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미래 혁신학교에 가다] ④ 혁신학교의 고민
2017년 10월 31일(화) 00:00 가가
현실은 성적 지상주의 … 입시개혁 없인 ‘반쪽 혁신학교’
. ‘혁신교육 꽃피우기 전 우리 딸 꿈은 진다’, ‘지금도 힘들다 혁신까지 보태냐’, ‘입시개혁 없는 혁신학교 반대’, ‘준비안된 혁신교육 우리딸만 병든다’….
대광여고 총동문회 및 학부모 등이 지난 27일 열린 광주시교육청 앞 집회에서 내걸었던 피켓 문구들이다.
‘당면한 문제는 대학입시’, ‘혁신 꽃을 피우기엔 3년은 너무 짧다’, ‘검증안된 혁신교육보다 부족한 공교육이 낫다’ 등의 문구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이날 학교측의 ‘2018학년도 빛고을혁신학교’ 신청에 반발,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앞서 교사 반대 비율이 높고 학생·학부모 대상 공청회가 없었던 점, ‘명문 학교 출신’이라는 자긍심으로 살아온 총동문회 반대 등의 의견을 담은 ‘혁신학교 신청 철회 성명서’도 내놓았다.
결국 학교측은 혁신학교 응모 신청을 철회하는 공문을 교육청에 제출했다.
광주교육청이 대광여고를 ‘2018 혁신학교’로 지정하더라도 적용 대상은 내년도 신입생부터다.
고교생인 자녀들을 챙기기 바쁜 상황에서 재학생들과 직접 관련성이 없음에도 ‘후배’ 학부모들을 위해 ‘선배’ 학부모들과 동문들이 팔을 걷어붙이며 나선 이유는 뭘까. 주입·암기식 교육 대신, 토론하고 참여하는 창의적 수업을 하겠다는데 반대하는 까닭은 뭘까.
대광여고 사태는 국내 혁신학교에 대한 교육 수요자들의 인식과 혁신학교의 문제점, 해결해야할 과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는 게 교육계 안팎의 분석이다.
◇내 자녀, 학력 떨어지면 어쩌나=혁신학교는 교사 주도로 진행되는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 학생이 수업의 중심이 되어 토론하고 참여하는 창의적 수업을 통해 모든 구성원들의 개별적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한 학교다.
대광여고도 이같은 내용의 혁신학교 운영계획을 냈었다.
주입식 문제풀이 방식의 수업을 토론·배움공동체·거꾸로수업 등 학생참여형 수업으로 바꾸고 결과보다 과정 중심의 평가를, 선다형·단답형 평가 대신 서술·논술형 평가로, 자율학습보다 독서·동아리 등 자율활동을 중시하는 수업과 평가로 혁신하는 계획안을 냈다.
학생들 자치활동을 활성화하고 1학기 1교과 1독서토론, 1년 1인 1권 책 출판 등 독서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자율동아리와 방과후학교를 다양화하는 진로진학교육 중점 방안도 제시했다.
최근 대학 입시에서 보여지고 있는 변화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선발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자신이 지원하려는 학과와 전공,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교 1학년때부터 어떤 창의적 활동을 펼쳐왔는지 학생부에 담아내 보여주는 게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점을 감안하면 일반고에 비해 창의적 수업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혁신학교 수업 방식이 유리할 것 같지만 교육 현장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특히 혁신학교 학력 저하 우려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문제다.
3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혁신학교 학업성취수준’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혁신학교 고교생은 11.9%로, 전국 고교 평균(4.5%)보다 높았다.
혁신학교 중학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5%(전국평균 3.6%)로 조사됐다.
과목별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는 광주지역 일반고의 경우 국어과목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1.5%인 반면, 혁신학교 미달 비율은 2.7%로 나타났다. 광주 일반고의 영어 영역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은 2.9%로 나타났지만 혁신학교는 6.2%로 조사됐다. 수학의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은 일반고가 3.2%, 혁신학교가 5.0%로 파악됐다.
전남도 국어 영역을 제외하고 혁신 고교의 영어·수학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이 일반고에 견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초등학교만 하면 뭐하나=대학 입시와 연관성이 큰 고교로 갈수록 혁신학교가 적은 점도 혁신학교의 한계로 인식되고 있다.
광주의 경우 혁신학교 54곳 중 고교는 대안교육 특성화학교인 동명고와 공립고인 성덕고, 특성화고인 광주여상과 전남여상 등 4곳이 전부다. 특성화고를 제외하면 공립고 1곳 뿐이다.
전남도 비슷해 88개의 혁신학교 중 혁신 초등학교는 64곳에 달하지만 고교는 고작 3곳만 지정된 상태다. 그나마 2015년 이후로는 새롭게 지정된 혁신 고교가 한 곳도 없다.
