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14〉 프림로즈힐 북스
2018년 02월 05일(월) 00:00 가가
푸른 테라스의 보물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길모퉁이 서점’(The Shop Around The Corner)을 운영하는 케슬린 켈리(맥 라이언 扮)는 주민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뉴욕 맨하튼의 한 귀퉁이에서 40여 년 간 아동도서를 전문적으로 판매한 덕에 고객들의 이름이며 취향, 심지어 일상사까지 꿰고 있어서다. 아이들의 책을 사기 위해 서점에 들른 고객들은 그녀와의 수다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리 크지 않은 책방에선 종종 동화작가와의 만남과 낭독회가 열린다.
하지만 그녀의 소소한 행복은 인근에 대형서점 ‘폭스북스’가 오픈하면서 흔들리기 시작한다. 쾌적한 공간, 저렴한 가격, 양질의 서비스로 무장한 대형서점에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면서 ‘길모퉁이 서점’에는 인적이 끊기고 만다. 어머니의 유산인 동네 서점을 지키기 위한 그녀의 안간힘에도 불구하고 결국 문을 닫는다. 지난 1998년 국내에서 개봉된 할리우드 영화 ‘유브 갓 메일’(You’ve Got Mail)의 줄거리다.
영화는 맨하튼의 명물인 어린이 책방의 주인과 대형체인서점 대표(톰 행크스)의 갈등과 사랑을 그린 로맨틱 코미디물로 개봉 당시 적잖은 화제를 모았다. 그 시절, 고사 위기에 몰린 동네서점의 현실을 생생하게 보여줬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와 달리 런던 북쪽의 리젠트 파크(Regent Park)인근에 자리한 ‘프림로즈힐 북스’(Primrose Hill Books)는 수 십년간 주민들과 함께 동고동락해오고 있다. 런던 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언덕(프림로즈 힐)은 리젠트 파크의 쉼터이자 관광객들이 선호하는 명소다. 이런 입지적인 조건 덕분에 서점이 자리하고 있는 프림로즈힐 로드에는 카페, 레스토랑, 패션숍, 베이커리, 펍, 빈티지 숍이 늘어서 있다.
특히 주민들 사이에선 프림로즈 힐 서점은 ‘푸른 테라스의 보물‘으로 불린다. 조지안 스타일(18세기 영국의 건축양식)로 지어진 5층 벽돌 건물의 1층에 둥지를 튼 서점은 선명한 블루 계열의 간판과 인테리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얼추 15평 정도 규모의 아담한 매장에는 신간에서 부터 지하 1층의 헌책까지 약 1만 여권의 책이 서가에 자리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여행서적, 어린이 동화, 미스터리 소설, 오디어 북, 18∼19세기 런던의 풍경을 담은 엽서 컬렉션 등 다양하다.
프림로즈 힐 서점이 수십년 간 동네 서점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건 책방지기의 남다른 경영전략 때문이다. 주인공은 제시카 그레이엄(Jessica Graham·56)과 머렉 라스코위스키(69·Marek Laskowski) 부부. 영화 ‘유브 갓 메일’의 연인처럼 두 사람 역시 서점이 맺어준 커플이다.
“1986년 이 곳에 책방을 열면서 한가지 목표를 세운 게 있는데, 바로 주민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자는 거였어요. 당시만 해도 온라인 서점 여파로 동네 책방이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던 터여서 확실한 ‘컨셉’으로 밀고 나가야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오픈과 동시에 인근의 학교나 교회, 관공서, 주민자치센터를 방문해 서점의 존재를 알렸어요.”
그녀의 열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단골들이 서서히 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학부모에서 부터 주변의 맛집에서 데이트중인 젊은 연인, 리젠트 파크로 산책 나온 시니어들까지 그녀의 책방에 들렀다.
