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험 산모에게 희망 전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6년 03월 08일(일) 18:25
고위험 산모 지켜온 전남대병원 김윤하 교수 정년 퇴임 기념식서
“소중한 두 딸 안겨준 우리 가족의 은인” …20년 전 환자 박명숙씨 인사

지난 7일 열린 김윤하(가운데) 전남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정년 퇴임 기념식에서 옛 환자 박명숙(왼쪽) 씨 부부가 감사의 꽃다발을 전달하며 정년 퇴임을 축하했다. /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결혼 10년 만에 어렵게 얻은 첫째 아이와, 그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임신한 둘째 아이까지 건강하게 낳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 교수님이 우리 가족의 은인입니다. 앞으로도 수많은 고위험 산모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시길 바랍니다.”

20여 년 전 고위험 산모였던 환자가 정년을 맞아 대학병원을 떠나는 교수에게 감사의 꽃다발을 전하는 뜻깊은 장면이 지난 7일 광주의 한 호텔에서 펼쳐졌다. 국내 산부인과 명의로 꼽히는 김윤하 전남대병원 교수가 33년간의 병원 생활을 마무리하는 정년 퇴임 기념식 자리였다.

전남대 의대 산부인과학교실이 마련한 이날 행사는 ‘무대는 바뀌어도 인술의 온기는 그대로’라는 주제로 열렸으며, 선·후배와 동료, 제자들이 함께해 그의 헌신적인 의료 인생을 기렸다. 특히 이날 행사에서 가장 많은 이들의 시선을 모은 순간은 김 교수의 옛 환자인 박명숙 씨가 무대에 올라 꽃다발을 전하는 장면이었다.

행사장에는 대한산부인과학회, 대한모체태아의학회, 대한산부인과내시경학회, 대한자궁내막증학회 등 국내 산부인과 관련 주요 학회 인사들과 전국의 의대 교수, 전남대 의대 동문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참석자들은 환자가 의사에게 직접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보기 드문 장면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의사와 환자 사이의 깊은 신뢰와 존경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제주에서 남편과 함께 올라온 박 씨는 꽃다발을 건넨 뒤 김 교수의 진료를 받으며 힘들게 두 딸을 얻은 과정을 얘기할 때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는 결혼 10년 만인 2006년 시험관 시술을 통해 첫째 딸을 임신했지만, 임신 34주 만에 조산했다. 이후 공황장애를 겪던 중 자연임신으로 둘째를 가졌지만 이 역시 임신 7개월 만에 출산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두 아이 모두 조산이었지만 김 교수의 세심한 진료와 치료 덕분에 건강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

현재 첫째 딸은 미국 보스턴에서 의대 공부를 하며 의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박 씨는 “교수님 덕분에 우리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김 교수는 인사말에서 “산모와 태아라는 두 생명을 동시에 지켜야 하는 산부인과 의사로서 그 의미를 매일 되새기며 진료에 임해 왔다”며 “임산부와 신생아에게 건강을 선물하는 것이 저의 사명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도 지역사회 필수의료에 봉사하며 의미 있는 삶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1993년 조교로 전남대병원에 첫 발을 내디딘 뒤 33년 동안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지키는 데 헌신해 왔다. 1997년 이후 공식 집계된 진료 실적만 보더라도 외래 환자 9만2300여명, 입원 환자 12만7000여명 등 20만명이 넘는 환자를 돌봤다. 수술 역시 전신마취 수술 6188건, 제왕절개 5390건, 고난도 전치태반 수술 1111건을 시행하는 등 국내 고위험 산모 치료 분야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남겼다.

특히 의정 갈등으로 의료 공백이 우려됐던 2024년에는 전남대병원 고위험 산모 제왕절개 수술의 60%가 넘는 283건을 포함해 총 312건의 수술을 시행하며 지역 필수의료를 지키는 데 힘을 보탰다.

병원 행정에서도 그는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진료지원실장과 진료처장, 병원장 직무대행 등을 역임하며 병원 발전에 기여했다. 병원장 직무대행 당시에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발생하자 응급의료지원팀을 현장에 파견하고 현장 응급의료소를 설치하는 등 지역 거점병원의 책임을 다했다.

학회 활동 역시 활발했다. 대한모체태아의학회 회장, 세계산부인과총연맹 안전한 모성과 건강위원회 선출위원, 대한산부인과학회 고위험임신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하며 국내외 산부인과학 발전에 기여했다. 연구 분야에서도 대한주산의학회 학술상과 우수논문상, 대한태아의학회 최우수논문상 등 다수의 학술상을 수상하며 학문적 성과를 인정받았다.

33년간의 대학병원 생활을 마친 김 교수는 이제 새로운 길에 나섰다. 그는 광주 미즈피아병원에서 ‘인생 2막’을 시작하며 여전히 산모와 아기를 위한 진료를 이어가고 있다.

무대는 바뀌었지만, 한 생명을 살리고 또 다른 생명을 지켜온 그의 따뜻한 인술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서승원 기자 swseo@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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