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밝힌노래]<6> 한국전쟁과 ‘늙은 군인의 노래'-나 태어난 이 강산에 ○○○이 되어 … 시대고민은 진행형
시국사건 연루 김민기, 군복에 청춘 바친 이들 위로해
‘불건전 가사’ 유신 금지곡 1호 … 저항현장서 생명 유지
‘군인’ 대신 투사·노동자 등 바꿔부르며 지금까지 애창
2016년 08월 01일(월) 00:00

1952년 10월 6일부터 15일까지 열흘간 주인이 24번이나 바뀌었다는 한국전쟁 최대 격전지 ‘백마고지 전적지’다.

7월27일은 한국전쟁의 포성이 멈춘 정전협정 체결일이다. 협정 체결 이후 63년간 남북은 도발과 햇볕을 오가다가 다시 긴장으로 돌아섰다. 북은 핵과 미사일 실험으로, 남은 사드로 맞서고 있다. 끝간데 없는 군비 경쟁으로 치닫고, 그만큼 평화는 멀어지고 있다.

정전협정 다음날인 7월28일, 전쟁으로 몸이 찢긴 슬픈 사연을 가진 철원 비무장지대(DMZ)를 다녀왔다. 중부전선 철원 일대의 방어 임무를 맡은 6사단에서 군생활을 했으니 제대 후 22년만의 발걸음이었다.

이른 아침 KTX에 몸을 싣고 광주에서 용산역으로 향했다. 다시 용산역에서 청량리역으로, 다시 청량리역에서 백마고지역으로 달렸다. 청량리에서 백마고지까지는 ‘통일 꿈 싣고 달리는 평화열차’가 운행되고 있다. 분단의 아픔을 간직한 채 자연의 위대한 생명력으로 다시 태어나 역사와 자연, 평화가 공존하는 DMZ로의 여정을 이끄는 아주 특별한 열차다.

오전 11시44분 경원선 철도중단점인 백마고지역에 도착, 22년전 광주서 철원까지 하루종일 걸렸던 기차 타고 버스 탔던 것이 한나절로 줄었다.

가장 먼저 맞이한 것은 ‘철마는 달리고 싶다’라는 푯말이었다. ‘더는 달릴 수 없다’는 항변인 것이다.

백마고지역은 2012년 11월 개통됐다. 경원선이 끊어진지 60년만이다. 이 작은 역이 경기도 연천군 신탄리에서 이곳까지 오는데 무려 60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것이다. 이 역이 다시 원산까지 가는데는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철원 여행은 색다르다. 비무장지대인 DMZ를 거니는 탓이다. 비무장지대는 ‘무장이 금지된 지역’이라는 뜻이지만 실상은 ‘중무장지대’다. 곳곳에 중화기가 배치되고 곳곳에 지뢰가 매설돼 있다. 특히 요즘처럼 남북이 대치하는 경우는 무장은 한층 강화된다.

코스만 봐도 예사롭지 않다. 백마고지 전투지-철원 노동당사-제2땅굴-멸공OP-철책선길 탐방-금강산전기철도용 교량…. 모두가 전쟁이 만들어낸 유적이다.

전쟁의 참상을 드러낸 대표적인 곳이 노동당사다. 철원 노동당사는 한국에 있는 유일한 북한 건물이다. 노동당사를 멀리서 보면 ‘멀쩡’하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뼈대 말고는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다. 벽이란 벽에는 총탄과 포탄 자국으로 곰보가 됐다. 전후좌우 어디 한 군데 성한 구석이 없다. 한국전쟁 당시 미군의 폭격으로 모두 파괴된채 외벽골조만 남아있다. 정문 계단도 바스러져 있다. 한국전쟁 당시 탱크가 밟고 지나간 흔적이란다.

뼈만 남은 기괴한 노동당사에 생명을 불어 넣은 건 ‘서태지와 아이들’이다. 전성기 때 이 건물에서 ‘발해를 꿈꾸며’를 뮤직비디오로 찍어 화제가 됐다. 뮤직비디오는 서태지가 노동당사 안에서 흰 비둘기를 날리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노래 가사는 그보다 더 인상적이다.

