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 시간속을 걷다] <3>1935년 보성여관
2017년 02월 16일(목) 00:00 가가
‘태백산맥’ 속 남도여관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다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나다
세월이 멈춰버린 듯한 카페에 앉아 노래 ‘부용산’을 듣는다. 가사에 등장하는 부용산이 지척인 곳이다. ‘부용산 오리길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 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 타고/ 간다는 한 마디 없이/ 너는 가고 말았구나’
벌교에서 생활한 박기동 시인의 글에 ‘엄마야 누나야’로 유명한 안성현이 작곡한 ‘부용산’은 언제나 마음을 울린다.
내가 앉아 있는 곳은 보성군 벌교읍 태백산맥길 19 ‘보성여관’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노래를 부르는 그녀는 보성여관 매니저 김성춘씨로, 벌교가 탯자리다.
보성여관은 외관에서부터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본식과 한옥이 접목된 독특한 구조의 2층 건물로, 수많은 유리창이 인상적인 나무 문과 기와 지붕이 눈길을 끈다.
보성여관은 1935년 8월 29일 상량식을 가졌으니, 무려 82년의 세월을 간직한 공간이다. 강활암이 건립한 보성여관은 벌교 교통 요충지에 자리한 덕에 언제나 손님으로 북적였다. 오랫동안 지친 이들이 몸을 뉘이고, 마음을 내려놓던 여관은 1988년 학교 정화구역으로 묶이면서 문을 닫는다. 이후 1층은 양품점, 세탁소, 수예점 등 6∼7개의 작은 ‘점방’이, 뒤쪽 여관방은 살림집이 되었다.
이 공간은 건축사적 가치를 인정받아 2004년 등록문화재 제 132호로 지정됐고, 2008년 문화재청이 매입했다. 지금의 모습으로 문을 연 건 지난 2012년이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이 관리 단체로 지정돼 2009년부터 3년간 해체 보수 공사를 진행했고 숙박 기능을 갖춘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 많은 이들에게 ‘쉼’을 선물하고 있다. 문화유산국민신탁은 국민·기업, 단체로부터 모금·기증·증여 등으로 조성된 기금을 활용해 보전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을 매입해 보전하고 관리하는 민간운동이다.
‘보성여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을 때 많은 이들이 생생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쪽방에서 아이 낳은 이야기, 곤로에 밥 끓여먹던 이야기 등등.
보성여관 문을 밀고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기분이 든다. 길고, 좁은 복도 오른쪽은 매표소를 겸한 카페다. 창을 향해 일렬로 늘어선 소박한 의자에 앉으면 잘게 쪼개진 나무 유리창 밖으로 내어다 보이는 바깥 풍경이 예쁘다. 뒷쪽으로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복도 왼쪽은 다양한 문화체험 공간인 소극장이다. 바늘이 멈춰버린 자명종, 낡은 풍금, 오래된 TV 수상기 등 ‘추억을 소환하는 소품’들을 찬찬히 둘러보면 재미있다. 이 곳에선 연극, 판소리, 다식 만들기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여관을 찾은 이들과 ‘호흡’을 같이한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임대장님, 그런데 토벌대는 어디에 주둔합니까?
“예에, 저어... 우선 남도여관에···’
“뭐요 여관? 당장 짐을 꾸려 남초등학교 운동장에 집합시키시오”(‘태백산맥’ 3권 84쪽)
보성여관이 유명해 진 건 벌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조정래 대하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해서다. 소설 속에서 토벌대장 임만수와 대원들이 묵는 ‘남도여관’이 바로 보성여관이다. 소설에서는 현부자집 소유이자, 벌교 유일의 여관으로 묘사된다. 책에 등장하는 ‘남초등학교’ 역시 지금 보성여관과 벽을 맞대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올해 100년이 되는 유서깊은 학교다.
벌교와 보성여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작은 전시장을 지나면 어둠 속에 불을 밝힌 ‘책상’이 보인다. 소설 ‘태백산맥’과 원고지, 볼펜이 놓여 있어 누구든지 앉아 소설의 한 대목을 필사해 볼 수 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책을 뒤적이다 몇글자 적는다.
뒷문을 열고 나가면 만나는 곳은 숙박동이다. 보성여관은 모두 7개의 방을 운영중이다. 가운데 작은 정원을 두고 빙 둘러 자리한 방은 제암산, 일림산 등 보성의 산 이름이다. 새하얀 침구가 편안함을 주는 방은 특별한 장식이 없이 소박하다. 방마다 ‘태백산맥’ 한권씩이 놓여 있다.
검정색, 흰색 고무신이 놓인 툇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햇볕을 받는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마루에 찻상을 내어놓고 앉아 차 마시는 이들도 많단다. 매니저 김씨는 비오는 날 정말 운치가 있다고 전했다. 오른쪽으로 돌아들면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나온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창틀과 나무 바닥을 지나면 널따란 다다미방이 나온다. 이곳 유리창 너머로 내어다 보이는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이다.
보성여관을 방문할 땐 느긋하게 시간을 잡는 게 좋다. 차 한잔과 함께 숙박동에 앉아 마음의 여유를 느끼고 가면 그만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보성여관은 어쩌면 벌교의 숱한 ‘꼬막식당’의 하나가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두번째 보성여관 주인장 윤보임은 언젠가 이곳에서 ‘부용산’을 들으며 말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 오고 가니 너무 좋다.” 보성여관엔 재개관한 후 지금까지 11만 8000여명, 매달 3000명이 다녀갔다.
