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민 광주경실련 기획부장] 소소한 것들이 갖는 힘
2016년 08월 16일(화) 00:00
소소하다. 내가 좋아하는 표현 중 하나이다. 사전에서는 ‘소소하다’를 ‘작고 대수롭지 아니하다’로 정의하고 있다. 우리 삶 속에서 소소한 것들은 존재의 의미를 드러내지 못하고 중요함을 갖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가 대수롭지 않다고 여기는 이 소소한 것들이 무너지는 순간 우리의 삶은 불안정해진다. 삶은 소소한 것들이 쌓여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내가 방송작가에서 현재 광주경실련의 활동가로 옮겨오는 과정에서 여러 고민이 있었다. 결정적으로 이곳을 선택하게 된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우습게도 집과 사무실의 거리가 굉장히 가까워 걸어서 출근할 수 있다는 거였다. 그리고 최근 이사한 사무실 역시 예전보다는 집에서 멀어졌지만 걸어서 출근이 가능하다.

출근하는 과정 중 마주하는 것들은 참 소소하다. 아침 산책 중인 마을 어르신들과 강아지, 아침잠에서 깨지 못하고 햇빛을 피해 그늘에 누워있는 고양이, 이른 아침부터 문을 연 작은 자동차 엔진가게에서 나오는 뜨거운 열기와 소음 나는 이 엔진가게를 가득 덮은 검은 그을음을 볼 때마다 뭔가 정의내리지 못하겠지만 뜨거운 열정과 슬픔을 느낀다. 매일 가게 앞을 쓸고 있는 아주머니, 머리가 하얗게 샌 아버지와 중년의 아들이 운영하는 한약방 특히 이 한약방의 아버지와 아들 모습이 참 좋다. 매일 창문과 문을 활짝 열고 각자 무엇인가를 하고 계신다. 이곳을 지나 먼지를 털어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헌책방 아저씨의 모습을 마주하며 걷다 보면 사무실에 도착한다.

골목 곳곳의 오래된 집을 구경하는 것도 소소한 재미다. 오래된 여인숙 건물을 살펴보며 벽을 타고 오른 덩굴의 푸르름을 보는 것도 좋다. ‘이 여인숙 건물을 게스트하우스나 커피숍으로 개조해서 사용하면 어떨까?’하는 상상을 하는 것도 즐겁다. 그런데 이러한 소소한 것들을 이제 볼 수 없을 것 같다. 이 동네 곳곳에 ‘재개발’이라고 적힌 현수막이 붙어있다. 빨간 글씨로 공가라고 씌어진 곳도 적지 않다.

이제 이곳에는 높은 아파트가 들어올 것이다. 사각형의 높은 건물 사이사이에는 반듯하게 도로가 다시 놓여 질 것이고 대형 마트와 프랜차이즈 점포들이 들어올 것이다. 원주민들은 이사를 갈 것이고 새로운 주민들이 이사를 올 것이다. 거리는 말끔해지겠지만 거리 곳곳을 메우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사라질 것이다. 대를 이어 운영하고 있는 아버지와 아들의 한약방도 작은 헌책방도 여인숙도 신축 건물의 높은 임대료 속에 버티지 못하고 묻힐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재개발 움직임이 내가 출퇴근하는 이 동네, 이 거리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광주 곳곳에서 너무나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광주경실련에서 김승수 전주시장을 모시고 강연회를 연 적이 있다. 그가 한 많은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말은 “도시는 기억의 집합이다. 도시는 시민들을 담는 그릇으로, 그릇이 같아진다는 것은 시민들의 삶도 똑같이 복제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이야기였다. 광주를 가도 서울을 가도 어느 도시를 가도 똑같은 브랜드의 아파트와 규격화된 체인점 대형 마트로 만들어진 도시는 매력이 없다.

‘그렇다면 현재 광주는?’이라고 묻는다면 무엇이라고 답하기 참 어렵다. 문화수도 광주라고 하지만 다양한 문화와 변화가 이뤄지는 곳이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올려지지 않는다.

명품거리를 조성하겠다고 노점 상인들을 몰아내고 대규모 특급호텔을 유치를 지역의 숙원사업이라고 하면서 목을 멘다. 중소상인들이 지역 상권이 무너지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그저 특급호텔 유치에 있어 불편한 걸림돌로 생각하는 듯하다.

살기 좋은 도시를 만들기 위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그 안에 살고 있는 이들이 말하는 목소리에는 귀를 닫는다. 노점 상인들의 눈물도 중소상인들의 절규도 소소한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 도시를 만드는 것이 이 소소한 것들의 힘이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철거는 쉽고 저렴한 해결책이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현명한 해법은 아니다. 오래된 것들의 가치는 어떠한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다. 최근 한 지인이 아파트 건립을 위해 철거가 진행 중인 현장을 지나면서 한 말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한다. “아, 슬프다. 추억이 다 사라져 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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