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브럇트편-무화 원형 되찾기] 빼앗긴 땅에도 ‘문화 뿌리’는 살아있다
2016년 03월 28일(월) 00:00
몽골·소비에트 지배받던 브럇트인
문화 원형·신분 숨기며 변방 떠돌아
조상 이야기 책으로 엮고 유물 전시
샤먼 정체성 찾기 활발 … 부활 예고

바이칼 알혼섬의 샤먼 바위 입구에는 브럇트인이 신성시 하는 솟대 13개가 세워져 있고, 샤먼들은 이 곳에서 기도를 한다.

정처없이 떠도는 것은 어쩌면 인류의 숙명인지도 모른다. 먹을 것과 넓은 땅을 찾아 유목했던 과거처럼 디지털 시대에도 ‘노마드’(Nomad)는 유효하다.

끊임없이 떠도는 삶은 고단한 역사를 남겼다. 브럇트인은 한 때 몽골의 지배를 받았고, 이제는 러시아의 변방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마저도 자신의 정신적 고향인 바이칼이 가까운 러시아 이르쿠츠크 일대와 서쪽의 브럇트공화국으로 갈라져 살고 있다.

우리가 브럇트의 문화 원형에 주목하는 것은 한민족의 문화와 비슷한 형태가 많기 때문이다.

비단, 한민족의 시원을 바이칼 일대로 보거나 브럇트 인과 한민족의 유전적 유사성이 있다는 점을 강조하지 않더라고 바이칼의 문화 원형은 ‘아시아 문화 본질’에 좀 더 다가가는 중요한 통로다.

또 놓칠 수 없는 것은 바이칼 일대의 문화에 유럽의 문화가 혼용돼 있다는 점이다.

19세기 이전부터 시작됐던 러시아의 이주정책에 따라 바이칼 일대의 고대 종족과 유럽의 문화가 자연스럽게 만나게 됐다는 점도 중요하다.

유럽 이주민은 대부분 러시아 정교회 등 가톨릭을 믿고, 이는 바이칼 일대의 샤머니즘과 어우러져 독특한 문화를 만들어 냈다.

브럇트 마을마다 상징 동물이 있든 이르쿠츠크도 담비를 입에 물고 있는 눈표범을 도시의 상징으로 삼고 있다. 과거 유럽 이주민이 토착 세력과 전투를 하거나 경쟁하면서 더욱 많은 민족 이동이 이뤄진 점도 주목해야 한다.

민족의 이동은 문화를 더욱 넓은 지역으로 확장하는 역할을 하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소비에트 시절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이주해 온 유럽의 다양한 민족은 시베리아 일대의 고대 종족 문화와 자연스럽게 만났다.

동북아시아의 문화 원류를 이해할 때, 유럽의 문화 유입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동북아시아의 숱한 민족이 어떻게 자신의 문화를 지켜냈고, 또 유럽의 문화와 곁들여져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낸 과정을 읽을 수 있다.

여전히 바이칼 일대에서는 카자흐스탄, 폴란드, 우크라이나 등 다양한 이주민들이 마을을 이뤄 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점은 최근 브럇트인들이 자신의 문화를 되찾으려 하고 있다는 점이다.

소비에트 시절 샤먼의 대규모 학살을 경험하는 등 브럇트인은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또 오랜 기간 몽골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문화도 마찬가지였다. 자신들의 문화를 포기하고 감춘 채 소비에트의 방식을 따라야 했다.

이 때문에 브럇트 문화는 지역에 따라 차이가 생겨나기도 했다. 현재 러시아 이르쿠츠크와 브럇트자치공화국으로 나눠져 살고 있는 브럇트인은 자신들의 문화 찾기에 나서고 있다.

박물관 등지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는 작업이 활발하다. 다양한 동물 이야기를 묶은 책이 나오고 조상의 삶의 모습이 묻어난 유물을 묶어 전시하는 공간도 생겨났다.

샤먼의 부활도 예고하고 있다. 소비에트의 탄압으로 신분을 숨긴 채 몽골 등지로 숨어들었던 샤먼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고 있다. 미신으로 치부돼 탄압되던 시절에는 출입이 힘들었던 ‘샤먼의 섬’ 바이칼 알혼섬에도 매일 기도를 하는 샤먼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문화의 힘은 역시 강했다. 브럇트인은 몽골과 소비에트의 지배에도 문화의 명맥만은 유지했다. 할아버지에게서 손자에게로 전해진 숱한 이야기를 통해 자신들의 뿌리를 잊지 않았고, 자연과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는 샤먼의 정신도 간직했다.

이르쿠츠크 브럇트 마을 입구에는 ‘민족과 문화에 상관없이 부랴트 민족에 대해 예의를 갖춰주세요’라는 팻말이 내걸렸다. 힘이 없어 다른 민족의 지배를 받더라도 문화만은 가둘 수 없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말이다.

브럇트의 문화 원류를 통해 다시 한 번 입증 된 것은 문화는 억지가 없다는 점이다. 총과 칼로써 뺏을 수 없는 게 문화이며 시간이 흘러도 유전처럼 후대에 남는 게 문화다.

/kro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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