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시간속을 걷다] <10> 1936년 나주 도래마을 옛집
2017년 07월 06일(목) 00:00 가가
옛집 툇마루에 앉으니 시름 씻는 바람 불어오네
개망초, 도라지, 봉숭아, 꽃달맞이꽃, 비비추, 단감나무, 자귀나무, 석류, 모과, 명자나무….
나주 도래마을에서 만난 온갖 나무와, 풀과 꽃들이다.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엔 세월의 더께를 그대로 얹은 돌담과 고풍스런 한옥들이 즐비하다. 30도에 육박하는 여름 날씨에 걷는 건 조금 힘들지만 수시로 등장하는 풀꽃들 덕에 지루할 틈이 없다.
행정 구역 상으로 나주시 다도면 풍산리 1, 2, 3구 7개 마을을 아우르는 도래마을은 풍산 홍씨 집성촌이다. 지난 2006년 전남도가 전통한옥마을로 지정했고 지금도 홍씨 집안 종가집인 홍기응 가옥(중요민속문화제 제151호), 홍기헌 가옥(〃제165호), 홍기창 가옥(전남민속문화재 제9호) 등 고택이 자리하고 있다.
오늘 찾아가는 곳은 국가 지정 문화재들 인근에 자리한 ‘도래마을 옛집’이다. 역시 홍씨 가문이 살던 집으로 현재 소유권자는 우리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우리 스스로 지켜가는 시민운동 단체인 (재)내셔널 트러스트 문화유산 기금이다.
기금은 미래 세대에 물려주어야 할 소중한 자산에 ‘시민문화유산’이라는 이름을 달아 보존중이다. ‘시민문화유산 1호’는 한국 문화재의 아름다움을 찾고 보존하는 데 일생을 바쳤던 혜곡 최순우 선생이 대표작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기대서서’를 집필했던 ‘최순우 옛집’이다. ‘도래마을 옛집’은 시민문화유산 2호로 지정돼 있으며 ‘권진규 아뜰리에’가 시민문화유산 3호다.
도래마을 옛집은 2006년 시민모금으로 1억원을 모아 공간을 확보한 후 복권기금 6억원으로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낮은 돌담을 지나 ‘옛집’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반기는 건, 강아지 한마리다. 온 동네 주민들 사랑을 듬뿍 받는 푸들 ‘보리’다. 방문객들이 움직일 때면 함께 따라 이동하고, 싫증이 나면 부럽게도, 늘어지게 잠을 잔다.
활동가 김현숙씨의 안내를 받아 옛집을 차분히 둘러본다. ‘옛집’은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다. 한옥 3동으로 안채와 문간채는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고, 별당채는 지난 2007년 신축했다.
해체·복원 작업은 2년여에 걸쳐 진행됐다. 기와와 서까래 등은 새로 올렸지만 창살, 마루 바닥 등은 뜯어낸 후 일일이 세척하고 번호를 매겨 원형 대로 복원했다. 안채는 일자형으로 부엌, 안방, 대청, 사랑방이 이어져 있다.
옛집은 1936년 지어진 한옥으로 쓰임에 따라 칸을 나누어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근대 시기 한옥의 변화 양상과 건축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사랑채를 별도 장소에 짓는 대신 안채에 사랑채의 기능을 합쳤다. 안채부터 사랑방까지 쭉 이어지는 툇마루에 문을 달아 공간을 구분한 점이 눈에 띈다.
툇마루에 걸터 앉으니 어디선가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온다. 가운데 자리한 대청에서 내어다보는 바깥 풍경도 아름답다. 뒷마루 앞 장독대 부근에 예쁜 봉숭아가 피었다. 방마다 지금의 붙박이장 같은 다채로운 수납공간이 눈에 띈다. 안방에 바로 붙어 있는 부엌에도 살림살이를 챙겨 넣을 공간이 곳곳에 숨어 있다.
작은 사랑방에 들어가 앞문과 옆문을 모두 열어젖히니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책 한권 들고 사랑방에 앉아 오래 머물다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김현숙씨가 전했다.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번잡한 생각을 잠시 접게 만든다. 복원된 문간채는 화장실로, 헛간은 사무실로 쓰고 있다.
