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과거사 정리로 본 5·18의 과제] <1> 5·18 진상규명 과정과 한계
독일, 60년간 전 세계 뒤져 ‘나치 전범’ 7000명 찾아 처벌
내전으로 100만명 희생된 스페인 과거사 덮기 ‘망각 협정’현재까지 갈등
제주 4·3 보고서 총론적·개괄적 기술로 사건 전말·피해상황 규명 어려움
9월 14일 출범 5·18 조사위, 발포명령·암매장 등 진상규명 마지막 기회
조사 권한 제한 … 조사대상·참고인 강제할 수 없어 제대로 밝혀낼지 의문
2018년 08월 15일(수) 00:00

전세계적으로 독재정권에 의해 무수한 인명피해가 있었지만 각 나라별로 과거사 정리 방식에는 차이가 있다. 독일은 완전 처벌 정책을 통해 나치 부역자들을 추적·처벌하는 반면, 프랑코 독재정권을 겪었던 스페인은 ‘망각협정’을 통해 과거를 잊으려고 했다. 우리나라는 정권 성향에 따라 과거사 정리 방향이 정해지며 지난 38년간 5·18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이 제자리에 그치고 있다. 사진은 독일 히틀러(1889~1945).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법’(이하 특별법)에 의한 5·18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가 다음달14일 출범을 앞두고 있다. 지난 38년간 묻혀 있었던 5·18 진상규명에 대한 온 국민의 열망이 반영된 결과다.

특별법이 제정됨에 따라 5월 단체와 광주시민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나타냈다.

특별법(제3조 진상규명의 범위)에서 규정하고 있는 진상규명 현안은 모두 7개다. 조사위는 1980년 5월 당시 군에 의해 자행된 ▲민간인 학살 등 사망·상해·실종·암매장 사건과 인권침해 사건 ▲군의 시민들에 대한 발포(헬기사격 포함) 책임자와 경위, 시민 피해자 현황 ▲‘5·11연구위원회’ 등 진실왜곡·조작의혹 ▲집단학살지·암매장지 소재와 유해 발굴·수습 ▲행방불명자의 규모와 소재 ▲5·18 당시 북한군 개입 여부와 북한군 침투조작사건 ▲그외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건이다.

5·18 유가족, 단체들은 이번 조사위 활동이 진상규명과 오월 영령들의 한(恨)을 풀어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여기고 있다.

스페인 프랑코(1892~1975)


그동안 정부는 지난 1988년 국회청문회·1995년 검찰조사·2007년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2017년 국방부 5·18특별조사위원회를 통해 5월의 진실을 밝히려고 시도했고 그에 따른 결과물을 발표했지만 의혹은 더욱 증폭될 뿐이었다. 발포 명령자는 누구인지, 정확한 희생자의 숫자는 어떻게 되고 어떻게 처리됐는지, 신군부의 5·18 조작은 어떻게 이뤄졌는지에 대한 속시원한 답변은 없었다.

5·18기념재단은 지난해 자체적으로 옛 광주교도소 등에서 행방불명자 암매장 조사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의미있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당사자들의 참여 부재였다. 직접 시신을 처리한 당사자들의 증언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재단과 광주시는 지난해부터 공개 제보를 받고 있지만 계엄군의 연락은 극히 드물다.



일각에서는 조사 참여를 계엄군 개인 의지에 맡긴다면 조사위에서도 이런 상황이 반복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반강제적으로 소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해야한다는 의견이다.

조사위가 가진 권한은 제한적이다. 특별법에 따르면 조사위는 조사대상자나 참고인에게 진술서 제출을 요구하거나 출석요구, 진술청취를 할 수 있다. 출석 요구를 받은 사람 중 정당한 사유 없이 2회 이상 응하지 않을 때는 동행명령장을 발부할 수 있다.

하지만 자료 확보에 대해서는 관할 지방검찰청 검사장에게 압수·수색 영장 청구를 의뢰해야한다. 특히 계엄군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면책 등이 중요한데 진상규명에 적극 협조한 가해자에 대한 불처벌이나 감형, 사면 등도 건의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번 기획 취재는 국내외 과거사 정리 과정을 통해 조사위의 활동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이다.

제주 4·3의 경우 2001년 1월12일 제정된 ‘제주 4·3사건 진상 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에 근거해 2003년 2월 작성된 ‘제주4 3사건진상규명보고서’가 국가 보고서로 채택되며 진상규명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이 보고서는 제주4·3에 대해 총론적·개괄적으로 기술하는 데 그쳐, 당시 발생한 개별 사건의 전말과 피해 상황을 정확히 확인·규명하는데 어려움이 있다. 제주4·3의 시기별·지역별·대상별 피해 상황에 대한 조사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광주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를 찾은 참배객들이 묘역을 둘러보고 있다. 40미터 높이의 5.18민중항쟁추모탑의 알모양의 조형물은 당시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이들의 부활을 상징한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독일은 ‘나치즘’이라는 과거사를 ‘완전 처벌’ 기조 아래 여전히 청산 중이다. 역사의 과오를 인정할 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방침이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지 70년이 지났지만 나치 부역자를 추적해 법정에 세우는 일을 이어나가고 있다. 과거사 청산의 중심은 법무부 산하 나치범죄중앙수사국이다. 1958년에 설립된 중앙수사국은 전범을 직접 처벌할 수는 없고, 검찰에 수사 자료를 제공하는 기관이다. 지금까지 170만 여건의 기록을 바탕으로 나치 전범 7000여명을 찾아내는 등 60년 동안 전 세계를 뒤졌다.

내전으로 100만명이 희생된 스페인은 이와 반대로 좌파와 우파가 과거사를 문제삼지 않기로 합의한 ‘망각협정’을 맺어 논란이 됐었다. 지난 1975년 36년간 군사독재를 펼쳤던 프랑코 사망 이후 인권 유린과 민간인 피해 조사에 대한 목소리가 나왔다. 프랑코는 1939년부터 1975년 사망할 때까지 36년 동안 스페인을 통치하면서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무정부주의자, 사회주의자 등 반프랑코 운동가를 투옥했다. 프랑코가 사망한 뒤 1975년 후안 카를로스 국왕이 즉위하면서 입헌 군주제가 부활했고 스페인의 민주화가 시작됐다.

2004년 사회노동당이 집권하고 나서야 인권침해에 대한 진상조사와 피해자 명예회복에 진행됐다. 2007년에는 ‘역사기억법’이라는 법이 제정되며 집단학살지 발굴, 보상 문제 등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또 이 법에 따라 마드리드시는 1939∼1975년 프랑코 총통의 독재에 연관된 상징을 삭제해 왔다.

참상을 알고 있는 당사자들의 증언도 꾸준히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광주에서 5·18이 일어난 지 40주년을 앞두고 있지만 여전히 진상규명이 얽매어 있다. 유가족들의 아픔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폭동이냐 민주화운동이냐’를 놓고 5·18에 대한 시각도 여전히 갈리고 있다.

북한이 남한을 전복시키기 위해 5·18을 일으켰다는 ‘북한군 침투설’을 믿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으며,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본인은 5·18과 관련없다’는 입장을 여전히 고수하고 있다.

국내외 과거사 청산 사례를 통해 5·18의 진상규명, 치유 방향, 미래로 나아갈 길을 모색해 본다.

/김용희 기자 kimyh@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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