“주민들과 친해지려면 평소 어떤 장르의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 하는지 등 취향과 관심사를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고객이 계산하기 위해 카운터로 오면 포장하는 동안 어떤 책을 골랐는지 살펴 보고 대화를 나눠요. 2∼3개월 지나다 보니 자주 오는 고객들과는 근황을 주고 받을 정도가 됐어요.”
지금의 남편인 머렉 라스코위스키도 단골 손님 가운데 한 명이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거의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캐주얼한 복장 차림을 한 중년 남성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구입해가고, 또 어떤 날은 범죄스릴러물을 찾는 등 도통 ‘취향’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제시카의 대학은사가 쓴 책을 구입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독서와 여행을 좋아하는 엔지니어인 머렉은 SNS 홍보에 관한 조언을 해주는 등 제시카에게 큰 힘이 됐다. 연인으로 발전한 이후에는 퇴근하자 마자 그녀의 책방으로 달려와 함께 책을 정리하고 손님을 맞는 등 ‘서점 데이트’를 이어갔다.
1993년 결혼한 두 사람은 머렉이 퇴사를 한 이후에는 ‘프림로즈 힐’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제시카가 서점의 도서 컬렉션을 전담한다면 남편은 회계와 온라인 판매를 맡는 방식이다.
그녀의 바람대로 ‘프림로즈 힐 북스’는 주민들의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았다. 고객들의 취향을 바탕으로 ‘좋은 책’을 골라주는 그녀의 맞춤형 추천(book recommendation)은 묻지마 구매로 이어질 만큼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특히 컴퓨터 게임에 빠져 책읽기를 꺼려하는 10대 청소년들도 그녀와 한번 인연을 맺게 되면 일부러 서점을 방문할 정도다.
또한 제시카와 머렉 부부는 웬만한 대형 서점일지라도 엄두내기 힘든 작가와의 만남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프림로즈 힐 북스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베스트셀러작가나 유명 소설가들도 기꺼이 재능기부에 참여하는 등 작지만 알찬 서점의 면모를 자랑한다. 서점의 매장 곳곳에 비치돼 있는 작가들의 친필사인 도서들이 이를 반증한다.
특히 두 사람은 매년 자신들이 평소 읽은 도서들을 엄선해 6개월에 한번씩 카탈로그를 발행에 우편이나 이메일로 고객들에게 배송한다. 여름 휴가철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하드커버의 책과 에코백, 카드 등을 묶어 선물세트로 포장하는 데 시판과 동시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일주일에 한번씩 서점에 들른다는 빅토리아 머피(Victoria Murphy)는 “어릴 때 부터 다니기 시작해서 인지 올 때 마다 마치 시골 할머니 집처럼 편안한 느낌이 든다”면서 “‘프림로즈 힐’ 덕분에 우리 동네의 품격이 올라간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jhpark@kwangju.co.kr
※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
특히 주민들 사이에선 프림로즈 힐 서점은 ‘푸른 테라스의 보물‘으로 불린다. 조지안 스타일(18세기 영국의 건축양식)로 지어진 5층 벽돌 건물의 1층에 둥지를 튼 서점은 선명한 블루 계열의 간판과 인테리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얼추 15평 정도 규모의 아담한 매장에는 신간에서 부터 지하 1층의 헌책까지 약 1만 여권의 책이 서가에 자리하고 있다. 베스트셀러, 여행서적, 어린이 동화, 미스터리 소설, 오디어 북, 18∼19세기 런던의 풍경을 담은 엽서 컬렉션 등 다양하다.
프림로즈 힐 서점이 수십년 간 동네 서점으로 살아 남을 수 있었던 건 책방지기의 남다른 경영전략 때문이다. 주인공은 제시카 그레이엄(Jessica Graham·56)과 머렉 라스코위스키(69·Marek Laskowski) 부부. 영화 ‘유브 갓 메일’의 연인처럼 두 사람 역시 서점이 맺어준 커플이다.