마당 한가운데 자리한 커다란 단감나무 아래 평상에 앉는다. 감이 익을 때 즈음이면 옛집을 방문한 이들이 자연스레 감을 따 함께 나눠 먹는다고 한다. 올해 감도 ‘무섭게’ 열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내렸다며 가을 즈음 꼭 다시 오라는 말을 전했다.
옛집의 안채와 별당채에선 숙박이 가능하다. 신축한 별당채엔 욕실, 화장실을 넣고 에어컨을 설치하는 등 현대적 시설을 갖췄다. 별당채 앞 마루는 ‘명당’ 자리다. 마루를 빙 둘러 온갖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넓은 공간 가운데 놓인 탁자에선 차 한잔의 여유도 즐길 수 있다. 친절한 활동가 김은숙씨가 직접 담근 매실차 한잔에 더위가 저만큼 날아가 버린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한 번 오신 분들은 참 좋아하세요. 조용히 머물다 가기 좋은 곳이라고들 하시지요. 사랑방에 한참을 앉았다 가는 이들도 있고, 별당채 마루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옛집 뒷쪽으로 올라가면 20∼30분 산책하기 좋은 탐방로가 나온다. 1928년 세워진 정자 계은정에 오르면 마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한가로웠던 도래마을 옛집도 조금은 부산해질 것같다. 최근 ‘문화가 있는 날’ 지역특화 프로그램에 선정돼 8월부터 10월까지 ‘잊혀져가는 우리 동네 옛이야기를 찾아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8월 30일에는 음악회가 예정돼 있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중이다.
‘옛집’을 찾는 어떤 이들은 ‘볼 게 별로 없네’ 할 수도 있다. 눈으로 휘리릭 둘러보고 간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곳을 찾을 땐 별당채 툇마루에도 앉아보고, 안채 대청마루와 사랑방에서 휴식도 취하고, 감나무 아래서 이야기를 나누며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즐길 여유를 갖고 오면 어떨까 싶다.
행여 옛집을 찾을 찾을 생각이라면 아무래도 더위가 한 풀 꺾이는 시점이 이곳 저곳 산책하기 좋겠다. 도래마을의 여러 한옥 중 특히 홍기창 가옥은 8월 중순이 지나면 배롱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잠깐 둘러본 홍기창 가옥엔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배롱나무가 한창일 때 다시 찾아 집에 얽힌 사연들을 예정이다.
문 여는 시간 수∼일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숙박도 가능하다. 후원회원 7만원, 일반 회원 10만원. 입장료는 따로 시민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작은 정성을 보태면 좋다. 문의 061-336-3675. http://nt-heritage.org.
/글·사진=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나주 도래마을에서 만난 온갖 나무와, 풀과 꽃들이다. 조용하고 아담한 마을엔 세월의 더께를 그대로 얹은 돌담과 고풍스런 한옥들이 즐비하다. 30도에 육박하는 여름 날씨에 걷는 건 조금 힘들지만 수시로 등장하는 풀꽃들 덕에 지루할 틈이 없다.
오늘 찾아가는 곳은 국가 지정 문화재들 인근에 자리한 ‘도래마을 옛집’이다. 역시 홍씨 가문이 살던 집으로 현재 소유권자는 우리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을 우리 스스로 지켜가는 시민운동 단체인 (재)내셔널 트러스트 문화유산 기금이다.
낮은 돌담을 지나 ‘옛집’에 도착하니 가장 먼저 반기는 건, 강아지 한마리다. 온 동네 주민들 사랑을 듬뿍 받는 푸들 ‘보리’다. 방문객들이 움직일 때면 함께 따라 이동하고, 싫증이 나면 부럽게도, 늘어지게 잠을 잔다.
활동가 김현숙씨의 안내를 받아 옛집을 차분히 둘러본다. ‘옛집’은 그리 크지 않은 공간이다. 한옥 3동으로 안채와 문간채는 옛 모습 그대로 복원했고, 별당채는 지난 2007년 신축했다.
해체·복원 작업은 2년여에 걸쳐 진행됐다. 기와와 서까래 등은 새로 올렸지만 창살, 마루 바닥 등은 뜯어낸 후 일일이 세척하고 번호를 매겨 원형 대로 복원했다. 안채는 일자형으로 부엌, 안방, 대청, 사랑방이 이어져 있다.
