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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홍재의 세상만사] 잊혀진, 그러나 잊을 수 없는 노래들

2017. 12.15. 00:00:00

“비둘기처럼 다정한/ 사람들이라면/ 장미꽃 넝쿨 우거진/ 그런 집을 지어요” 참 따뜻한 노래다. 이 노래가 처음 나온 것은 1969년. 지금도 라디오를 틀면 금방이라도 흘러나올 것만 같은데, 벌써 50년이 다 되어가는 ‘흘러간 옛 노래’다. 하지만 노랫말이 포근한 데다 가락도 경쾌해서 전혀 예스럽게 느껴지지 않는다.
노래는 남았는데 가수는 잊힌 것인가. 최근에 이 노래를 부른 이가 조선의 마지막 황손인 이석(76)이라는 사실을 알고 깜짝 놀랐다. 고종 황제의 손자이자 의친왕의 아들인 그는 ‘비둘기 집’으로 반짝 인기를 얻기도 했지만 그의 삶은 결코 ‘비둘기 집’처럼 포근하지 못했다. 월남전 참전 후 부상, 막노동 전전, 가정불화, 자살 기도…. 그렇게 순탄하지 못한 삶을 살았던 그는 지금은 전주 한옥마을에 살며 문화 해설이나 강연 같은 일을 하고 있단다.
우리의 귀에 익은 노래들이 언제 태어났고, 또 어떤 사연을 품고 있는지를 알게 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에 읽은 한 권의 책은 무척 흥미로웠다. 노래로 세상을 바꾸고자 꿈꾼 사람들과 시대를 대변한 민중의 노래, 그리고 ‘노래 운동’의 역사를 오롯이 정리한 책!
한때 나의 애창곡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였다. 난 90년대 중반 어머니 회갑을 맞아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어린 자식들과 함께 부르기도 했을 정도로 이 노래를 좋아했다. 노랫말 중에 ‘어머님’이 들어 있다는 것도 회갑연 축가로 선택한 이유였을 것이다. ‘거센 바람이 불어 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가슴속에 사무쳐 오는∼’
수많은 민중가요의 사연을 기록한 이 책의 목차를 훑어본 뒤 맨 먼저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부분을 펼쳤다. 잘 아는 대로 이 노래는 연세대 출신 가수 안치환이 대학 시절에 만든 곡이다. 그는 1986년 총학생회장 선거에 출마한 후보를 위해 이 노래를 작곡했다고 한다. 졸업 후에 그는 ‘노래를 찾는 사람들’에 합류했고 1989년 2집 음반 작업을 함께하면서 이 노래를 포함시켰다. ‘노찾사’ 2집은 6월항쟁의 민주화 열기에 힘입어 대중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민중가요 세상을 바꾸다

