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어디까지 가봤니?] <2> 나주·화순으로의 시간여행
하룻밤 새 천불천탑 세워 새 세상 열어보려 했는데…
2018년 01월 24일(수) 00:00

화순 운주사 와불. 화순 도암면 천불산 기슭에는 수십개의 석탑과 100여개의 석불이 널브러져 있다.

미스테리 시간여행을 떠난다. 기록이 없으니 떠도는 이야기가 진실이다. 그럴싸한 이야기를 보탠다면 나의 상상 속 나래도 진실이 될 터다. 역사적 기록은 전무하다. 하지만 실체적 진실은 존재한다. 무덤이다.

영산강 유역에 흩어져 있는 1500년 전 마한 고분. 그보다 1500∼2500년 거슬러 올라가 조성된 돌무덤. 이 무덤들에는 고대 수수께끼가 담겨진 블랙박스가 내장돼 있다. 그리고 화순 운주사 천불천탑에는 민중의 염원이 새겨져 있다.



△ 3층 아파트형 무덤 ‘복암리고분’

나주시내에서 1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영산강을 건너면 오른쪽 복암리에 4개의 동산이 있다. 아이들 미끄럼틀로 제격인 이 동산이 한반도 역사를 다시 쓰게 했다.

1996년 주변 정비복원 작업을 하던 중 동산 하나가 고분으로 밝혀졌다. 잊혀졌던 한반도 역사의 한 페이지가 들춰진 것이다. 1500년 전 흙의 이야기다. 커다란 토기유물을 간직한 고대 한 왕국 이야기다.

복암리고분은 알면 알수록 놀랍다. 전체적으로는 사다리꼴 모형이다. 한 변의 길이 40m, 높이 6m로 거대하다. 봉분 하나에 총 42기에 달하는 무덤이 들어있다. ‘아파트형 무덤’인 것이다.

형태도 다양하다. 마치 특이한 무덤의 전시장 같다. 목관묘, 옹관묘, 석곽옹관묘, 석실묘, 수혈식석관묘, 횡구식석관묘, 횡혈식석실묘 등 7개 양식으로 ‘인테리어’된 아파트 무덤이다. 인테리어 기간만 400년이 걸렸다.

1층에는 옹관묘들만 있다. 그 위 2층은 대형 석실에 옹관묘가 만들어지고 봉분이 조성됐다. 그리고 3층은 경사면을 타고 굴을 뚫어 석실이 새로 추가됐다. 묘제 방식과 철제품·구슬·금장식품 등 부장품들을 보면 3세기 중반에서 7세기 초반까지 400년에 걸쳐 만들어졌다.

특히 96석실에서는 거대한 옹관이 발굴됐다. 길이 2m에 가까웠다. 세계 어디에도 이 같은 거대 옹관은 사용된 적이 없다. 심지어 현대과학기술로도 2m 옹관을 제대로 만들지 못할 정도다. 복원팀은 아직까지 1m50㎝ 복원하는데 그쳤다.

영산강 유역을 기반으로 이 거대 옹기를 만들었던 세력은 누구였을까.

5세기 한반도 서남부는 ‘마한’이라고 불렸다. 하지만 마한이 백제계에 통합된 것인지, 독자적인 세력이었는지, 역사적 진실은 밝혀지지 않았다.

다만, 복암리고분에는 영산강 고유 무덤을 비롯해 백제계·왜계 무덤이 공존하고, 지역 고유 물건과 백제계·대가야계·왜계 물건들이 무덤 안에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으로 보아 대외 교류가 활발했던 것만은 확실하다.

△ 공동체 결속을 표현한 랜드마크 ‘고인돌’

시기를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 보자. 화순에는 이런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하늘에 닿을 만큼 키가 크고 산을 들어 올릴 만큼 힘이 센 거인인 마고할머니가 어느 날 운주골에서 천불천탑을 쌓는다는 소문을 듣고 치마에 돌을 싸서 길을 나섰다. 그런데 도중에 닭이 울어 탑을 다 쌓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화가 나 돌을 발로 차버렸다. 그 돌이 핑매바위다.”

