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만든다는 것은
2014년 10월 07일(화) 00:00
장 민 혁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 출판사업팀장
철학교육연구소는 광산구 등임동에 위치한 철학인문학 대안학교인 지혜학교 산하의 연구소다. 지혜학교의 교육 이념을 실현하고, 청소년과 시민의 참교육과 함께 지역사회의 철학 인문학적 소양을 확대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이러한 목표 실현을 위해 철학교육연구소는 ‘현자의 마을’이라는 인문서적 전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다. 연구소가 출판사 운영을 결정하게 된 까닭은 크게 세 가지다. 첫째, 광주 지역사회에서 인문학 교육 열풍이 일어나고 있음에도 지역에 인문학 전문 출판사가 없기 때문이다. 둘째, 연구소가 진행하는 교육내용을 다방면으로 대중화하기 위해서다. 마지막으로 철학인문학을 매개로 다양한 이야기를 만들고 나누기 위해서다.

이러한 가치를 지향하는 몇몇 출판인들이 ‘현자의 마을’의 출범에 함께 해주었다. 실력 있는 편집자, 수십 년의 영업 노하우를 가진 마케터, 많은 저자들이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내주어서 지난해 10월 ‘중국고전우화’를 시작으로 ‘지혜를 찾는 교육’, ‘낭독은 입문학이다’, ‘관우’, ‘끌리거나 혹은 떨리거나’까지 총 다섯 권의 도서를 출판하였다. 어렵게 세상에 나온 이 책들은 각종 매스컴과 기관에서 좋은 평을 받고 소개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출판계의 현실은 냉혹했다.

‘낭독은 입문학이다’의 경우 문화관광부 추천도서로 선정되고, 각종 도서관련 기관에서 우수권장도서로 지정되었다. 하지만 ‘낭독은 입문학이다’는 대형 출판사가 출간하는 책의 평균 초판 부수에도 미치지 못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주변의 많은 분들이 출판업계가 불황이다 보니 이러한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했지만 문제는 단순히 출판업계의 불황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출판업계의 불황은 독자의 잘못이 아니라 출판업계 스스로가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인터넷이 일반화되고 전자책이 유행하면서 출판업의 유통구조가 변했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대형 인터넷 서점을 중심으로 독점적 유통구조가 형성되면서 지방의 중소서점들은 규모가 작아지거나 문을 닫았다. 점입가경으로 저가 판매 전략을 내세운 대형 인터넷 서점으로 인해 출판사들은 원가수준의 책 출고를 하게 된다. 자연스럽게 출판사는 박리다매 할 수 있는 책들을 만든다. 독자가 책을 읽고 또 다른 의미를 생산할 수 있게 하는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소비로만 끝나버리는 책을 만든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결과가 독자들에게 많이 팔린 책이 좋은 책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심어 주게 되었다.

그렇다 보니 요즘 출판사들은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을 고민하기보다는 책을 많이 팔기 위한 고민을 더 하는 것 같다. 베스트셀러를 만들기 위해서 수억의 돈을 들여서 책을 사재기하는 출판사, 똑같은 내용을 순서만 바꿔 자기계발서를 만드는 출판사, 인기가 있었던 드라마나 영화를 무조건 책으로 만드는 출판사를 보면서 요즘 출판이라는 것이 좋은 책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상품을 찍어내는 것처럼 보인다. 이 때문에 독자는 책을 통해서 가치 있는 정보와 의미들을 얻을 수 없게 되었고, 자신에게 필요한 책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조차 상실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도서정가제나 책 사재기에 대한 논란을 두고 왈가왈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출판사, 자신의 이야기를 주체적으로 펼치는 저자, 좋은 책을 선택하기 위해 고민하는 독자의 신뢰 관계 회복이 관건이다.

철학교육연구소의 출판사는 평생 동안 현장에서 대안교육을 고민했던 어느 대안학교 교장의 교육철학이 담긴 이야기, 낭독운동을 펼치고 있는 재야의 낭독활동가가 쓴 낭독 체험기, 중국고전우화를 청소년들이 알기 쉽게 풀어 쓴 이야기, 서평가의 책과 함께 한 진솔한 여행담, 중국의 실제 역사 속의 관우를 보여주는 책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신뢰 관계를 지향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에 대한 결과는 단순히 매출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외국의 출판사가 한 지역을 기반으로 두고 그 지역의 새로운 이야기거리를 발견하고 지역 문화를 만들어 가는 역할을 하는 것에 반해, 우리나라 출판사의 지역 기반은 서울ㆍ파주라는 공간에 제한되어 있다. 이것은 우리나라 출판사가 지역과 다양한 이야기를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중앙과 주류의 이야기들만을 고민한다는 반증이다. 출판사는 책을 만드는 것을 넘어서 한 지역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고 알려지지 않은 가치를 지역과 만들고 찾아 나가야 할 것이다. 지혜학교 철학교육연구소 산하 ‘현자의 마을’은 이름처럼 저자와 독자가 광주의 정신문화를 발견해내고 그 과정에서 지혜로움을 함께 추구하는 출판사를 만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