보성여관에 가거들랑, 매니저에게 꼭 ‘부용산’을 불러달라 하시라. 역시 보성이 고향인 채동선의 가곡 ‘고향’까지도 함께 불러줄 것이다.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카페는 오후 6시). 관람료 1000원. 매니저에게 청하면 안내도 받을 수 있다. 숙박은 8만원∼15만원.www.beseonginn.org. 문의 061-858-7528.
/글·사진=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내가 앉아 있는 곳은 보성군 벌교읍 태백산맥길 19 ‘보성여관’이다.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노래를 부르는 그녀는 보성여관 매니저 김성춘씨로, 벌교가 탯자리다.
보성여관은 외관에서부터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일본식과 한옥이 접목된 독특한 구조의 2층 건물로, 수많은 유리창이 인상적인 나무 문과 기와 지붕이 눈길을 끈다.
보성여관은 1935년 8월 29일 상량식을 가졌으니, 무려 82년의 세월을 간직한 공간이다. 강활암이 건립한 보성여관은 벌교 교통 요충지에 자리한 덕에 언제나 손님으로 북적였다. 오랫동안 지친 이들이 몸을 뉘이고, 마음을 내려놓던 여관은 1988년 학교 정화구역으로 묶이면서 문을 닫는다. 이후 1층은 양품점, 세탁소, 수예점 등 6∼7개의 작은 ‘점방’이, 뒤쪽 여관방은 살림집이 되었다.
보성여관 문을 밀고 들어서면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한 기분이 든다. 길고, 좁은 복도 오른쪽은 매표소를 겸한 카페다. 창을 향해 일렬로 늘어선 소박한 의자에 앉으면 잘게 쪼개진 나무 유리창 밖으로 내어다 보이는 바깥 풍경이 예쁘다. 뒷쪽으로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자리하고 있다.
복도 왼쪽은 다양한 문화체험 공간인 소극장이다. 바늘이 멈춰버린 자명종, 낡은 풍금, 오래된 TV 수상기 등 ‘추억을 소환하는 소품’들을 찬찬히 둘러보면 재미있다. 이 곳에선 연극, 판소리, 다식 만들기 등 다양한 행사를 진행하며 여관을 찾은 이들과 ‘호흡’을 같이한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임대장님, 그런데 토벌대는 어디에 주둔합니까?
“예에, 저어... 우선 남도여관에···’
“뭐요 여관? 당장 짐을 꾸려 남초등학교 운동장에 집합시키시오”(‘태백산맥’ 3권 84쪽)
보성여관이 유명해 진 건 벌교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조정래 대하 소설 ‘태백산맥’에 등장해서다. 소설 속에서 토벌대장 임만수와 대원들이 묵는 ‘남도여관’이 바로 보성여관이다. 소설에서는 현부자집 소유이자, 벌교 유일의 여관으로 묘사된다. 책에 등장하는 ‘남초등학교’ 역시 지금 보성여관과 벽을 맞대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올해 100년이 되는 유서깊은 학교다.
벌교와 보성여관의 역사를 담고 있는 작은 전시장을 지나면 어둠 속에 불을 밝힌 ‘책상’이 보인다. 소설 ‘태백산맥’과 원고지, 볼펜이 놓여 있어 누구든지 앉아 소설의 한 대목을 필사해 볼 수 있다. 잠시 의자에 앉아 책을 뒤적이다 몇글자 적는다.
뒷문을 열고 나가면 만나는 곳은 숙박동이다. 보성여관은 모두 7개의 방을 운영중이다. 가운데 작은 정원을 두고 빙 둘러 자리한 방은 제암산, 일림산 등 보성의 산 이름이다. 새하얀 침구가 편안함을 주는 방은 특별한 장식이 없이 소박하다. 방마다 ‘태백산맥’ 한권씩이 놓여 있다.
검정색, 흰색 고무신이 놓인 툇마루에 걸터앉아 잠시 햇볕을 받는다. 날씨가 따뜻해지면 마루에 찻상을 내어놓고 앉아 차 마시는 이들도 많단다. 매니저 김씨는 비오는 날 정말 운치가 있다고 전했다. 오른쪽으로 돌아들면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이 나온다.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는 창틀과 나무 바닥을 지나면 널따란 다다미방이 나온다. 이곳 유리창 너머로 내어다 보이는 풍경은 또 다른 느낌이다.
보성여관을 방문할 땐 느긋하게 시간을 잡는 게 좋다. 차 한잔과 함께 숙박동에 앉아 마음의 여유를 느끼고 가면 그만이다. 누군가의 말처럼 보성여관은 어쩌면 벌교의 숱한 ‘꼬막식당’의 하나가 될 운명이었을지도 모른다. 두번째 보성여관 주인장 윤보임은 언젠가 이곳에서 ‘부용산’을 들으며 말했다. “정말 좋은 사람들이 오고 가니 너무 좋다.” 보성여관엔 재개관한 후 지금까지 11만 8000여명, 매달 3000명이 다녀갔다.
보성여관에 가거들랑, 매니저에게 꼭 ‘부용산’을 불러달라 하시라. 역시 보성이 고향인 채동선의 가곡 ‘고향’까지도 함께 불러줄 것이다.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5시(카페는 오후 6시). 관람료 1000원. 매니저에게 청하면 안내도 받을 수 있다. 숙박은 8만원∼15만원.www.beseonginn.org. 문의 061-858-7528.
/글·사진=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