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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현의 ‘맛있는 이야기’ 일본이 향토 음식을 파는 방식

2017. 09.07. 00:00:00

박상현 맛 칼럼니스트

규슈는 일본열도를 이루는 4개의 큰 섬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있다. 면적은 한국의 절반에 조금 못 미치고 인구는 1300만 명 정도 된다. 한반도와 지리적으로 가까워 고대로부터 교류가 활발했던 곳이다. 역사는 묘하게 반복되고 있다. 최근 몇 년 사이 규슈는 한국인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여행지로 부상했다. 지리적 인접성, 다양한 항공편,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 풍부한 관광자원, 편리한 관광 인프라 등 규슈는 단기 여행 위주의 한국인이 선호할 만한 조건을 두루 갖췄기 때문이다.
전통과 지역성이 잘 보전되고 계승되는 일본에서도 규슈는 특히 인상적이다. 역사적으로나 지리적으로 도쿄나 오사카의 변방에 위치해 정체성을 지킬 수 있었고, 후쿠오카·가고시마·나가사키 등 몇몇 거점 도시를 제외하고는 농업과 어업이 여전히 산업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나는 규슈와 한반도 간의 음식 교류의 흔적을 취재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난 십수 년간 100여 차례 이상 규슈를 방문했다. 이 과정에서 향토 음식을 다루는 일본인의 매우 독특한 전략 하나를 발견했다. 결론부터 밝히면 그 전략의 핵심은 집요함이다.
규슈에는 우리의 광역 자치단체에 해당하는 일곱 개의 현이 있다. 각 현에는 그 지역의 환경과 특산물을 활용한 대표적인 향토 음식이 있기 마련이다. 후쿠오카 현에는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서 전래된 ‘고춧가루로 양념한 명란젓’인 ‘멘타이코’, 사가 현에는 현해탄에서 잡은 싱싱한 오징어를 사용해서 만두처럼 빚은 ‘이까쇼마이’, 구마모토 현에는 연근 구멍을 된장과 겨자로 채우고 울금 가루를 섞은 튀김옷을 입혀 튀겨 낸 ‘카라시렌콘’, 오이타 현에는 토종닭을 특유의 양념에 절여 치킨처럼 튀겨 낸 ‘가라아게’, 나가사키 현에는 중국식 소면을 튀겨 짬뽕 소스를 뿌려 먹는 ‘사라 우동’, 가고시마 현에는 흰 살 생선을 으깨 단맛이 강한 청주로 간을 해서 튀겨 낸 ‘사츠마아게’, 미야자키 현에는 두부와 오이 등을 곁들인 차가운 된장국에 보리밥을 말아 먹는 ‘히야지루’ 등을 꼽을 수 있다.
향토 음식은 단순히 먹는다는 경험을 넘어 지역의 풍토·역사·전통을 이해하는 요체다. 음식 그 자체로 중요한 관광 콘텐츠이자 만만찮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수단이다. 따라서 지역을 대표할 만한 음식을 선정하고 이를 홍보하는 것은 비단 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보편적인 방식이다. 그런데 일본이 향토 음식을 알리는 방식에는 보편성을 뛰어넘는 집요함이 있다.
세계 어디를 가나 호텔의 조식은 대부분 뷔페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일본 호텔의 뷔페는 크게 양식과 화식(일본식)으로 나눠져 있다. 화식은 일본인이 아침 식사 때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들로 구성된다. 밥과 된장국을 기본으로 야채 절임, 생선구이, 낫토, 계란말이, 두부, 김 등이다. 어느 지역 어느 호텔을 가건 이 구성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런데 여기에 더해 지역별로 향토 음식 코너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음식에 대한 설명과 먹는 방식도 친절하게 밝히고 있다. 후쿠오카 현에 있는 호텔에는 멘타이코가, 구마모토 현에 있는 호텔에는 카라시렌콘이 반드시 나오는 식이다. 간밤에 어디 멀리서 납치되어 왔다고 한들 호텔의 조식만 보면 자신이 현재 어느 곳에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정도다.
처음에는 내가 묵었던 호텔의 기발한 아이디어쯤으로 생각했다. 나중에는 지방자치단체의 바람직한 정책으로 이해했다. 하지만 규슈 전역을 돌아보고 셀 수 없이 다양한 호텔에서 묵고 나서야 그것이 특정 호텔 혹은 일부 지방자치단체의 방식이 아니라 당연하고 보편적인 방식이라는 걸 깨달았다. 하도 궁금해서 일본의 담당 공무원에게 혹시 이를 강제하는 규정이나 조례가 있는지 물었다. 당연히 그런 건 없다고 했다. 오히려 지극히 당연한 걸 왜 묻느냐는 표정이었다.
비단 호텔 조식뿐만이 아니다. 일본은 어느 곳을 가건 그 지역의 향토 음식을 반드시 먹고, 사게 만든다.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촘촘한 그물을 쳐 놓고 관광객이 절대로 빠져나갈 수 없도록 몰아가는 식이다. 그물에 걸린 관광객은 저도 모르게 향토 음식을 먹게 되고, SNS를 통해 먹을 걸 자랑하게 되고, 선물로 사게 된다. 덕분에 향토 음식은 지역의 관광산업에서 무시하지 못할 비중을 차지한다.
관광이란 무엇을(What)을 팔 것인지보다, 어떻게(How) 팔 것인지를 고민하는 산업이다. ‘어떻게’라는 것이 흔히 말하는 스토리텔링이다. 이 스토리텔링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지방자치단체는 자주 함정에 빠진다.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지 이야기(스토리) 그 자체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는 오로지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드는 일에만 열심인 경우가 많다. 이야기가 그럴듯해서 나쁠 건 없지만 이야기가 관광객으로 하여금 향토 음식을 먹도록 유인하지는 않는다.
일본은 향토 음식의 유래를 따지거나 스토리를 개발하는 대신 관광객에게 집요할 정도로 먹기를 권한다. 그리고 그들 스스로가 향토 음식에 애정을 가지고 즐겨 먹는다. 결국 관광산업에서 향토 음식의 전략은 팔고 싶은 것이 아니라 지역에서 오래 전부터 먹어 왔고 지금도 즐겨 먹는 것을 팔아야한다. 향토 음식은 존재 자체가 이야기이고 먹음으로써 이야기가 완성되는 독특한 서사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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