많은 반대에 부딪힐 것”이라며 “독일은 피해자 뿐 아니라 가해자도 조명해야 역사가 사실적으로 정립된다는 입장이다”고 말했다.

/ kimyh@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베를린 = 글 김용희·사진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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