핑매바위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고인돌이다. 길이 7m, 높이 4m, 덮개돌 무게 200t이 넘는다.

고인돌이 만들어지던 시기는 3000∼4000년 전. 촌락공동체를 이루던 청동기시대다. 그 시대 돌은 신비력을 가진 것으로 신앙의 대상이었다. 돌무덤인 고인돌은 죽은 이의 혼령이 안식하는 곳이자, 살아있는 이를 보호하는 의미도 담겼다.

고인돌은 우리나라에서 흔하다. 남한에 3만여기, 북한에 1만여기가 발견됐다. 이는 전 세계 고인돌의 40%에 해당한다. 고인돌의 가치는 세계가 인정한다. 유네스코는 화순을 비롯해 고창, 강화 3곳의 고인돌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다.

화순 도곡면과 춘양면의 경계인 보검재. 4㎞ 계곡을 따라 고인돌이 596기가 모여있다. 언뜻보면 그냥 바위덩이다. 어느 것 하나 똑같은 것이 없다. 핑매바위와 같이 거대한 덮개돌을 가진 고인돌이 있는가 하면 작은 고인돌이 군락을 이루기도 한다.

고인돌은 지배자의 무덤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렇다면 군락을 이룬 작은 고인돌들은 무엇일까.

군락을 이룬 고인돌은 혈연을 기반으로 한 공동묘역으로 추정된다. 지배자뿐 아니라 누구나 묻힐 수 있는 무덤양식이었던 듯하다.

그렇다면 거대한 핑매바위 고인돌은 누구의 무덤이었을까. 규모가 크고 잘 다듬어진 고인돌이 높은 곳에 위치한 경우, 무덤이라기보다는 제단으로서 기능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러 집단의 협동과 결속력을 다지기 위한 상징적인 기념물, 즉 랜드마크인 것이다.

그런데, 이 거대한 덮개돌 핑매바위는 어디에서 어떻게 구해온 걸까. 핑매바위 위 산기슭에 채석장이 보인다. 그 곳이 탯자리다. 그 곳엔 큰 돌들과 돌을 잘라낸 흔적들이 남아있다. 채석장이 확인된 게 화순 고인돌 유적의 특징이다. 돌을 이용해 암석에 구멍을 판 뒤 마른나무를 박고 그 위로 물을 부으면 나무가 팽창해 바위를 가르는 원리를 활용했다. 고대인들의 과학적 사고가 놀랍다.

△ 풀리지 않는 천불천탑의 신비 ‘운주사’

누가, 언제, 왜 세웠는지 밝혀지지 않은 신비로운 유물이 또 있다. 화순 도암면 천불산 기슭에는 수십개의 석탑과 100여개의 석불이 널브러져 있다. 어설프고 못생겨 당황스럽다. 천불천탑의 운주사다.

여기에도 상상의 이야기가 감춰져 있다. 와불(臥佛)에 깃든 이야기다.

‘도선국사가 하룻낮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워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고자 했으나 공사가 끝나갈 무렵 일하기 싫어한 동자승이 “꼬끼오”하고 닭소리를 내는 바람에 석수장이들이 모두 날이 샌줄 알고 하늘로 가버려 결국 불상 2기가 일어서지 못하고 와불로 남게 됐다. 와불이 일어나는 날, 이 곳이 서울이 된다’

일어나지 못한 부처는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불어넣었다. 작가 황석영은 그의 소설 ‘장길산’ 말미에 관군에 대패한 주인공 길산이 천민·노비들과 함께 새 세상을 꿈꾸며 천불천탑을 세우려다 실패한 장소로 그렸다.