“진정 나에겐 단 한가지 내가 소망하는 게 있어 / 갈려진 땅의 친구들을 언제쯤 볼 수가 있을까 / … // 한민족인 형제인 우리가 서로를 겨누고 있고 / 우리가 만든 큰 욕심에 내가 먼저 죽는걸 / 진정 너는 알고는 있나 전 인류가 살고 죽고 / 처절한 그날을 잊었던건 아니었겠지 // 우리 몸을 반을 가른채 현실없이 살아갈건가 / 치유할 수없는 아픔에 절규하는 우릴 지켜줘 // … // 언젠가 나의 작은 땅에 경계선이 사라지는 날 / 많은 사람이 마음 속에 희망들을 가득 담겠지 / 난 지금 평화와 사랑을 바래요…”

서태지와 아이들이 이 노래를 발표한지 어느덧 20년이 훌쩍 지났다. 하지만 그들이 노래하던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들의 노래처럼 남북이 서로 맘의 문을 열고 함께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날은 언제쯤 올까.

분단 국가의 특성은 ‘군(軍)’이다. 당연히 정치적·이념적 요구에 따라 노래도 만들어진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이 땅의 남자들 대부분이 군대를 가야하니 노래 소재로도 제격일 게다. 그래서 나온 노래가 신세영의 ‘전선야곡’, 최백호의 ‘입영전야’, 전인권의 ‘이등병의 편지’, 김민우의 ‘입영열차 안에서’ 등이다. 입영 전날 술이 고래가 돼 부르짖던 노래들이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노래가 하나 더 있다.

“1. 나 태어나 이 강산에 군인이 되어 / 꽃 피고 눈 내리기 어언 삼십년 / 무엇을 하였느냐 무엇을 바라느냐 / 나 죽어 이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 (후렴) 아 다시 못 올 흘러간 내 청춘 /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2. 아들아 내 딸들아 서러워마라 / 너희들은 자랑스런 군인의 아들이다 / 좋은 옷 입고프냐 맛난 것 먹고프냐 / 아서라 말아라 군인 아들 너로다 / (후렴)

3. 내 평생 소원이 무엇이더냐 / 우리 손주 손목 잡고 금강산 구경일세 / 꽃 피어 만발하고 활짝 개인 그날을 / 기다리고 기다리다 이 내 청춘 다 갔네 / (후렴)”

기자는 이 노래를 1988년 대학 입학 후 처음 접했다. 당시 학보사 기자였던 탓에 ‘군인’ 대신 ‘기자’를 넣어 배웠다. 그리고 그해 5월18일이 다가오자 이 노래는 ‘군인’ 대신 ‘투사’가 됐다. 7∼8월 노동자 하투(夏鬪)때는 ‘군인’ 대신 ‘노동자’로 바뀌었다. 변화무쌍했다. 그만큼 시대의 공감이 깊다는 의미일 게다.

이 노래의 제목은 ‘늙은 군인의 노래’다. 김민기가 작사·작곡하고 양희은이 불렀다. 카투사로 근무하던 중 시국사건에 연루돼 영창 거쳐 전방으로 쫓겨난 김민기가 전역하는 선임하사에게 바친 노래다. 막걸리 2말과 함께 자신의 이야기를 노래로 만들어달라는 선임하사의 부탁을 받고 1976년 겨울 탄생했다고 한다.

젊은 청춘을 푸른 군복에 바친 한 하사관의 회한과 아쉬움, 소박한 나라 사랑의 마음이 담긴 이 노래는 곧 병사들에게 구전되어 불려졌다. 그가 제대한 후 ‘늙은 군인의 노래’는 1978년 양희은의 이름을 빌려 문공부 심의에는 통과했지만 곧 가사가 불건전하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군부정권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이라 ‘흙속에 묻히면 그만이지’, ‘푸른 옷에 실려 간 꽃다운 이 내 청춘’ 등의 약하고 패배주의적인 가사가 군인들의 사기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이유였다.

유신체제 하에서 국방부 장관 지정 금지곡 1호가 된 이 노래가 그 생명을 이어간 것은 독재에 저항하던 대학가와 노동현장이었다. 원래 가사 속의 군인은 투사, 노동자, 농민, 교사 등으로 바뀌어 불리어지면서 대표적인 저항가요로 탈바꿈하며 오늘날까지 애창되고 있다.

/철원 글·사진=박정욱기자 jwpark@kwangju.co.kr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취재 지원으로 작성됐습니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