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폴리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자](1) 프롤로그
2018년 01월 02일(화) 00:00
서른개의 문화 이정표 … 세계에 내놓을 광주 문화자산으로

옛 광주읍성의 기억을 간직한 정세훈·김세진 작 ‘열린 장벽’ <광주비엔날레 제공>

초록색 잔디와 빨간색 조형물이 어우러진 라빌레트 공원은 한폭의 그림이었다. 돗자리를 깔고 일광욕을 즐기는 금발의 미녀, 아빠와 배드민턴을 치며 행복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 자동차 소음과 매연이 가득한 파리 시내와 달리 평온한 기온이 감도는 낙원이었다.

벌써 3년이 지났지만 파리 라빌레트 공원의 추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무엇보다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건 공원 곳곳에 설치된 ‘폴리’였다. 광주폴리의 모델이기도 한 빨간색 조형물은 특별해 보였다. 수동적 감상의 대상인 오브제가 아니라 시민들과 소통하는 문화공간이었다. 빨간색의 강철에 10m 높이의 네모형태로 디자인된 34개의 폴리는 레스토랑, 전망대, 카페, 도서관, 인포메이션 센터 등 다양했다. 폴리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읽는 게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당시 광주 도심에 설치된 일부 폴리는 장소성과 공간 개념을 고려하지 않아 시민들과 겉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광주는 폴리에 대한 추억이 그리 좋은 편은 아니다. 지난 2011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 특별프로젝트 일환으로 추진된 폴리는 쇠락한 구 도심을 되살리기 위한 카드로 옛 광주읍성터에 10개가 설치됐다. 하지만 디자인비엔날레 개막일에 맞춰 급조된 탓에 주변 건물이나 시민들의 동선과 충돌하면서 일부 작품은 애물단지가 됐다. 시민단체들은 공개질의서를 통해 시민들과의 소통없는 행정편의주의 등을 꼬집기도 했다.

반면, 번잡한 도심 교차로의 자투리 공간을 시민휴식공간으로 탈바꿈한 후안 헤레로스의 ‘소통의 원두막’과 불법 주·정차로 혼란을 빚었던 구시청 앞을 질서있는 길목으로 탄생시킨 도미니크 페로의 ‘열린 공간’은 삭막한 도심에 활기를 불어넣는 명물이 됐다.

특히 광주폴리는 지난 2012-2013년의 2차 프로젝트를 계기로 변곡점을 맞는다. 기존의 1차 폴리와 달리 ‘인권과 공공공간’이라는 주제로 광주의 이념 등에 무게를 둔 작품을 선보였다. 광주의 정체성과 공간개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는 비난을 수용해 2차 프로젝트의 총감독을 맡은 독일 건축가 니콜라우스 히르쉬가 광주역, 광주천변 등으로 외연을 넓힌 것이다. 하지만 1차 폴리에 비해 작품성과 기능성이 크게 미치지 못한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2014-2016년 진행된 3차 광주폴리는 ‘도시의 일상성-맛과 멋’을 주제로 산수동, 충장로, 영상복합문화관 등에 시민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11개의 작품을 탄생시켰다. 총감독을 맡은 천의영 경기대 교수는 다소 무거운 주제였던 기존 1, 2차 폴리와 차별화하는 데 주력했다. 천 감독은 도시의 맛과 멋을 느끼고 체험하는 영역으로 뷰폴리, 쿡폴리, 뻔뻔폴리, 미니폴리, GD폴리 등 새로운 컨셉을 선보였다.

이 가운데 광주도심 재생사업의 거점공간으로 추진된 쿡폴리는 스타셰프 장진우를 영입해 지역의 청년들에게 창업의 발판을 제공하는 효과를 거뒀다. 또한 도심의 버려진 뒷골목을 미디어 작품으로 부활시킨 건축가 김찬중과 미디어아티스트 진시영의 ‘뻔뻔폴리’는 미디어아트의 전진기지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이런 폴리의 ‘이유있는 변신’은 도시의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효과로 이어졌다. 최근 1∼2년 사이에 가족단위 방문객이 늘어나는 가 하면 전국 각지에서 도시재생의 벤치마킹사례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특히 3차 광주폴리사업이 지난해 9월 문화체육관광부의 ‘2017 대한민국 공간문화대상’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하면서 문화자산으로서의 기대감을 높이고 있다.

최근 광주에서도 광주폴리를 브랜드화 하려는 움직임들이 가시화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올해 일반에 공개될 예정인 ‘광주폴리 둘레길’이 그중의 하나다. ‘광주폴리 둘레길’은 지난 2014년 국토부의 2014년 국토환경디자인시범사업에 선정돼 기본계획과 기본설계를 위한 국비 지원액, 시비 등 3억5000만원이 투입됐다. 광주시로 부터 폴리운영을 위탁받은 광주비엔날레재단은 옛 광주읍성터에 설치된 광주 폴리 10개소(1차폴리)를 연결하는 2.2㎞ 규모의 폴리 둘레길을 조성했다.

하지만 광주폴리가 지역을 넘어 문화자산으로 자리매김 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이 전제돼야 한다. 광주의 거리를 수놓고 있는 30개의 광주폴리는 다른 도시에서 보기 힘든 관광자원인 만큼 국내외에 알리는 마케팅과 홍보는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12월 광주비엔날레 재단이 주최한 ‘광주폴리, 문화도시 서른 개의 이정표:다시 & 미리보기’ 심포지엄은 폴리의 미래를 조망하는 뜻깊은 자리였다. 특히 기조발제를 맡은 이용우 감독(상하이 예술프로젝트)의 메시지는 긴 여운을 남겼다. “10년 후에도 폴리가 광주의 명물로 생명력을 갖기 위해서는 시민과의 소통을 고려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못한다면 폴리의 무용론이 등장할지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번 기획은 광주폴리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기 위한 첫번째 여정이 될 것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올해는 광주폴리와 가까워지는 한 해가 됐으면 좋겠다. 30개의 폴리에 어떤 매력과 스토리가 숨어 있을지. 벌써 궁금해진다.

/박진현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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