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대 그 노래 다시 부르는 ‘임을 위한 행진곡’] <1> 프롤로그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 민주주의를 노래하다
2018년 04월 20일(금) 00:00

생전의 윤상원 열사가 피리를 불고 있는 모습.

노래는 무엇일까. 사람들은 왜 노래를 부르는 것일까. 한마디로 노래는 ‘곡조의 언어’라 할 수 있다. 노래를 통해 사람들은 동시대의 생각과 가치를 공유한다. 나라마다 언어가 다르고, 사람들의 피부색깔이 달라도, 어깨를 걸고 희로애락을 공유할 수 있는 것은 노래를 통해서다. 함께 목청을 돋운다는 것은 노래에 담긴 역사적 배경과 공동체적 가치를 인식하고 공유한다는 의미가 전재돼 있다. 고전적 명제인 ‘음악은 세계의 공용어’라는 말은 그러한 연유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특정한 시대에는 특정한 노래가 있었다. ‘태초에 노래가 있었다’고 표현해도 무방한 것은 아름다운 자연의 소리도 노래이며, 장삼이사들이 뱉어내는 장탄식의 곡조 또한 노래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노래는 시대의 언어이며 호흡이다. 그 가운데 민중가요는 당대의 부당한 권력에 짓밟힌 이들에 대한 위로를 넘어 시대를 변혁하는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오월광주’는 한국전쟁과 더불어 한국 근현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 가운데 하나다. 많은 이들이 오월 광주를 한국 근현대사의 분기점으로 바라보는 이유다. 당시 불의한 권력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섰던 광주는 민주주의에 대한 뜨거운 열망을 노래로 표현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는 그렇게 시대와 지역을 초월해 억압과 고통의 현장 어디서든 애창되는 노래가 됐다.

지난 1982년 2월 망월동 묘지에서는 순정한 영혼들의 결혼식이 치러졌다. 5·18민중항쟁 당시 시민군 대변인으로 싸우다가 계엄군의 총에 맞아 숨진 윤상원과 야학운동을 하다가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박기순이 주인공이었다. 두 사람은 전남대 선후배 사이였고 당시 광주 광천동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들불야학’의 동지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바로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에서 그렇게 처음 울려퍼졌다.

당시 전남대 학생이었던 김종률씨(현 광주문화재단 사무처장)가 황석영이 작사한 노랫말(원작 백기완의 시 ‘묏비나리’)에 곡을 붙였다. 김 씨는 “‘넋풀이’ 노래극 테이프를 만든 뒤 바로 군입대를 했는데 제대 후 이 노래가 민중가요가 됐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대로 이후 ‘임을 위한 행진곡’은 테이프 복사본 그리고 구전 등을 통해 유포돼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상징적 노래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명박정부와 박근혜정부를 거치면서 ‘임을 위한 행진곡’은 공식 행사에서 제창이 금지됐고 불온시 됐다. 1983년부터 5월 기념식 때마다 제창돼 왔고 2004년 기념식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참석해 노래를 불렀다. 그러나 2009년부터 “시대와 맞지 않다”는 논리로 사실상 공식행사에서 제외됐다.

이 같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거부 기저에는 민중가요는 불순하다는 선입견이 자리한다. 광주정신과 5·18의 역사가 깃들어 있어 당시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신군부와 민주정의당의 계보를 잇는 사람들이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불리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해석도 있다.

그러나 부당한 국가권력에 맞서며 불렀던 노래에 대해 제창을 금한 것은 민주 투쟁의 역사와 가치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도에 다름 아니다. 당시 희생자들이 잠들어 있는 묘지는 국립묘지로 승격된 지 오래고 학생들의 교과서에도 민주화운동으로 수록돼 역사적 평가가 끝났다. ‘임을 위한 행진곡’에 광주시민의 열망과 이름 없이 죽어간 영령들의 고귀한 넋이 깃들어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처럼 민중가요가 탄생하게 된 배경에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있기 마련이다. 제주 4·3 추모곡 ‘잠들지 않는 남도’에는 슬픈 역사가, 관리들의 학정에 농민들이 봉기하며 불렀던 ‘새야 새야’에는 녹두장군의 의로운 기상이, 80년대 군부독재에 항거했던 시민과 학생들이 불렀던 ‘타는 목마름으로’는 민주화에 대한 간절함이 투영돼 있다. 그뿐인가 지난 2016년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는 양희은의 ‘아침이슬’이 언론의 보도와 SNS 등을 통해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비단 민중가요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의 프랑스에서도 혁명 당시에 불렸다. 격정적이며 가슴 벅찬 ‘라마르세에즈’(La Marseillaise)는 혁명가에서 애국가로 불릴 만큼 프랑스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살벌하고 선혈이 낭자하는’ 노랫말은 당시의 역사와 격정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피묻은 깃발을 올려라! 우리 강토에 울려퍼지는 끔직한 적군의 함성을 들으라. 적은 우리의 아내와 사랑하는 이의목을 조르려 다가오고 있도다! 무기를 잡으라, 시민동지들이여!”

중국인민해방군가는 또 어떤가. 광주 출신 정율성(1914∼1976)이 작곡한 이 노래 또한 격정적이며 가열차다. 이 노래는 작곡되던 1939년부터 항일 노래로 불려 많은 이들이 심금을 울렸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광주의 노래를 넘어 모든 민주와 인권을 지향하는 이들의 노래다. 민중가요의 대표곡인 이 노래가 탄생하는 데에는 남모를 비화가 숨겨져 있다. 본 기획 취재는 광주의 노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다시 제창되어야 한다는 당위 아래 만들어진 배경(비화), 다양한 문화 콘텐츠로 재탄생하는 과정, 대중화·세계화 방안 등을 조명함으로써 역사적 사실과 의미를 다양한 관점에서 들여다보고자 한다.

또한 ‘임’의 의미가 특정 시대에 불렸던 민중가요에도 투영돼 있다는 점을 착안, 농학의 노래인 ‘새야 새야 파랑새야’, 제주 4·3항쟁의 아픔이 깃든 ‘잠들지 않는 남도’, 80년 민주화의 열망이 응축된 ‘타는 목마름’ 등도 ‘임을 위한 행진곡’과 연계해 들여다볼 예정이다. 아울러 해외취재로 1789년 부르봉 왕조를 무너뜨리고 공화 제도를 이룩한 프랑스 시민 혁명의 유적지도 탐방할 예정이다.

/ 박성천기자 skypark@kwangju.co.kr

사진=광주일보 DB·윤상원기념사업회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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