“1986년 이 곳에 책방을 열면서 한가지 목표를 세운 게 있는데, 바로 주민들의 일상 속으로 들어가자는 거였어요. 당시만 해도 온라인 서점 여파로 동네 책방이 하나 둘씩 자취를 감추던 터여서 확실한 ‘컨셉’으로 밀고 나가야 승산이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래서 오픈과 동시에 인근의 학교나 교회, 관공서, 주민자치센터를 방문해 서점의 존재를 알렸어요.”
그녀의 열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단골들이 서서히 늘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온 학부모에서 부터 주변의 맛집에서 데이트중인 젊은 연인, 리젠트 파크로 산책 나온 시니어들까지 그녀의 책방에 들렀다.
“주민들과 친해지려면 평소 어떤 장르의 책을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 하는지 등 취향과 관심사를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고객이 계산하기 위해 카운터로 오면 포장하는 동안 어떤 책을 골랐는지 살펴 보고 대화를 나눠요. 2∼3개월 지나다 보니 자주 오는 고객들과는 근황을 주고 받을 정도가 됐어요.”
지금의 남편인 머렉 라스코위스키도 단골 손님 가운데 한 명이었다. 매주 토요일 오전이면 거의 한 주도 빠지지 않고 캐주얼한 복장 차림을 한 중년 남성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어떤 날은 세익스피어의 희곡을 구입해가고, 또 어떤 날은 범죄스릴러물을 찾는 등 도통 ‘취향’을 가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제시카의 대학은사가 쓴 책을 구입하게 되면서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기회를 가졌다. 독서와 여행을 좋아하는 엔지니어인 머렉은 SNS 홍보에 관한 조언을 해주는 등 제시카에게 큰 힘이 됐다. 연인으로 발전한 이후에는 퇴근하자 마자 그녀의 책방으로 달려와 함께 책을 정리하고 손님을 맞는 등 ‘서점 데이트’를 이어갔다.
1993년 결혼한 두 사람은 머렉이 퇴사를 한 이후에는 ‘프림로즈 힐’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제시카가 서점의 도서 컬렉션을 전담한다면 남편은 회계와 온라인 판매를 맡는 방식이다.
그녀의 바람대로 ‘프림로즈 힐 북스’는 주민들의 삶의 일부분으로 자리잡았다. 고객들의 취향을 바탕으로 ‘좋은 책’을 골라주는 그녀의 맞춤형 추천(book recommendation)은 묻지마 구매로 이어질 만큼 높은 신뢰를 받고 있다. 특히 컴퓨터 게임에 빠져 책읽기를 꺼려하는 10대 청소년들도 그녀와 한번 인연을 맺게 되면 일부러 서점을 방문할 정도다.
또한 제시카와 머렉 부부는 웬만한 대형 서점일지라도 엄두내기 힘든 작가와의 만남을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프림로즈 힐 북스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면서 베스트셀러작가나 유명 소설가들도 기꺼이 재능기부에 참여하는 등 작지만 알찬 서점의 면모를 자랑한다. 서점의 매장 곳곳에 비치돼 있는 작가들의 친필사인 도서들이 이를 반증한다.
특히 두 사람은 매년 자신들이 평소 읽은 도서들을 엄선해 6개월에 한번씩 카탈로그를 발행에 우편이나 이메일로 고객들에게 배송한다. 여름 휴가철이나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하드커버의 책과 에코백, 카드 등을 묶어 선물세트로 포장하는 데 시판과 동시에 매진될 정도로 인기가 뜨겁다.
일주일에 한번씩 서점에 들른다는 빅토리아 머피(Victoria Murphy)는 “어릴 때 부터 다니기 시작해서 인지 올 때 마다 마치 시골 할머니 집처럼 편안한 느낌이 든다”면서 “‘프림로즈 힐’ 덕분에 우리 동네의 품격이 올라간 것 같아 뿌듯하다”고 말했다.
/jhpark@kwangju.co.kr
※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