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약과 보은 - 이보람 예향부 부장
2026년 03월 04일(수) 00:20
3월의 대학 캠퍼스는 약속으로 분주하다. 강의실 위치를 묻는 질문만큼이나 자주 오가는 말이 있다. “선배, 밥약 가능하세요?” 새 학기 대화방에는 시간표만큼이나 빼곡하게 식사 일정이 올라온다. 밥약은 어느새 대학가의 인사말이 됐다. 관계를 시작하는 가장 무난한 방식이기도 하다.

밥약은 말 그대로 ‘밥 약속’이다. 왜 굳이 밥약일까. 이유는 단순하다. 강의실에서는 묻기 어려운 질문들을 식사하면서 편하게 꺼낼 수 있기 때문이다. 수강신청 팁, 교수님 스타일, 전공과목 난이도, 동아리 분위기, 취업준비 이야기까지…. 후배들은 궁금한 것을 묻고 선배들은 경험을 전한다. 선배가 밥을 사면 보통은 후배가 카페에서 차를 사며 답한다. 이를 ‘보은’이라 부른다. 거창한 의례는 아니지만 일방으로 끝내지 않겠다는 작은 성의 표현이자 얻어먹는 자리에서 멈추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마음을 돌려주는 문화다.

흥미로운 점은 이 가벼운 신조어 안에 여전히 질서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다. 선배는 사는 사람이고, 후배는 보답하는 사람이다. 위계는 느슨해졌지만 예의는 남았다. ‘보은’이라는 단어가 다소 장난스럽게 쓰이지만 그 안에는 관계를 이어가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물론 현실은 낭만만으로 유지되지는 않는다. 학식 한 끼 값과 학교 밖 식당 한 끼 값의 차이는 작지 않다. 식사 뒤 카페까지 이어지는 코스는 자연스러운 공식처럼 굳어 있다. 얻어먹던 1학년이 어느새 사야 하는 2학년이 되는 순간, 이 아름다운 관계의 순환은 곧 경제의 문제가 된다. 인기 많은 선배는 밥약이 늘어날수록 통장 잔고가 빠르게 줄어든다. 3월의 아이러니다. 밥약은 어디까지가 예의이고 어디부터가 부담일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밥약은 계속된다. 단순히 밥을 사는 행위가 아니라 ‘다시 보자’는 약속이기 때문이다. 새 학기 캠퍼스에서 오가는 수많은 밥약 속에는 사회의 작은 규칙과 청춘의 고민, 관계를 이어가려는 마음이 함께 담겨 있다. 비싼 식당이 아니어도 좋다. 학식이면 어떻고 분식집이면 또 어떤가. 결국 중요한 것은 메뉴가 아니라 서로의 시간을 내어주는 일일 것이다.

/이보람 예향부 부장 bora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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