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傾聽), 경청(敬聽) 그리고 침묵
2016년 03월 29일(화) 00:00

[이계양 광주YMCA 이사장·문학박사]

‘경청’을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경청(傾聽)과 경청(敬聽)이 있다. ‘경청’(傾聽)은 ‘귀를 기울여 주의해 들음. 귀담아 들음’을 의미하고, ‘경청’(敬聽)은 ‘공경하는 마음으로 들음’을 뜻한다.

‘기울다’는 ‘생각이나 어떤 상황이 한쪽으로 쏠리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기울이다’는 ‘기울다의 사동사로 주의, 힘, 정성 따위를 한곳으로 모으다’라는 의미다.

또 경(傾)의 자해(字解·글자에 대한 해석)는 ‘사람이 고개를 한쪽으로 비뚤어지게 젖히고 있으니 기울어지다’이며, 경(敬)의 자해는 ‘진실한 마음으로 채찍질하면서 훈계하는 분을 모시니 공경하다’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경청에서의 ‘청(聽·들을 청)’의 자해도 두 가지다. ‘다른 사람의 말을 듣는 귀(耳)가 으뜸(王)이며, 들을 때는 열개(十)의 눈(目)을 움직여 하나(一)의 마음(心)을 주시하는 것처럼 들으라’라는 것과 ‘눈(目)과 귀(耳)와 마음(心)으로 들으면 상대방은 왕(王) 같은 대접을 받는다’라는 것이다.

여기서 ‘경청’(傾聽)은 눈과 귀와 마음을 다해 주의하고 힘을 들이고 정성을 다하는 듣기임을 알 수 있다. 귀를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것은 소리와 말과 한숨과 넋두리 등일 것이고, 눈으로 들을 수 있는 것은 얼굴표정과 태도와 손짓, 몸짓 등일 것이며 마음을 기울여 들을 수 있는 것은 걱정과 근심, 기쁨과 슬픔, 진실과 거짓 등일 것이다. 따라서 ‘경청’(傾聽)한다는 것은 눈과 귀와 마음을 융합하여 상대방과 통전(通全)하는 것이다.

‘以聽得心’(이청득심)이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마음을 얻는 최고의 지혜는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데에 있다’는 말이다. 삼성가의 이건희 씨가 선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유산으로 물려받은 휘호도 이 ‘경청’(傾聽)이라고 한다.

헨리 나우엔은 “듣기는 꼭 개발되어야 하는 예술이다”라고 했다고 한다. 눈과 귀와 마음을 기울여 듣는 것이야말로 사람이 사람으로 오롯이 서고, 사람 노릇을 할 수 있고 사람이 될 수 있는 최고의 예술이라 할 수 있겠다. 그것은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공자께서는 나이 60을 이순(耳順)이라 하였다. 여기서 ‘귀가 순해 진다’는 말은 세상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고 담담해지는 상태를 말한다고 한다. 세상의 온갖 난무하는 말들, 칭찬과 비난, 부추김과 폄하, 협잡과 모함, 추켜세움과 깎아내림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들었어도 안 들은 것 마냥 의연, 초연하여 고요한 상태를 유지 할 수 있는 경지가 그것이다. 외부의 어떤 언동에도 흔들림 없이 잔잔하고 고요하게 자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 때 가능한 경지이다. 이것은 곧 침묵의 경지일 것이다. 그러기에 말을 배우는 데는 2년이 걸리지만 침묵을 배우는 데는 60년이 걸린다고도 하지 않던가. 말은 연습을 통해 훈련이 가능하고 그 기간도 짧지만 침묵은 훈련보다는 수행이고 도(道)이며 깨달음을 통해서 가능한 일이기에 그 기간도 길며 무한정이다.

사람들은 온갖 말의 홍수 속에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저마다 ‘내 말 들어달라’고만 말하고 있다. 그러니 들어달라고 하는 사람만 넘쳐나고 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니 공허한 메아리만 난무할 뿐이다. 그래서 목소리는 더욱 높아져만 가고. 가정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이웃 간에도, 사회 도처에서도 모두 마찬가지의 모습이 만연해 있다. 4·13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과 후보자들의 목소리가 크고 사납고 고약하다. 참 안타깝기만 하다.

결국 경청(傾聽)이 눈과 귀와 마음을 기울여 듣는 것이라면 이것이 곧 경청(敬聽)아니겠는가. 경청(敬聽)한다는 것은 내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니라 ‘진실한 마음으로 채찍질하면서 훈계하는 분을 모시듯 공경하는 마음으로 들음’이니 ‘침묵’과 한 몸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경청(傾聽)하는 일과 경청(敬聽)하는 일, 나아가 침묵하는 일은 눈과 귀와 마음을 모두 기울여 주는 것 즉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차곡차곡 쌓으며 침묵을 배워가는 것이리라. 진실로 경청(傾聽)하는 것은 경청(敬聽)하는 일이며 이는 침묵하는 일임을 다시 깨닫게 된다.

국민의 선량(選良)이 되고자하는 분들이여! 경청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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