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들여다보기] 곡성 동리산문과 태안사
2017년 09월 05일(화) 00:00
산자수명(山紫水明)의 고장인 곡성은 북동부지역으로 섬진강이 관통하며, 지리산의 수려한 산세가 흘러내려와 전체적으로 산간지대가 발달하고 협소한 분지형태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삼국시대 초기에 전래된 불교는 통일신라말기에 화려한 불교문화를 꽃피웠는데, 경전을 중시하는 교종 위주의 5교(五敎)와 주관적 사유를 강조하는 당(唐)에서 유입된 선종 교리의 9산(九山)이 확립되었다. 선문(禪門)구산 가운데 호남지역에서는 곡성의 동리산문 태안사와 장흥의 가지산문 보림사, 남원 실상산문의 실상사 등 3곳이 속하였다.

동리산문(桐裏山門)은 신라 문성왕 때인 839년 혜철(惠哲)선사가 지금의 곡성 죽곡면 동리산에 태안사(泰安寺)를 설립하면서 개산했다. 이에 앞서 742년 3명의 신승(神僧)이 대안사(大安寺)를 창건함으로써 사찰의 역사가 시작되었다고 전해진다. 혜철은 당나라에 건너가 서당지장(西堂地藏) 스님에게서 수학한 후 귀국하여 태안사에서 선법을 펼쳤다. 통일신라 말기의 고승이며 음양학에 기초한 풍수지리설의 시조로 불리는 도선(道詵:827∼898) 그리고 여(如) 선사와 함께 동리산문의 3대 조사(祖師)로 일컬어진다.

태안사는 조계종 제19교구 본사인 화엄사에 소속된 사찰로 고려초기 광자대사(廣慈大師) 윤다(允多)가 중창하여 132칸의 당우를 지어 동리산문의 중심사찰로 우뚝 서게 되었다. 고려 초기까지는 송광사·화엄사 등 전라도 대부분의 사찰이 태안사의 산하에 있었으나, 고려 중기에 송광사가 수선(修禪)의 본사로 독립되어 떨어져나감에 따라 사찰의 권한이 축소되었다. 조선시대에는 효령(孝寧)대군의 원당(願堂)이 되어 조정의 지원을 받았다. 1683년 정심(定心)이 중창하였고 1737년에는 능파각(凌波閣)을 세웠다. 이후 200여년 동안 평온한 시대를 누리다가 6·25동란을 맞이하여 능파각·일주문을 제외하고 대웅전을 비롯한 15채의 건물이 소실되는 참화를 당하였으나 해방 이래 지속적인 중창불사로 옛 모습을 거의 회복하였다. 현재 복원된 당우로는 1969년 재건한 대웅전을 비롯하여 천불보전·만세루·해회당(海會堂)·선원 등이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혜철국사의 부도인 보물 제273호의 적인선사 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 윤다의 부도인 보물 제274호의 광자대사탑(廣慈大師塔), 보물 제275호인 광자대사비, 보물 제956호인 대바라,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4호인 천순명동종 등이 있다. 1447년 효령대군 발원으로 만들어진 대바라는 둘레 3m로서 우리나라 최대의 것이다. 천순명동종은 1465년에서 1475년 사이에 만들어진 것으로 공예수법이 뛰어나다. 능파각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 일주문은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되어 있다.

유서 깊은 천년고찰 태안사가 1950년 한국동란 때에 국군과 좌익(빨치산) 간의 치열한 전투의 장으로 탈바꿈한 것은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이제 가슴 아픈 역사를 털어내고,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관용하라 설파한 부처님의 대자대비한 정신이 구현되는 진정한 평화의 시대를 간구해 본다.

/김형주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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