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호남지] 제6부-사상·종교의 산실 호남 (2) 호남의 신종교, 격변의 시대에 등장하다
2017년 07월 11일(화) 00:00
토종 종교, 이질적 서양문명에 창조적으로 맞서다

원불교 발상지인 영광군 백수읍 길용리 영산성지.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가 태어나 성장하고 구도의 고행 끝에 큰 깨달음을 이뤄 9명의 제자들과 함께 원불교를 창립한 곳이다. 〈원불교 기록관리실 제공〉

호남은 신종교의 땅이다. 아니 호남은 ‘문명개벽’이라는 인류사적 사명을 띤 개벽종교가 잇따라 탄생한 성지이다. 동학,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와 같은 개벽종교들을 낳은 땅인 것이다.

역사는 긴 안목 즉 장기적 관점(Long Memory)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바라보면 단기적 관점에서는 보이지 않던 측면이 자연스럽게 드러나게 된다.

1860년 음력 4월5일에 경상도 경주에서 수운 최제우(崔濟愚, 1824-1864) 선생이 동학(東學)이라는 새 종교를 창도한다. 동학 창도는 우리들이 우리나라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리 종교’를 가지게 되었다는 역사적 의미를 지닌 대사건이었다. 그로부터 34년 뒤에 고부접주 전봉준 장군에 의해 동학농민혁명의 횃불이 전라도 땅에서 활활 타오르게 된다. 뿐만 아니라, 동학 창도로부터 약 60년 뒤인 1916년에는 전남 영광에서 소태산 박중빈(朴重彬, 1891-1943)이라는 무명 청년이 ‘대각(大覺)’을 이루고 풀뿌리 민중들을 모아 새로운 종교운동을 시작한다. 원불교가 창교(創敎)된 것이다.

한국 신종교의 효시인 동학과 그 동학의 실천적 전개라고 볼 수 있는 동학농민혁명이 전라도에서 일어나고, 다시 동학의 개벽사상을 창조적으로 계승한 원불교가 전라도에서 창교되게 된 데에는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그 이유를 알려면 역사를 ‘Long Memory’ 곧 긴 안목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바로 그런 긴 안목에서 보아야만 동학과 원불교 창교의 우주사적, 세계사적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

동학과 원불교 등 한국 신종교는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걸쳐 등장한다. 그렇다면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반에 이르기까지 약 1세기 동안의 우리 역사는 과연 어떤 역사였을까? 이 시기는 한 마디로 대전환기였다. 우리 역사에서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역사적 대전환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역사적 대전환기를 수운 최제우, 소태산 박중빈 등 신종교 창시자들은 ‘선후천 교역기(先後天 交易期)’ 즉 선천시대에서 후천시대로 바뀌는 개벽의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를 풀어 말하면, 한국 신종교들이 등장하는 시대는 이른바 낡은 시대인 선천시대(先天時代)가 끝나고 새 시대인 후천시대(後天時代)가 열리는 역사적 대전환기라는 말이 되겠다.

한국사를 살펴보면, 신종교의 효시(嚆矢)인 동학과 그 뒤를 이은 증산교, 대종교, 원불교 등이 등장하기 이전에 두 차례의 커다란 역사적 전환기가 있었다. 그 첫째가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에 걸친 전환기이다. 일반적으로 나말여초(羅末麗初)라 부르는 이 시기는 통일신라에서 고려로 넘어오는 전환기로써 학자들은 이 전환기를 고대(古代) 사회에서 중세(中世) 사회로 넘어오는 전환기로 보고 있다. 둘째는 고려에서 조선으로 넘어오는 전환기이다. 이를 줄여 여말선초(麗末鮮初)라 한다. 이 시기를 역사학에서는 중세 전기(中世 前期) 사회에서 중세 후기(後期)로 넘어오는 전환기라고 부른다.

그런데 위의 두 전환기에는 공통되는 특징 세 가지가 있었다. 첫째 두 전환기 모두 동아시아 문화권(또는 유교문화권, 한자문화권)이라는 동일 문화권 안에서 일어난 전환기라는 것이다. 둘째, 우리나라와 이웃한 중국이 강력한 통일국가를 이루지 못하고 분열되어 있었거나 혼란한 시대에 놓여 있었다는 사실이다. 셋째, 이 두 차례의 전환기는 모두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게 됨과 동시에, 고려와 조선이라는 새로운 통일왕조 수립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요컨대, 위의 두 전환기에는 모두 새 시대로 ‘성공적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대(古代)와 중세(中世)에 맞이했던 역사적 전환기를 모두 성공적으로 맞이한 우리나라는 19세기에 그 세 번째 전환기를 맞이하게 된다. 그것이 바로 동학을 비롯한 한국 신종교들이 잇따라 등장하게 되는 한말개화기(韓末開化期), 곧 한국 신종교에서 말하는 선후천 교역기이다. 그런데 우리 민족이 세 번째로 맞이한 한말개화기는 과거 두 차례의 역사적 전환기와는 근본적으로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그 차이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도록 하겠다.

첫째, 한말개화기라는 전환기는 우리나라가 과거에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이질(異質) 문명, 즉 서양문명이 동아시아를 향해서 물밀듯이 밀려오던 시기였다. 이른바 서세동점(西勢東漸)이 급격하게 이루어지고 있던 시대였던 것이다. 일찍이 단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서세동점 현상은 우리나라로 하여금 종래의 역사적 전환기에 대한 대응(對應)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대응을 요구하고 있었다. 과거 나말여초와 여말선초라는 두 번의 전환기는 모두 ‘동아시아문화권’ 속의 전환기였기 때문에 그 대응이 비교적 수월했다. 왜냐하면 같은 문화권 내의 전환기였기 때문이며, 우리나라에 영향을 미치는 중국 대륙이 강력한 통일왕조를 이루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나, 한말개화기는 종래의 동아시아문화권=유교문화권과는 그 차원이 전혀 다른 서세(西勢), 즉 서구문화권(세계자본주의 체제)의 도전에 대한 적절한 응전이 필요했기 때문에 종래와는 차원이 다른 대응이 필요했던 것이다.

동학의 등장은 바로 서세동점으로 대표되는 역사적 전환기에 우리 민족이 종교를 통해 창조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던 노력의 일환이다. 동학 창도에 자극받아 증산 강일순(甑山 姜一淳, 1871-1909), 홍암 나철(弘巖 羅喆, 1863-1916), 소태산 박중빈(少太山 朴重彬, 1891-1943) 등도 각각 증산교(1901), 대종교(1909), 원불교(1916)를 잇따라 탄생시키는 것 역시 그런 창조적 대응 노력이 이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신종교를 창시하는 선각자들은 동학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도 동학의 문제의식을 ‘한편으로는 계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창조하고자’’ 부심했다. 요컨대, 동학의 등장에서부터 1916년 원불교의 개교에 이르는 시기는 한국사에 있어 가히 종교의 개화기(開花期)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그 개화를 가능하게 만든 땅이 바로 전라도 호남 땅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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