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
제1회 광주비엔날레 ‘인포아트’ 총감독
5월 희생자 위로한 ‘고인돌’ 영구 전시
2016년 09월 07일(수) 00:00
세계적 비디오 아티스트 백남준〈사진〉은 1984년 전세계에 생중계된 ‘굿모닝 미스터 오웰’ 이전만 해도 국내에서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작가였다. 남들이 하지 않는 미친 짓과 기행을 일삼는 전위예술가 정도로 막연히 알려졌을뿐이다.

그러나 당시 뉴욕과 파리, 베를린, 서울을 우주중계로 연결해 국내에 KBS TV로 그의 예술세계가 쏟아지자 백남준은 한순간에 천재적 아티스트로 강한 이미지를 심었다.

백씨는 광주와도 인연이 깊다. 지난 95년 제1회 광주비엔날레의 특별전인 ‘인포아트’(정보예술)의 총감독을 맡아 5·18 민중항쟁 희생자의 영혼을 고인돌로 소재로 한 비디오 설치작품 ‘고인돌’을 출품해 5월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 하기도 했다. 이 작품은 비엔날레관 현관에 영구 설치돼 있다.

당시 백씨와 함께 ‘인포아트’특별전을 기획한 큐레이터 김홍희(현 제6회 광주비엔날레 총감독)은 “ 백남준 선생은 전위적 공연예술과 첨단기술의 기계미학을 접목시켜 비디오 아트라는 새로운 미디어 공연예술을 개척한 시간과 영상의 마술사다”라고 회고했다.

1932년 7월20일 서울 서린동에서 태창방직을 경영하던 백낙승씨 막내 아들로태어난 그는 경기중고를 나와 일본 도쿄대에서 미학과 음악사, 미술사를 전공했으며 58년에는 독일에서 음악사를 공부한 뒤 전자음악에 심취하기도 했다.

그가 예술가로서 세상사람들에게 처음으로 선을 보인 것은 59년 독일에서였다.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존 케이지를 만난 그는 ‘존 케이지에 보내는 헌정’라는 제목의 작품을 한 화랑에 전시했고 이를 지켜본 ‘플럭서스’ 운동의 창시자 조셉 보이스는 후일 그의 예술세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세계적 명성을 구가한 그는 93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대상의 영예를 차지한 바 있으며 독일 ‘카피탈’지가 선정한 현존최고 미술가 100명 중 5위에 오르기도 했다.

/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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