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고록
2017년 08월 21일(월) 00:00
‘한중록’(閑中錄)은 조선시대 혜경궁 홍씨(1735∼1815)의 자전적 회고록이다. 혜경궁 홍씨는 정조의 생모이면서 사도세자의 부인이었다. 그녀는 28세에 시아버지 영조에 의해 남편이 뒤주에 갇혀 죽임을 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한중록’에는 사도세자의 참변을 비롯해 당대의 종사(宗社)와 관련된 당쟁 등이 기술돼 있다. 모두 4편으로 구성된 책에는 궁중 생활 회고,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 등이 담겨 있다. 또한 배후설 혐의를 받는 친정아버지 홍봉한 등의 억울함을 해명하는 내용도 있다.

학자들 가운데는 한중록이 멸문지화를 당한 친정의 누명을 호소하기 위해 쓴 글이라고 보는 이도 있다.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일말의 사실 변조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다. 혹여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것은 조선이 피비린내 나는 당쟁의 역사로 점철된 나라라는 선입견 때문일 터다.

그러나 이십 대에 청상이 된 혜경궁 홍씨가 남편의 참변과 관련된 비사를 기술함에 있어 거짓이나 왜곡을 했을까 싶다. 사별의 비통함을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야 했던 여인이 말이다. 한중록은 군데군데 구성의 허술함이 엿보이는데, 그것은 특정한 목적에 의해 기획되지 않았음을 반증한다. 당시를 기술하는 현장감이나 전아한 문체는 궁중문학의 정수, 국보급 회고록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뛰어나다.

광주의 5·18을 다룬 영화 ‘택시운전사’의 돌풍과 맞물려 ‘전두환 회고록’이 새삼 주목을 받고 있다. 광주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린 독일 기자 위르겐 힌츠페터의 이야기는 당시의 사진과 기록이라는 철저한 증거를 토대로 하고 있다. 그에 비해 ‘전두환 회고록’과 이전에 발간된 ‘이순자 자서전’은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 지은 사상누각’에 지나지 않는다.

5·18 학살의 책임자인 전 씨는 자신을 ‘씻김굿의 제물’이라고 항변했다. 그들의 회고록과 자서전은 과거의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한 기억의 재구성일 뿐이다. 더욱이 두 책은 큰아들 전재국 씨가 운영하는 출판사 자회사에서 발간됐다. 교묘한 기획하에 ‘셀프 출판’이 이루어졌고 왜곡이 가해졌음을 뒷받침한다. 회고록을 쓰기 전 ‘피 묻은 손을 씻는’ 진정한 참회가 먼저라는 것을 과연 몰랐을까.

/박성천 문화부 부장 sky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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