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빛 다랑이논·푸르른 가을바다 서로 반갑다 하네
2011년 10월 24일(월) 00:00
<37>고흥 해돋이길 - 남포미술관 ~ 우두해변
한적한 시골정취 예술품 감상 재미 쏠쏠
눈길 닿는 곳 액자에 담으면 그대로 풍경화

고흥군 영남면 해돋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해안선을 따라 가는 ‘해돋이길’의 경우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바다와 올망졸망한 조각 섬, 다랭이 논·밭이 한데 어울리며 장관을 연출한다. /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파란 가을 하늘에 하얀색 뭉게구름, 비취색 바다에 황금색 들녘, 오색 단풍으로 물들어가는 초록색 숲, 갈수록 적어지는 어획량에 살기 팍팍한 멸치잡이 어민들의 까만색 뒷그림자까지. 이맘 때 고흥 반도는 거대한 색도화지가 돼 가을 빛을 고스란히 풀어낸다.

걷기 좋은 가을, 여행객들이 신발끈을 동여매고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고 일컫는 고흥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고흥군도 걷기 열풍에 동참, 관광객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걷기 좋은 길’을 만들려는 구상을 세워놓았다.

전남도가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남도갯길 6000리’구간과 고흥군이 ‘고흥 10경(景)’을 활용해 자체적으로 추진중인 ‘마중길’이다. ‘고흥 10경 둘레길’이라는 명칭 아래 대서면 신기마을부터 우주센터, 남열해수욕장을 거쳐 동강면까지 9개 구간 406㎞에 조성한다는 남도갯길은 거창한 이름만 있는 길이다. 제대로 걸을 만한 구간은 찾아보기 힘들고 무작정 걷기 여행에 나섰다가는 길을 헤매기 쉽다.

고흥군이 주변 역사 문화 자원과 연계해 6개 구간으로 나눠 추진 중인 ‘마중길’도 구상만 세워진 상태다. 정비 예산도 세워지지 않아 큰 기대감을 가지고 나섰다가는 실망하기 쉽다. 변변한 쉼터나 편익시설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차량 통행이 뜸한 ‘해돋이길’의 경우 탄성이 절로 나오는 풍광 때문에 ‘조심스럽게’걸어볼만 하다.

해돋이길은 고흥군 영남면 남포미술관에서 시작해 ‘지붕없는 미술관’이라는 명칭이 붙은 해맞이 전망대, 남열해수욕장을 거쳐 영남면 용암마을의 용바위와 우두해수욕장으로 이어진다. 국도 77호선을 따라 15.9㎞에 이르는 길을 걷는데 족히 4시간이 걸린다.

남포미술관은 고흥의 명소다. ‘가도 가도 천리’라는 그 길을 따라 접하는 한적한 시골 정취와 그곳에서 만나는 작품 때문에 도시 어떤 이름난 미술관보다 재미가 쏠쏠하다. 지금 이곳에서는 청각 장애를 딛고 50년 가까이 고향 외나로도의 풍경만을 고집스럽게 담아온 최주휴 화백의 개인전이 다음달 6일까지 열리고 있다. 걷기도 전에 미술관에 걸린 그림에서는 강렬한 태양 아래에서 시시각각으로 바뀌는 봉래산과 쪽빛 바다가 출렁이고 있다.

고흥군 영남면 해돋이 전망대에서 바라본 전경. 해안선을 따라 가는 ‘해돋이길’의 경우 거칠 것 없이 탁 트인 바다와 올망졸망한 조각 섬, 다랭이 논·밭이 한데 어울리며 장관을 연출한다. /김진수기자 jeans@kwangju.co.kr
남포미술관을 나서 한적한 국도를 따라 얼마쯤 걸었을까. 부드러운 구릉 위에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고 적힌 해맞이 전망대가 나온다. 편익시설이라고는 벤치 몇 개가 고작이지만 전망대라는 이름에 걸맞게 올라서면 가슴이 시원하게 뚫린다. 쪽빛 바다에 해안선의 편린 같은 조각섬이 점점이 흩뿌려져 액자에 가두어 두면 그것 그대로 그림이 될 정도다.

해돋이 전망대에서 남열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구간은 파도가 오르내리듯 출렁거린다. 간혹 지나다니는 차량을 경계하면서 걸어야 하는 탓에 다소 버겁게 느껴진다. 차라리 드라이브 코스로는 손색이 없을 듯하다.

남열해수욕장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어 일출을 볼 수 있는 해변과 소나무 숲으로 유명하다. 철 지난 고즈넉한 해변 백사장을 걷는 것도 이맘 때에만 해볼만한 ‘특혜’다. 해변 위 야산에 우주선 모양으로 조성중인 높이 47m, 지상 7층(연면적 680㎡) 규모의 발사전망대는 내년부터는 빼놓을 수 없는 고흥의 대표적 관광 명소가 될 듯하다.

우주발사전망대 뒤편으로 우미산(449.7m)에 오르면 앞뒤로 막아선 산줄기가 없어 탁 트인 풍광에 대옥대도·소옥대도 등 올망졸망한 섬, 고깃배 등 바다가 안마당으로 들어온 듯한 장관이 펼쳐진다. 남열해수욕장·사자바위·용바위·보각사 등과 이어지는 우미산 등산로는 4.8∼7.4㎞에 걸친 세 개의 코스로 이뤄져 등산객 상황에 맞게 돌아볼 수 있다.

우미산(449.7m)을 따라 남열·간천·우암·용암 마을 등 지나치는 곳곳에서는 한적한 시골 마을과 거친 바닷가 주민들의 생계를 꾸리는 현장을 들여다볼 수 있다.

용이 용바위를 발판삼아 승천했다는 용바위를 끼고 있는 용암 마을에서 46년째 살고 있는 박점수(68)씨는 “30년 전만 해도 워낙 고기가 많아 마을 앞 바다로 모여든 대형 무역선들로 넘쳐났다”고 회상했다. 사는 주민 수가 별로 없고, 찾는 이도 드문 지금과 달리 아이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을 정도로 북적댔다는 얘기다.

용암마을을 지나 간천·신성마을을 거쳐 점암면 우두해변까지는 전형적인 가을 들녘과 바닷가가 이어진다. 멀고 먼 고흥, 서울 등 수도권에서 가자면 족히 6시간은 걸리는 길. 하지만 이 정도의 거리가 멀게만 느껴지지 않는것은 가을 색다른 풍광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일까.

/김지을기자 dok2000@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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