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전당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전] 회화의 힘…격변의 시대를 증언하다
2018년 03월 14일(수) 00:00
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회화로 풀어낸 현대사
앤디 워홀·레온 골럽·신학철
7월 8일까지 25개국 170점 전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리는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FROM VIETNAM TO BELIN)전’에서는 현대사를 회화로 풀어낸 17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체 게바라의 죽은 후 모습을 그린 얀 페이밍의 작품이 인상적이다.

‘강렬한 회화로 만나는 현대사.’

세상을 초월한 듯 초점 잃은 눈동자와 알 수 없는 표정, 반쯤 벌린 입과 덥수룩한 수염. 거친 붓질로 표현된 한 남자의 초상 앞에서 사람들은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한다. 볼리비아에서 총살당한 아르헨티나 혁명가 체 게바라(1928∼1967)의 죽음 직후 모습이다. 흰색과 검정, 회색만으로 표현된 ‘체 게바라’는 대형 초상화로 유명한 중국 작가 얀 페이밍의 작품이다. 그는 베트남전 참전을 결정한 존 F케네디, 60년대 흑인 인권 운동의 상징 마틴 루터 킹 목사, 중국 공산당 주석 마오쩌둥 등 1960년대부터 80년대까지 세계 정치적 풍경을 상징하는 인물들을 전시중이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기획한 ‘베트남에서 베를린까지(FROM VIETNAM TO BELIN·7월 8일까지 문화창조원 3·4전시실)’전에서 만나는 작품들은 강렬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베트남 전쟁이 시작된 1960년대부터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0년대까지 격동의 현대정치사를 ‘회화’로 풀어낸 바로 ‘그 당시’의 작품들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미디어, 사진 등 다양한 장르의 발언이 강해진 요즘의 미술계에서 강렬하고 날 선 ‘회화’의 힘을 만날 수 있는 전시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또 이번 전시는 반전, 반독재, 독립투쟁, 인권투쟁, 민주화 운동 등 구체적인 시대적 상황과 역사의 기억을 공유하고 그 역사와 미술의 상관 관계의 의미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김성원 전시사업본부 예술감독과 김승덕·프랑크 고트로(프랑스 디종 르 콩소르시움 공동디렉터) 3명이 공동 기획한 이번 전시에는 레온 골럽·로버트 라우센버그(미국), 에로(아이슬란드), 베르나르 랑시악(프랑스), 이시이 시게오(일본), 신학철·최민화(한국) 등 25개국 50명 작가가 초대됐다. 전시작들은 파리 퐁피두센터와 국립조형예술센터, 일본도쿄국립근대미술관, 스위스 강뒤르 재단 등 전 세계 32개 기관과 개인 소장자들에게 수집한 것들로 회화, 드로잉, 판화 170점을 만날 수 있다.

일본, 베트남, 말레이시아, 프랑스, 아프리카 등 전 세계 역사적 현장과 인물들의 모습을 담은 작품을 만나는 이번 전시는 연대기 순으로 구성돼 역사속으로 시간 여행을 떠나는 느낌이다. 특히 전시장은 관람객의 모습이 비치는 은박지 느낌의 ‘거울 시트’로 구성해 과거와 현재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을 전해준다.

일본작가 이시이 시게오의 ‘계엄령 상태’는 강렬한 색감과 스토리가 눈을 사로잡으며 식민지 독립투쟁에 반응했던 아프리카 작가들의 작품은 화려한 색감과 사실적인 묘사로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대중문화와 만화의 이미지를 활용해온 베르나르 랑시악의 작품은 유쾌하다. ‘블러디 코믹스’는 칠레 독재자 피노체트가 도달드 덕으로 분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또 “죽음을 부재와 침묵으로 재현한다” 는 평을 받은 앤디 워홀의 ‘전기의자’ 시리즈, 미국 허드슨 강 배 위에서 손을 흔드는 마오쩌둥의 모습을 담은 ‘뉴욕 앞에서’ 등의 작품도 인상적이다.

민정기, 홍성담, 신학철, 강연균 등 국내 작가들의 전시작은 광주민중항쟁과 6월 항쟁에 주목했다. 5·18 광주민중항쟁이 실린 ‘타임’지 표지 위에 그린 최민화 작가의 ‘깃발만 나부껴’, 80년대 청년의 모습을 그린 ‘가투’ 등의 작품이 눈길을 끈다.

전시작들은 1960∼80년대 제작된 작품이 주를 이루지만 일본 작가의 50년대 작품과 정치적 회화가 활발히 제작됐던 아프리카와 인도 작가의 1990년대 초기작 등도 작품의 의미를 고려해 포함시켰다. 얀 페이밍의 작품은 2000년대 제작됐지만 ‘역사는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하는 전시의 에필로그적 역할을 하는 장치로 전시했다.

전시를 관람하는 내내 귀를 자극하는 ‘소리’가 있다. 사운드 아티스트이자 뮤지션인 성기완의 작품으로 60년대에서 80년대 사이의 혁명, 저항, 투쟁과 연관된 음악들, 사운드, 뉴스들을 샘플링해 제작한 작품 ‘혁명라디오’다.

전시를 관람하기 전 작품 안내 책자를 챙기는 게 필수다. 전시작에는 설명이 붙어 있지 않다. 대신 주최측은 각 작가에 대한 설명과 작품, 역사적 배경 등을 자세히 소개한 책자를 제작했고 관람객들에게는 친절한 안내서 역할을 한다.

김성원 본부장은 “회화가 주는 강렬한 힘을 통해 역사에 대한 경의를 표현하고 싶었다”며 “치열했던 그 시대에 ‘응답’한 전 세계 작가들의 작품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가 관람객들에게 객관화된 역사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티켓 한장(5000원)으로 문화창조원 1·2 전시실에서 열리는 박찬욱·박찬경 형제의 ‘팍킹찬스전’을 포함 4개 전시를 함께 관람할 수 있다.

/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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