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아라 선생의 삶을 돌아보며
2015년 12월 08일(화) 00:00

[박정순 광주YWCA 소심당 조아라기념관 관장]

역사와 예술이 공존하는 광주시 남구 양림동에 자리한 소심당(素心堂) 조아라(1912∼2003년) 기념관이 개관한 지 3개월이 지났다.

기념관은 조아라 선생이 생전에 아끼셨던 70년된 백일홍이 있는 아담한 정원과 함께 남구 제중로 46번길 306(양림동 108-23)에 들어서 있다. 조아라 선생이 2003년 7월 소천할 때까지 생의 마지막을 보낸 곳이기도 하다.

1층에 자리한 유물전시관에서는 조아라 선생이 40여년간 헌신했던 YWCA 등 여성운동들에 대해 만날 수 있다. 무궁화 훈장을 비롯한 유품들은 항상 가난하고 헐벗은 민중과 함께하며 청빈을 몸소 실천했던 조아라 선생의 단면을 보고 느끼게 해준다.

발걸음마저도 숙연하게 하는 목재계단을 오르면 기념관 2층 창문 저 멀리 무등산이 아련하게 들어온다. 이곳 사진전시실에서는 조아라 선생의 10대에서부터 70대까지 이르는 모습들을 연도별 사진으로 만날 수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삶을 살았던 선생님의 흔적을 이곳에서 찾을 수 있다.

백일홍은 ‘그리움’이라는 꽃말이 있다. 1층 정원을 지키고 있는 백일홍도 여름부터 가을까지 조아라 선생에 대한 애틋함을 대신해 꽃을 피운다. 백일홍은 조아라 선생이 좋아하던 꽃이기도 하다.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는 말처럼 화려하게 꽃을 피우지만 며칠 못 가는 다른 꽃들과 달리 백일홍은 7∼9월 사이 세 차례나 꽃을 피운다. 9월 초까지 홀로 고고하게 붉은 꽃을 피우는 백일홍은 생전 민주화와 여성 교육을 향해 애쓰던 조아라 선생의 삶과 닮았다.

조아라 선생의 1주기를 맞이하기 전인 지난 2004년 조아라 선생 기념사업회 창립총회가 있었다. 조아라 선생의 사랑과 헌신의 삶을 조명하며, 이 삶 속에 녹아 있는 여성운동, 민주화운동, 인권운동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서다. 지난 2005년부터는 지역사회에 선생의 정신을 더욱더 알리고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광주YWCA 2층에 기념실을 조성했다. 그리고 꼬박 10년 만에 독립된 공간이 확보된 것이다.

여기를 찾는 사람들은 초·중·고등학생, 대학생, 일반인, 해외여행객 등 다양하다.

기념관을 다녀간 뒤 “참으로 광주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받을 만하다”, “이렇게 검소하게 사셨는지 몰랐다”, “나도 이런 검소함과 리더십을 배우고 닮아가고 싶다” 등과 같은 포부를 가지는 학생들도 많아지고 있다.

한 교수님은 “얼마 전 개관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 일면 역사의 아픔이 서려 있고 피비린내가 난다면, 이곳은 왠지 따뜻함을 느끼고 위로받을 수 있는 공간”이라며 “조아라 선생님의 정신을 함양시켜 제2의, 제3의 조아라 선생님 같은 분이 많이 나오기를 간절하게 바란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평생을 헌신하고 봉사하며 여성 권익 보호를 위해 애쓰셨던 조아라 선생님. 인권, 복지, 민주화 운동에 앞장섰던 조아라 선생의 마지막 소원은 평화통일이었다. 조아라 선생은 고령에도 불구하고 1992년 9월 분단 이후 처음으로 평양에서 열린 남북여성토론회에 한국여성계 대표로 참석하며 통일의 물꼬를 트는 일에 앞장섰다.

아흔이 가깝도록 역사의 현장에서 민주주의와 여성, 인권, 사회복지, 평화 운동에 헌신하며 쉼없이 달려온 삶이었다. 늘 헐벗고 굶주리고 병들고 소외된 분들을 내 몸처럼 사랑하고, 자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정직한 삶을 사셨던 분이다.

이제 ‘광주의 어머니’ 소심당 조아라 선생의 정신을 계승하고 선양하기 위해 마련한 기념관을 통해 그 정신을 기억하고, 추억하고, 실천하는 것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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