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 〈13〉 리버풀 중심가 독립서점들
벽이 없는 책방, 손만 뻗으면 되는 독립서점의 천국
2018년 01월 29일(월) 00:00

영국 리버풀의 도심에 자리하고 있는 ‘레이드 오브 리버풀’(Reid of Liverpool) 전경. 서점 앞을 지나는 행인들도 자유롭게 책을 꺼내 볼 수 있도록 쇼윈도의 유리를 없앤 열린 서가가 인상적이다. 30여 년 째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브라이언(오른쪽)·알린 커나한(Kernaghan) 부부.(사진아래)

영국 런던의 유스턴 역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 30분 쯤 달리자 리버풀 스트리트역에 도착했다. 기차역을 빠져 나와 숙소가 있는 알버트 독(Albert Dock)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낯익은 동상이 시선을 끌었다. 1960∼70년대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세계적인 팝그룹 ‘비틀스’였다. 휴가시즌이 아닌 늦은 가을인데도 존 레논, 링고 스타, 폴 메카트니, 조지 해리슨의 동상 주변에는 인증샷을 찍는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여기에 근래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 들이는 새로운 문화공간들이 늘어나고 있다. 리버풀 시내의 중심가에 위치한 크고 작은 독립서점들이다. 100여 년이 넘는 오래된 책방에서 부터 세계 각국의 다양한 문화와 역사를 만날 수 있는 전문서점에 이르기까지 10여 곳에 이른다. 특히 이들 서점에는 리버풀의 역사와 전통, 문화를 다룬 ‘로컬 스토리’ ‘리버풀 히스토리’ 등의 섹션이 꾸며져 시민 뿐 아니라 관광객들도 즐겨 찾는다.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

그중에서도 리버풀 볼드 스트리트(Bold Street)에 자리한 ‘뉴스 프롬 노웨어’(News From Nowhere)는 리버풀 시민들이 가장 아끼는 서점이다. 19세기 영국의 전방위 작가 윌리엄 모리스의 동명 미래소설에서 따온 ‘뉴스 프롬 노웨어’는 1974년 진보적인 페미니스트 서점으로 처음 모습을 드러냈다. 개인 소유의 일반 서점과 달리 노동자들이 주축이 된 비영리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곳으로 좌파성향의 서점으로는 영국에서도 손을 꼽을 정도다. 그래서 인지 서가에 꽂혀 있는 서적들은 시위, 무정부주의, 반핵, 레즈비언, 인종차별, 문화연구 등 다분이 정치색이 강한 책들이 많다.

또한 ‘뉴스 프롬 노웨어’의 서가를 찬찬히 둘러 보면 대안문화공간이라는 느낌도 받는다. 외국 유학생이 많은 리버풀 대학이 인접해 있어 아시아, 아프리카, 남미 등 다문화와 관련된 책과 자료가 풍성하다. 이국적인 분위기의 건물 외관과 서가 사이에 놓여진 에스닉풍의 소품들은 전시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다.

△‘레이드 오브 리버풀’(Reid of Liverpool)

‘뉴스 프롬 노웨어’에서 10분 정도 북쪽(Mount Pleasant)으로 걸어 가면 빛바랜 간판과 오래된 벽돌이 인상적인 헌책방 ‘레이드 오브 리버풀’(Reid of Liverpool)을 만나게 된다. ‘리버풀의 수도원’이라는 뜻의 서점은 이름 그대로 세상과 동떨어진 200여 년 전 모습 그대로다. 1785년 건립된 조지안 양식의 벽돌건물은 리버풀 시민들에게는 사적지와도 같다.

