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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래그’(drag) 선생님

2012. 07.06. 00:00:00

‘담백, 치밀, 활발, 이해력·사고력이 매우 우수하다’(1학년) ‘독서력이 왕성하고 온순, 정직하며 통계력과 판단 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진취적이다’(3∼5학년)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일제 강점기 때 다녔던 목포상고(현 전남제일고) 시절 일본인 담임교사(1학년) 등이 종합생활기록란(性行)에 기록한 내용이다.
이들이 짚어낸 학창시절 김 전 대통령의 특장은 국민이 현재까지도 기억하는 그의 이미지 그대로다. 종합생활기록이 공개되자 국민은 “교사가 제자 김대중을 정밀하게 관찰, 지도했기 때문에 큰 정치 지도자의 자질까지 읽어낼 수 있었을 것”이라며 무릎을 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초중고 생활기록부를 작성한 담임교사들도 마찬가지. ‘통솔력이 있다. 지도능력이 있다. 정의감이 있다’며 지도자의 자질을 언급했다. 또‘비타협적이고 독선적이다. 자만심이 강하다’는 비판적인 평가도 남겼다.
학생의 품성과 재능을 한마디로 함축하는 탁월한 식견이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점에서 교사들의 제자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늠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에 따라 제자의 품성을 기르고 가르쳤음은 불문가지다.
그러나 기자가 취재과정에서 입수한 광주시교육청의 최근 감사결과는 놀라웠다. 광주의 한 초등학교 담임 교사들이 같은 문장을 토씨 하나도 바꾸지 않고 그대로 학급 전체 학생의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 특기사항란에 적어넣은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해당 교사들은 한 개, 혹은 두 개 문장을 작성한 뒤 복사해서 학생부에 그대로 붙여넣었다. 교과부가 훈령으로 금지하고 있음을 언급하기에 앞서 이는 직업적인 금도를 어긴 행위다.
감사 담당자가 “이건 아니잖아요”라고 지적하자, 해당 교사들은 “잡무가 많다 보니, 잘 몰라서”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이들은 제자들의 평생 학업기록이자, 자신의 교단일기인 학생부를 작성하는 본분을 단순히 물리적인 ‘일’로 여긴 것이다.
적발사실로만 보면 학부모들이 “혹시 교사가 우리 아이들을 가르치는 데도 이처럼 무성의하지 않을까”라고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더 큰 실망은 이들이 교직에 몸담은 지 채 5년이 되지 않는 젊은 선생님이라는 점이다. 교단의 불감증과 안일함도 이런 행태를 키웠다. 대학입시 전형의 중요한 잣대가 되는 고교 학생부와 달리 초교는 외부 평가 대상이 되지 않고, 학부모들도 크게 문제삼지 않기 때문에 이런 행태가 이뤄졌다는 게 교육계의 지적이다.
‘학생부 평가 귀찮다 붙여넣기 선생님’ 기사가 광주일보(7월5일자 1면)에 보도되자 한 교장선생님이 이른 아침 전화를 걸어왔다. “학부모들이 그렇잖아도 교사와 교단을 불신하는데, 교사들을 모두 이렇게 무성의한 선생님들이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우려섞인 내용이었다.
기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일부 교사들의 실수로 교단이 오물을 뒤집어 썼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는 분들보다, 선생님처럼 부끄러워 하는 교사들이 광주교단에 더 많다는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윤영기 기자 penfoot@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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