정부가 혁신학교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음에도, 수학능력시험과 내신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 현실에서 인성·진로 교육 활동을 강화하는 수업 방식에 대해 걱정하는 학부모·학생들이 적지 않은 것도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혁신 초등학교에서 다양한 교과수업·체험활동, 토론 등 학습 방법을 익혔지만 일반 중학교를 배정받는가 하면, 일반 초등학교를 다니다 혁신 중학교로 입학하면서 겪게되는 혼선·이질감 등을 감당하기 버거워하는 학생들도 있다.
대학입시때문에 일반 교과로 내신을 신경써야 하는데다, 혁신학교의 차별화된 교육 과정에 맞춰 프로젝트 수업, 모둠·토론, 동아리활동, 학생자치활동 등도 준비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혁신학교를 부담스러워하는 학생들도 생겨날 수 있다는 게 교육계 지적이다. “지금도 힘들다, 혁신까지 보태냐”고 적힌 피켓을 든 학부모들의 주장을 흘려버릴 수 없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대입(大入)이 바뀌는 게 교육을 바꾸는 길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이같은 점 때문이다.
◇무작위로 발령나는 교사들=올 상반기, 전남에서 진행된 ‘2017 무지개학교 연찬회’는 교사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당시 연찬회에서는 혁신학교로 전입한 교사들을 중심으로 ▲혁신학교에 대한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갑자기 발령받아 느끼는 이질감 ▲혁신학교의 자율성에 길들여진 자유분방한 학생들을 접하는 어색함 ▲학부모들의 참여가 두드러지는 교육 활동에 대한 부담감 ▲지시만 받다가 ‘다모임’ 형태로 매일 회의를 열고 함께 고민하는 낯선 시스템 등에 대한 토로가 이어졌다.
혁신학교에서 교사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학교의 차별화된 교육과정과 운영 계획이 모두 교사들이 고민해 내놓기 때문이다. 일반학교에 비해 다양한 수업·토론·체험 활동을 하는 만큼 워크숍, 관련 연수를 통해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것도 교사 몫이다.
문제는 이렇게 전문성을 갖춘 교사들이 4년 뒤 일반학교로 발령이 나 옮기는 경우 혁신학교 교육 역량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반학교도 비슷하다. 적절한 준비도 없이 혁신학교로 옮기는 경우에도 문제점이 드러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혁신학교 근무를 마치고 4년 뒤 일반 학교로 발령나는 인사 시스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교육당국이 혁신학교 뿐 아니라 모든 교사들을 대상으로 전문성을 키우고 혁신학교 교육 과정에 도움이 되는 연수를 다양하게 마련,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 김지을기자 dok2000@kwangju.co.kr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대광여고 총동문회 및 학부모 등이 지난 27일 열린 광주시교육청 앞 집회에서 내걸었던 피켓 문구들이다.
이들은 이날 학교측의 ‘2018학년도 빛고을혁신학교’ 신청에 반발, 철회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앞서 교사 반대 비율이 높고 학생·학부모 대상 공청회가 없었던 점, ‘명문 학교 출신’이라는 자긍심으로 살아온 총동문회 반대 등의 의견을 담은 ‘혁신학교 신청 철회 성명서’도 내놓았다.
광주교육청이 대광여고를 ‘2018 혁신학교’로 지정하더라도 적용 대상은 내년도 신입생부터다.
고교생인 자녀들을 챙기기 바쁜 상황에서 재학생들과 직접 관련성이 없음에도 ‘후배’ 학부모들을 위해 ‘선배’ 학부모들과 동문들이 팔을 걷어붙이며 나선 이유는 뭘까. 주입·암기식 교육 대신, 토론하고 참여하는 창의적 수업을 하겠다는데 반대하는 까닭은 뭘까.
◇내 자녀, 학력 떨어지면 어쩌나=혁신학교는 교사 주도로 진행되는 주입식 교육에서 탈피, 학생이 수업의 중심이 되어 토론하고 참여하는 창의적 수업을 통해 모든 구성원들의 개별적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한 학교다.
대광여고도 이같은 내용의 혁신학교 운영계획을 냈었다.
주입식 문제풀이 방식의 수업을 토론·배움공동체·거꾸로수업 등 학생참여형 수업으로 바꾸고 결과보다 과정 중심의 평가를, 선다형·단답형 평가 대신 서술·논술형 평가로, 자율학습보다 독서·동아리 등 자율활동을 중시하는 수업과 평가로 혁신하는 계획안을 냈다.
학생들 자치활동을 활성화하고 1학기 1교과 1독서토론, 1년 1인 1권 책 출판 등 독서교육을 강화하는 한편, 자율동아리와 방과후학교를 다양화하는 진로진학교육 중점 방안도 제시했다.