운주사 한 가운데에는 특이한 부처가 있다. 큰 돌집 아래 2개의 석불이 등을 맞대고 앉아 있다. 싸운 걸까. 팔작지붕 아래 불감 속 부처, 목조 건축을 석조로 재연한 것으로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구조다. 보물 제797호 석조불감이다. 특이한 돌부처와 석탑이 한 절 안에 모여있어 천불천탑에 대한 독특한 신앙을 보여준다. 평면적이면서 토속적인 생김새에 균형이 잡히지 않아 어색한 신체구조를 지닌 불상, 공 모양의 탑이나 호떡 모양의 돌을 올린 탑 등 모양이나 무늬의 표현방식이 독특해 민중불교의 성지, 밀교의 전래지로도 불린다.

전남도문화관광해설사 최순희 씨는 “운주사는 파격이고 창조다. 선조들이 돌부처에 자신의 고단한 삶을 투영하며 자신들의 이야기를 만들었듯, 관람객들도 자신의 이야기와 염원을 하나씩 새겨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



☞주변 가볼만한 곳

금성관(사진)은 나주목 객사 정청으로, 전라도 상징이다. 고려∼조선시대 지방궁실로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고을의 관리·선비들이 모여 망궐례(임금이 있는 궁궐을 향해 배례하는 의식)를 올리던 공간이다. 양쪽의 동익헌과 서익헌은 중앙에서 내려온 관리들이 유숙하던 곳이다. 금성관 인근엔 목사내아 ‘금학헌’이 있다. 조선시대 나주목에 판견된 지방관리인 목사의 살림집이다. 걸어서 10분거리엔 드라마 ‘성균관스캔들’ 촬영지 나주향교(061-334-2369)가 있다. 성균관 유생들이 기거하던 장소다. 복암리고분에 가면 반드시 반남고분군과 마한 유물을 전시해놓은 국립나주박물관(061-330-7800)을 들러야 한다.

화순에는 천하제일경 ‘화순적벽’(061-379-3501∼7)이 있다. 국가명승 제112호로 지정된 화순적벽은 소동파가 읊었던 중국의 적벽에 버금간다하여 이름 지어졌다. 철옹산성 절벽과 동복호 물이 어우러져 천혜의 장관을 연출한다. 다만, 겨울에는 차량을 운행하는데 위험이 있어 개방하지 않는다. 올해 첫 개방은 3월24일이며, 매주 수·토·일요일에 탐방객을 받는다. 적벽투어는 사이트 ‘tour.hwasun.go.kr’에서 예약해야 한다. 교과서에 나오는 공간도 있다. 국보 제57호 철감선사탑이 있는 이양면 ‘쌍봉사’(061-372-3765)와 조선 중종때 유교적 이상정치 꿈꾸며 개혁정치를 편 ‘정암 조광조 유허지’다.



☞식당

금성관 바로 앞에 나주의 대표 먹거리 ‘곰탕거리’가 있다. 나주곰탕은 소뼈를 우려내는 일반 곰탕과는 달리 소뼈를 적게 넣고 양지·사태 등 좋은 고기를 삶아 육수를 내기 때문에 국물이 맑고 맛이 개운하다. ‘영산포 홍어거리’도 들를만 하다. 홍어는 전라도 대표음식으로, 톡 쏘는 홍어에 잘 삶은 돼지고기와 묵은김치를 곁들이면 홍어삼합이 된다. 화순 먹거리로는 ‘사평 기정떡’(061-371-2211)이다. 화순군청 앞 ‘약산흑염소’(061-373-9292)는 보양식인 흑염소탕이 맛있다.



☞숙박

목사 내아인 ‘금학헌’(061-332-6565)에서 잠을 잘 수 있다. 특히 이 곳에서 하룻밤 자면 기운이 살아나 만사형통한다해 인기가 높다. 종가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남파고택’(061-332-6100)에서도 묵을 수 있다. 화순에서는 천불천탑 ‘운주사’(061-374-0660)에서 탬플스테이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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