서점 안으로 들어서면 왼쪽 벽에 설치된 벽난로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건물이 건립될 당시부터 설치돼 있었다고 하니 족히 200년이 넘은 골동품이다. 1975년 이 건물 1층에 책방을 연 제리 피츠패트릭(72·Jerry Fitzpatrik)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항상 벽난로 옆에 앉아 방문객을 맞는다. 오래된 건물과 벽난로, 손때 묻은 헌책이 어우러진 서점은 관광객들 사이에 꼭 가봐야 할 명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레이드 오브 리버풀’은 고객들에게는 꽤 ‘불친철한’ 곳이다. 장르별, 주제별로 책이 분류되지 않는데다 안내해주는 젊은 직원도 없어 고객은 바닥에서부터 천장까지 빽빽한 책더미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책을 건져내야 한다. 그럼에도 이 곳을 찾는 방문객들은 오히려 이런 불편함에서 색다른 매력을 느낀다. 마치 누군가 깊숙이 묻어놓은 모래에서 보석을 찾는 것처럼.

‘레이드 오브 리버풀’의 주 고객은 인근 리버풀 대학의 대학생들과 고서 애호가다. 특히 소장하고 있는 책 가운데에는 18세기의 진귀한 책들도 많아 런던과 버밍엄햄 컬렉터들의 원정방문이 줄을 잇는다. 리버풀의 명소로 자리잡은 덕분에 자선단체나 고서 수집가들로 부터 종종 헌책을 기증받기도 한다.

무엇보다 이 서점의 특징은 고객들과의 ‘벽’을 깨뜨린 컨셉이다. 쇼윈도의 유리를 없앤 덕분에 누구라도 길을 걸어 가다 바로 서가에서 책을 꺼내 볼 수 있다. 종종 늦은 밤, 일부 학생들의 돌출행동으로 책이 분실되는 경우를 대비해 가림막을 설치하는 경우를 빼곤 ‘열린 서가’를 운영한다.

△‘커나한 북스’(Kernaghan Books)

리버풀의 ‘경리단길’쯤 되는 블루코트에는 영화에 등장할 법한 아담한 책방이 있다. 올해로 31년 동안 서점을 운영하고 있는 브라이언(Brian Kernaghan)과 알린 (Alwyne Kernaghan)부부의 ‘커나한 북스’(Kernaghan Books)다. 리버풀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1717년 건립)인 블루코트 빌딩 1층에 자리한 서점은 아름다운 안뜰을 품고 있어 갤러니나 골동품 숍 같은 분위기가 풍긴다.

60대 중반인 커나한 부부는 책과 함께 청춘을 보낸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의 브라이언은 영국 버밍험햄의 대학에 진학, 그 곳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난 후 취업 대신 평소 좋아하던 책과 함께 하는 삶을 택했다. 이들 부부의 마음을 하나로 묶은 건 “책을 읽는 사람이 세상을 얻는다”는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조크의 메시지였다.

특별히 고서점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브라이언은 “헌책에서 풍기는 퀴퀴한 냄새는 아주 잘 숙성된 와인처럼 매력적이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어린 시절 책읽기를 좋아했는데 가정형편이 어려워 책을 사서 볼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이런 제가 안쓰러웠는지 아버지는 종종 동네 도서관에 저를 데리고 가 마음껏 책을 읽도록 하셨어요. 그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었던 행복한 기억이 서점을 운영하게 한 계기가 됐죠.”

부부는 아침에 일어나자 마자 곧장 일터로 향한다. 서점이 거실 겸 직장이자 휴식처인 셈이다. 이들 부부는 집과 직장의 개념을 구분하지 않기 위해 마치 거실 처럼 서점도 아늑하고 편안하게 꾸몄다. 1만5000권을 소장하고 있는 서가에는 400년 이상된 고지도에서 부터 18∼19세기 문학 작품, 리버풀과 관련된 역사책 등 다양하다. 영국 전역의 고서적 컬렉터나 엔티크 경매 등을 통해 수집한 것들이 대부분이다.

책방을 나오는 순간, 서가 한켠에 적혀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왔다. “책은 배터리 충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A book doesn’t need battery)

/jhpark@kwangju.co.kr





※ 이 시리즈는 삼성언론재단의 기획취재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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