최근 대학 입시에서 보여지고 있는 변화는 ‘학생부종합전형’(학종)으로 선발하는 비중이 늘어나면서 자신이 지원하려는 학과와 전공, 미래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고교 1학년때부터 어떤 창의적 활동을 펼쳐왔는지 학생부에 담아내 보여주는 게 중요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점을 감안하면 일반고에 비해 창의적 수업이 활발하게 이뤄질 수 있는 혁신학교 수업 방식이 유리할 것 같지만 교육 현장의 시선은 사뭇 다르다.
특히 혁신학교 학력 저하 우려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문제다.
30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곽상도 의원이 교육부에서 제출받아 공개한 ‘혁신학교 학업성취수준’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에서 기초학력에 미달하는 혁신학교 고교생은 11.9%로, 전국 고교 평균(4.5%)보다 높았다.
혁신학교 중학생의 기초학력 미달 비율은 5%(전국평균 3.6%)로 조사됐다.
과목별 학업 성취도 평가에서는 광주지역 일반고의 경우 국어과목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1.5%인 반면, 혁신학교 미달 비율은 2.7%로 나타났다. 광주 일반고의 영어 영역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은 2.9%로 나타났지만 혁신학교는 6.2%로 조사됐다. 수학의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은 일반고가 3.2%, 혁신학교가 5.0%로 파악됐다.
전남도 국어 영역을 제외하고 혁신 고교의 영어·수학 기초학력 미달자 비율이 일반고에 견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초등학교만 하면 뭐하나=대학 입시와 연관성이 큰 고교로 갈수록 혁신학교가 적은 점도 혁신학교의 한계로 인식되고 있다.
광주의 경우 혁신학교 54곳 중 고교는 대안교육 특성화학교인 동명고와 공립고인 성덕고, 특성화고인 광주여상과 전남여상 등 4곳이 전부다. 특성화고를 제외하면 공립고 1곳 뿐이다.
전남도 비슷해 88개의 혁신학교 중 혁신 초등학교는 64곳에 달하지만 고교는 고작 3곳만 지정된 상태다. 그나마 2015년 이후로는 새롭게 지정된 혁신 고교가 한 곳도 없다.
정부가 혁신학교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음에도, 수학능력시험과 내신을 중심으로 하는 교육 현실에서 인성·진로 교육 활동을 강화하는 수업 방식에 대해 걱정하는 학부모·학생들이 적지 않은 것도 한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혁신 초등학교에서 다양한 교과수업·체험활동, 토론 등 학습 방법을 익혔지만 일반 중학교를 배정받는가 하면, 일반 초등학교를 다니다 혁신 중학교로 입학하면서 겪게되는 혼선·이질감 등을 감당하기 버거워하는 학생들도 있다.
대학입시때문에 일반 교과로 내신을 신경써야 하는데다, 혁신학교의 차별화된 교육 과정에 맞춰 프로젝트 수업, 모둠·토론, 동아리활동, 학생자치활동 등도 준비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혁신학교를 부담스러워하는 학생들도 생겨날 수 있다는 게 교육계 지적이다. “지금도 힘들다, 혁신까지 보태냐”고 적힌 피켓을 든 학부모들의 주장을 흘려버릴 수 없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대입(大入)이 바뀌는 게 교육을 바꾸는 길이라는 말이 설득력을 얻는 것도 이같은 점 때문이다.
◇무작위로 발령나는 교사들=올 상반기, 전남에서 진행된 ‘2017 무지개학교 연찬회’는 교사들의 고민을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당시 연찬회에서는 혁신학교로 전입한 교사들을 중심으로 ▲혁신학교에 대한 철학을 이해하지 못하고 갑자기 발령받아 느끼는 이질감 ▲혁신학교의 자율성에 길들여진 자유분방한 학생들을 접하는 어색함 ▲학부모들의 참여가 두드러지는 교육 활동에 대한 부담감 ▲지시만 받다가 ‘다모임’ 형태로 매일 회의를 열고 함께 고민하는 낯선 시스템 등에 대한 토로가 이어졌다.
혁신학교에서 교사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학교의 차별화된 교육과정과 운영 계획이 모두 교사들이 고민해 내놓기 때문이다. 일반학교에 비해 다양한 수업·토론·체험 활동을 하는 만큼 워크숍, 관련 연수를 통해 전문성을 갖춰야 하는 것도 교사 몫이다.
문제는 이렇게 전문성을 갖춘 교사들이 4년 뒤 일반학교로 발령이 나 옮기는 경우 혁신학교 교육 역량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일반학교도 비슷하다. 적절한 준비도 없이 혁신학교로 옮기는 경우에도 문제점이 드러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혁신학교 근무를 마치고 4년 뒤 일반 학교로 발령나는 인사 시스템에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또 교육당국이 혁신학교 뿐 아니라 모든 교사들을 대상으로 전문성을 키우고 혁신학교 교육 과정에 도움이 되는 연수를 다양하게 마련,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 김지을기자 dok2000@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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