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시대 그노래 다시부르는 임을위한 행진곡] <6>제주4·3항쟁과 '잠들지 않는 남도'
2018년 08월 20일(월) 00:00
제주 민초들의 비극 … 잠들지 않는 한라산이여

제주 4·3은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비극적 사건이었다. 제주 4·3평화공원은 당시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공간.









제주는 아름다운 섬이다. 언제 들러도 여유와 낭만이 넘치는 곳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그것은 외부자의 시선이다. 여름 휴가철, 또는 손님처럼 잠깐 머물렀다 떠나는 이들에게 비쳐지는 이미지일 뿐이다.

그러나 아름다움 이면에는 늘 그렇듯 상처가 내면화돼 있다. 역사의 굴곡을 헤쳐 온 이들에게는 고통과 상흔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기 마련이다. 제주가 그렇다. 모든 빛나는 것의 뒷면에 어둠이 자리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빛이 강하면 강할수록 음영은 더욱 짙다.

제주4·3평화공원에서 아름다움과 역사를 생각한다. 역사는 과연 아름다울까. 아름답다는 형용사는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가혹하다”는 사실적인 표현이 어울릴지 모른다. 조금은 흐릿한 한낮의 평화공원은 일반적인 제주의 이미지와 부합할 것 같다. 이곳은 한적하고 여유로우며 잘 단장된 느낌이 묻어난다. 물리적인 공원 외적인 느낌에서 그렇다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외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일면일테지만.

그러나 기억해야 할 것은 이곳은 4·3사건으로 희생당한 이들의 삶을 추념하는 공간이다. 곡절과 아픔과 고통 그리고 상처와 한이 응결된 슬픔의 공간이다. 그러고 보니 올해로 4·3이 70주년을 맞았다.

제주4·3은 한국현대사에서 한국전쟁 다음으로 가장 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했던 비극적 사건이었다. 해방 이후 미군정의 정책 실패 그로 인한 민심 이반이 겹쳐진 상황에서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로 주민이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제주4·3평화공원(재단)에서 발행한 안내 책자에는 이렇게 기록돼 있다.

“제주도민의 민·관 총파업에 대응해 미군정은 응원경찰과 서청 단원을 제주도에 파견하여 테러와 고문을 일삼았다. 결국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는 경찰과 서청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무장봉기하였고, 5·10 총선거(200개 선거구)에서 제주도 2개 선거구만이 투표수 과반수 미달로 무효 처리되었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이 수립된 뒤 정부는 제주도 사태를 진압하기 위해 구 병력을 증파하여 강력한 진압작전을 펼쳤다. 11월 17일 제주도에 계엄령이 선포되었고, 중산간마을을 초토화시킨 대대적인 강경 진압작전이 전개되었다. 제주도 전역에서 무장대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수많은 주민들이 집단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4·3평화공원은 한마디로 무명한 자들의 역사를 기념하기 위한 공간이다. 지난 2008년 3월 28일 개관한 이곳은 80년대 말부터 민간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요구해온 진상규명과 위령사업이 구체화된 곳이다. 김대중 대통령 재임 당시 특별법 공포, 공원 부지 매입 등이 이루어졌고 노무현 대통령 때 4·3평화기념관 기본실시설계가 완료됐다. 이후 2006~2007년 건축공사 등이 이루어졌으며 2008년 전시물 제작설치가 완료됐다.

기념공원 곳곳을 거닐다 보면 제주 특유의 바람소리와 함께 이름도, 빛도 없이 죽어간 이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제주를 상징하는 붉은 동백꽃처럼 진실을 향한 불타는 마음도 느낄 수 있다. 역사의 진실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이어서 아무리 침묵을 강요해도, 비극을 증언하는 목소리는 심연의 침묵을 뚫고 솟아난다.

제주 출신 현기영 작가의 ‘순이삼촌’은 제주 4·3항쟁을 최초로 세상에 알린 소설이다. 소설은 학살 현장에서 살아남았지만 정신적 고통에 시달리다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순이 삼촌의 이야기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그건 명백한 죄악이었다. 그런데도 그 죄악은 삼십년 동안 여태 단 한번도 고발되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그건 엄두도 안 나는 일이었다. 왜냐하면 당시의 군 지휘관이나 경찰 간부가 아직도 권력 주변에 머문 채 아직 떨어져나가지 않았으리라고 섬사람들은 믿고 있기 때문이었다. 섣불리 들고나왔다간 빨갱이로 몰릴 것이 두려웠다. 고발할 용기는커녕 합동위령제 한번 떳떳이 지낼 뱃심조차 없었다. 하도 무섭게 당했던 그들인지라 지레 겁을 먹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결코 고발이나 보복이 아니었다. 다만 합동위령제를 한번 떳떳하게 올리고 위령비를 세워 억울한 죽음들을 진혼하자는 것이었다.” (현기영의 ‘순이삼촌’ 중에서)

현기영은 오랫동안 철저하게 은폐돼왔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작가다. 4·3문학을 대변하는 작가라는 타이틀보다 소설적 삶을 살아왔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1941년 제주에서 태어난 그는, 금기였던 ‘제주 4·3’을 다룬 소설 ‘순이삼촌’을 냈다는 이유로 경찰에 끌려가 고문을 받았다. 1979년의 일이다. 여전히 그의 삶에는 4·3이라는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작가는 지난 4월 jtbc의 ‘차이나는 클라스’에서 제주 4·3 사건을 주제로 강연한 바 있다. 그는 “아우슈비츠보다 더 무서운 것은 인류가 아우슈비츠를 잊는 것”이라며 “4·3의 학살보다 더 무서운 것은 우리 국민이 4·3을 잊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는 제주는 결코 잠들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제주는 ‘무죄’이기 때문이다. 이름 없는 민초들의 비극은 결코 꺼지지 않는 진실과 평화의 불로 승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제주4·3 사건 70주년 추념식에서 금지됐던 가수 안치환의 ‘잠들지 않는 남도’가 울려퍼졌다 ‘잠들지 않는 남도’는 가수 안치환이 제주 4·3 사건을 소재로 작사와 작곡한 노래다. 1988년 노동자노래단의 앨범 ‘총파업가’에 처음 수록됐으며 4·3 사건을 소재한 한 민중가요로 널리 불리는 노래다.

“외로운 대지의 깃발 흩날리는 이녁의 땅/ 어둠살 뚫고 피어난 피에 젖은 유채꽃이여/ 검붉은 저녁 햇살에 꽃잎 시들었어도/ 살 흐르는 세월에 그 향기 더욱 진하리//아~ 아~ 아~ 아~/아! 반역의 세월이여/ 아! 통곡의 세월이여/ 아! 잠들지 않는 남도 한라산이여”

평화공원을 거닐며 노래를 나지막이 불러본다. 언제쯤 이 무정한 시간이 흘러야 우리의 남도 땅은 평화롭게 잠들 수 있을까. 노래는 바람을 타고 하늘로 아스라이 스며든다. /글=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사진 제공 제주4·3평화공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 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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