“‘솔아 솔아∼’나 ‘임을 위한 행진곡’ 같은 5월 노래들은 제목만 들어도 눈물이 핑 돕니다.” 윤장현 광주 시장의 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윤 시장의 삶은 5·18과 떼어 놓으려야 떼어 놓을 수 없다. 서른한 살, 의사로서 하얀 가운을 입고 5·18을 맞은 그는 피 흘리며 죽어 가는 환자들을 보면서 분노했고, 그것은 의사로서 보장된 안정된 삶을 포기하게 했다.
20년 전 한 방송사 프로그램 진행을 맡고 있던 윤 시장은 5·18의 진실이 담긴 미국 기밀문서 ‘체로키 파일’을 처음으로 세상에 알리기도 했으며 그렇게 해서 미국의 언론인 팀 셔록과 ‘5월의 형제’로 맺어진 인연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같은 해 윤 시장은 사재를 털어 5월 광주의 생생한 취재 기록을 담은 ‘5·18 특파원 리포트’를 영문으로 출판하여 해외에 광주의 참상을 알리기도 했다.
윤 시장은 지금까지 기나긴 세월 동안 5월의 끈을 놓지 않으며 살아왔다. 향락이나 일탈의 유혹으로부터 견딜 수 있었던 것도 다 5월 덕분이라고 그는 생각한다. 윤 시장은 그런 점에서 ‘5월은 빚이면서 축복’이라 했다.
그가 4년 전 무모하게(?) 광주 시장에 도전했던 것도 5월과 무관치 않다. ‘광주 정신’은 그의 사고 체계를 지배하는 거의 모든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윤 시장은 이념에만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는 걸 잘 알았다. 무엇보다도 ‘잘 사는 광주’를 만들고 싶었다. 무참히 짓밟힌 ‘설움의 광주’를 ‘희망의 광주’로 탈바꿈시키고 싶었다. 지금 각광을 받고 있는 윤장현 표 ‘광주형 일자리’ 사업과 물불을 가리지 않는 기업 유치 노력 역시 그의 이러한 간절한 염원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이야기가 잠시 옆길로 샌 듯하지만 다시 책을 뒤적이다 보니 또 다른 많은 노래들이 추억을 불러일으킨다. 일제 강점기 저항 시인 이상화의 시에 곡을 붙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난 80년대 말 회사 야유회나 등산 뒤풀이 같은 흥겨운 마당에서 내 차례가 되면, 눈치도 없이 이 노래를 불러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들기도 했다. ‘빼앗긴 들에도’는 당시 음악 교사였던 변규백이 작곡했는데 1976년 창단된 극단 ‘상황’이 올린 첫 공연작의 주제가였다고 한다.
“나 태어나 이 강산에/ 투사가 되어∼” ‘투사의 노래’로 더 알려진 ‘늙은 군인의 노래’에 얽힌 사연도 극적이다. 이 노래를 작곡한 김민기는 서울대 미대에 다니면서 이미 ‘아침이슬’ 등을 작곡하고 통기타를 치며 노래도 했다. 그가 최전방에서 근무하던 1976년, 평생을 군인으로 살아 온 선임하사가 그에게 군 생활을 마감하는 심경을 털어놓았다. 이를 듣고 만든 노래.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내 청춘∼” 나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만 해도 푸른 옷이 군복인 줄 모른 채 그냥 죄수복이겠거니 짐작했었다. 처음 군인들만 부르던 이 노래는 이내 널리 퍼지면서 점차 대표적인 ‘노가바’(노래 가사 바꿔 부르기) 운동 가요가 되었다. ‘교사의 노래’ ‘농민의 노래’ ‘노동자의 노래’ 등으로.
1980년대 말 한창 노조 활동을 하면서 알게 된 노래로는 ‘꽃아 꽃아’가 있다. “꽃아 꽃아 아들꽃아/ 오월의 꽃아/ 꽃아 꽃아 아들꽃아/ 다시 피어나라∼” 5월 민중항쟁을 소재로 한 놀이패 신명의 마당극 ‘일어서는 사람들’에 나오는데 국악의 5음계로 돼 있어 매우 친근하게 들린다.
훌라송 가락에 맞춘, “전두환은 물러가라 물러가라” 아, 이 노래 또한 우리가 얼마나 많이 불렀던가. 1980년 시위 현장에서는 물론 그해 5월16일 ‘횃불 대행진’과 항쟁 기간에도 내내 불렀던 노래. 공수부대원들이 공격하면 흩어졌다가 어느새 모인 시위대들이 다시 힘차게 불렀던 노래.
5월 항쟁이 처절하게 막을 내린 이후 우리의 피를 펄펄 끓게 한 노래가 또 하나 있으니 바로 ‘오월의 노래’다. “꽃잎처럼 금남로에/ 뿌려진 너의 젊은 피/ 두부처럼 잘려 나간/ 어여쁜 너의 젖가슴” 사실에 근거한 이토록 잔혹한 이야기를, 어찌 이토록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표현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노래의 가사를 누가 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가락은 미셀 폴나레프라는 프랑스 가수가 부른 ‘누가 할머니를 죽였나’와 불문과 출신 가수 박인희가 번안해 부른 ‘사랑의 추억’과 매우 흡사하다.
“햇볕을 받는 것 중에 퇴색하지 않는 것이 없다지만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지기 전에 붙들어야 할 것들이 있다. 5월운동과 관련한 노래도 그들 중 하나다.” 목숨 걸고 벌였던 노래 운동의 역사가 사라질까 걱정하여 기록하게 됐다는 저자의 말 중 일부를 인용하면서 나 또한 노래 운동에 몸 바쳤던 수많은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이 글은 현재 전남대학교 5·18연구소의 전임연구원으로 있는 정유하 박사의 저서 ‘우리는 노래한다-민중가요와 5월운동 이야기’(한울, 2017)에 전적으로 의존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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