옛집은 1936년 지어진 한옥으로 쓰임에 따라 칸을 나누어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근대 시기 한옥의 변화 양상과 건축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사랑채를 별도 장소에 짓는 대신 안채에 사랑채의 기능을 합쳤다. 안채부터 사랑방까지 쭉 이어지는 툇마루에 문을 달아 공간을 구분한 점이 눈에 띈다.
툇마루에 걸터 앉으니 어디선가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온다. 가운데 자리한 대청에서 내어다보는 바깥 풍경도 아름답다. 뒷마루 앞 장독대 부근에 예쁜 봉숭아가 피었다. 방마다 지금의 붙박이장 같은 다채로운 수납공간이 눈에 띈다. 안방에 바로 붙어 있는 부엌에도 살림살이를 챙겨 넣을 공간이 곳곳에 숨어 있다.
작은 사랑방에 들어가 앞문과 옆문을 모두 열어젖히니 서늘한 기운이 느껴진다. 책 한권 들고 사랑방에 앉아 오래 머물다 가는 사람들도 있다고 김현숙씨가 전했다. 조용하고 편안한 분위기가 번잡한 생각을 잠시 접게 만든다. 복원된 문간채는 화장실로, 헛간은 사무실로 쓰고 있다.
마당 한가운데 자리한 커다란 단감나무 아래 평상에 앉는다. 감이 익을 때 즈음이면 옛집을 방문한 이들이 자연스레 감을 따 함께 나눠 먹는다고 한다. 올해 감도 ‘무섭게’ 열려 제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떨어져 내렸다며 가을 즈음 꼭 다시 오라는 말을 전했다.
옛집의 안채와 별당채에선 숙박이 가능하다. 신축한 별당채엔 욕실, 화장실을 넣고 에어컨을 설치하는 등 현대적 시설을 갖췄다. 별당채 앞 마루는 ‘명당’ 자리다. 마루를 빙 둘러 온갖 꽃과 나무가 가득하고 넓은 공간 가운데 놓인 탁자에선 차 한잔의 여유도 즐길 수 있다. 친절한 활동가 김은숙씨가 직접 담근 매실차 한잔에 더위가 저만큼 날아가 버린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는 않지만 한 번 오신 분들은 참 좋아하세요. 조용히 머물다 가기 좋은 곳이라고들 하시지요. 사랑방에 한참을 앉았다 가는 이들도 있고, 별당채 마루에서 휴식을 취하는 이들도 많습니다.”
옛집 뒷쪽으로 올라가면 20∼30분 산책하기 좋은 탐방로가 나온다. 1928년 세워진 정자 계은정에 오르면 마을 전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한가로웠던 도래마을 옛집도 조금은 부산해질 것같다. 최근 ‘문화가 있는 날’ 지역특화 프로그램에 선정돼 8월부터 10월까지 ‘잊혀져가는 우리 동네 옛이야기를 찾아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8월 30일에는 음악회가 예정돼 있고,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중이다.
‘옛집’을 찾는 어떤 이들은 ‘볼 게 별로 없네’ 할 수도 있다. 눈으로 휘리릭 둘러보고 간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이곳을 찾을 땐 별당채 툇마루에도 앉아보고, 안채 대청마루와 사랑방에서 휴식도 취하고, 감나무 아래서 이야기를 나누며 느리게 흘러가는 시간을 즐길 여유를 갖고 오면 어떨까 싶다.
행여 옛집을 찾을 찾을 생각이라면 아무래도 더위가 한 풀 꺾이는 시점이 이곳 저곳 산책하기 좋겠다. 도래마을의 여러 한옥 중 특히 홍기창 가옥은 8월 중순이 지나면 배롱나무가 흐드러지게 피어 아름다운 풍광을 자랑한다. 잠깐 둘러본 홍기창 가옥엔 또 다른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 배롱나무가 한창일 때 다시 찾아 집에 얽힌 사연들을 예정이다.
문 여는 시간 수∼일요일 오전 10시∼오후 5시. 숙박도 가능하다. 후원회원 7만원, 일반 회원 10만원. 입장료는 따로 시민 후원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작은 정성을 보태면 좋다. 문의 061-336-3675. http://nt-heritage.org.
/글·사진=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