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왕과 사는 남자’
2026년 03월 09일(월) 08:20
비극의 역사 속, 義를 선택한 사람들 이야기
단종 폐위 유배 모티브
왕과 민초들의 관계 그려
재미·역사·감동 적절한 균형
작위적 연출 아쉬움도

단종 이홍위 역을 맡은 박지훈

“뭇사람들이 만류하는 데도 엄흥도는 말하기를, ‘의(義)로운 일을 하고 화(禍)를 당하는 것은 내가 마음에 달게 여기는 바요, 두려워하는 바가 아니다.’ 하였다”(국조인물고)

마지막 엔딩 장면 스크린 자막에 펼쳐진 글이다. 단종의 죽음을 끝으로 영화는 막을 내렸지만 역사서에 기록된 주인공 엄흥도의 말은 오랫동안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

과연 ‘의’(義)란 무엇일까. 그리고 의를 지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의를 지키기 위해 화(禍)를 그것도 가족에까지 미치는 재앙을 견딜 수 있을까.

영화 ‘왕과 사는 남자’(왕사남)은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 것인지 묻는다. 다시 말해 고초와 손해를 감수하고도 바른 길을 선택할 것인지, 도리와 명분보다는 시류를 좇는 삶을 살 것인지 생각하게 한다. 한명회의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지 민초를 대변하는 엄흥도의 자세로 살 것인지 자문하게 한다.

영화 속 엄흥도(유혜진 분)는 민초를 대변하는 인물이다. 그의 삶은 의의 길은 당장에는 죽음처럼 보여도 영원히 사는 길이며, 권모술수는 눈앞의 이익을 얻을 수는 있되 역사적 관점에서는 패배의 길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개봉 31일째인 지난 6일 오후 관객 수 1000만을 넘긴 ‘왕사남’의 비결은 비극의 이야기가 주는 뭉클함이다. 굴절과 파란의 역사에서 ‘의’를 선택했던 사람들의 곡절의 서사는 감정선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특히 단종(박지훈 분)이 활줄에 목을 맨 뒤, 엄흥도가 그것을 문밖에서 잡아당기는 장면은 극적인 비애감을 느끼게 했다. 객석은 관람객들의 훌쩍거리는 소리가 그치지 않을 만큼 슬픔과 절망감으로 들어찼다. 단종은 반란으로 정권을 탈취한 수양대군이 보낸 이들의 손에는 결코 죽을 수 없다는 결의로, 그렇게 마지막 순간을 유배지(영월 청령포)에서 함께했던 엄흥도에게 맡긴다.

우리나라는 5천년 역사 속에 수많은 외침과 변란, 정변, 반란 같은 파국의 역사가 있었다. 권력 쟁투와 맞물린 비극의 역사에서 억울한 죽임을 당해야 했던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마저도 대부분 권력층의 이야기가 주된 서사를 차지했다.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에 짓눌린 이름 모를 민초들의 피눈물과 고통은 비중있게 다뤄지기보다 배경이나 에피소드 정도로 그려지는 게 일반적이었다. ‘왕사남’은 왕과 민초들이 함께 어우러지며 곡절의 역사를 함께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스틸컷
‘왕사남’은 폐위를 당한 단종 이홍위(박지훈 분)가 강원도 영월 광천골로 유배를 당한 뒤 민초들과 어울리며 사는 모습을 담았다. 역사적 사실에 상상력을 가미해 풀어냈기에 관객들에게는 익숙한 이야기다. ‘하늘 아래 모든 서사는 새로운 것이 없다’는 고전적 명제를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수양 대군이 반대파를 숙청해 정권을 찬탈한 계유정난은 역사 전공자가 아니어도 숱하게 들어왔던 내용이다.

사실 영화를 보기 전에는 식상하지 않을까라는 기우가 있었다. 다행히 상상력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작품 곳곳에 배치에 둔 점이 눈에 띄었다. 단종의 죽음을 극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자살과 타살을 접목한 장면, 수양대군을 제거하기 위한 금성대군 일파의 긴박감이 넘치는 모의, 권문세가들의 유배지를 자신의 마을로 유치하기 위해 경쟁을 하는 촌장들의 다툼 등은 재미는 물론 새로운 접근을 하게 했다.

하지만 ‘왕사남’의 초반부는 실망스러웠다. 촌장인 엄흥도가 호랑이 사냥을 하는 장면이나, CG로 구현한 호랑이가 사람을 덮치는 모습은 몰입감을 주기보다 다소 우스워보였다. 또한 엄흥도가 관아의 수문장인 포졸들을 단번에 제치고 나아가는 장면이나 책사이자 수양대군의 오른팔이나 다름없는 한명회가 광천골까지 내려와 마을 촌장을 상대로 협박하는 것은 개연성이 부족해 보였다.

그럼에도 전체적인 구도 속에 사소한 ‘흠’은 묻히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서사 속으로 편입되었다. 영화적 재미와 역사적 상상력, 감동의 메시지가 적절한 균형점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실록의 빈 공간을 파고들어 의미있는 서사로 견인해낸 점이 그렇다.

그에 반면 뻔한 이야기를 다소 작위적 연출로 구현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다. 금성대군 일파가 거사를 도모하는 날 공교롭게 비가 오는 설정이나, 비장미를 강조하기 위한 대사 일테면 “네 상대는 나다”와 같은 진술적인 대사나 어투는 어색한 부분이 그렇다.

다행히 배우들의 연기력이 그 같은 미흡한 부분을 충분히 상쇄했다. 엄흥도라는 인물에 완전히 녹아들어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어낸 유해진의 연기력, 당대 최고 권력자인 한명회를 냉철하게 표현한 유지태의 연기도 인상적이었다. 유약하지만 마을 사람들과 어울리며 민초들의 왕으로 거듭난 단종 역의 박지훈의 깊이있는 연기도 볼만했다.

E. H. 카는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 무엇보다 ‘왕사남’의 미덕은 수양대군과 단종의 시대를 현대사에서 되풀이됐던 반란과 쿠데타의 역사에 비견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얼마 전 있었던 12·3내란이 영화를 보는 내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물리적인 내란을 일으킨 세력 외에도 쿠데타를 용인하거나 침묵했던 세력들의 행태도 떠올랐다.

영화관을 나오며 다시 ‘의(義)로운 일을 하고 화(禍)를 당하는 것은 내가 마음에 달게 여기는 바요, 두려워하는 바가 아니다’라는 민초 엄흥도의 말을 떠올렸다. 선택은 저마다의 몫이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적 평가는 냉정하고 지속된다는 것이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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