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서점 ‘지금, 여기’ 독서를 묻다
2025년 12월 10일(수) 19:15
광주문화재단 14일까지 전일빌딩245 ‘지역서점 팝업스토어 도서전’
전국 독립서점 32곳 참여 무인 운영…전시·체험·굿즈 마켓 등 풍성

광주문화재단이 ‘2025 광주 올해의 책 도서전’을 오는 14일까지 전일빌딩245에서 연다. 독립서점이 큐레이션한 서적들.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바야르는 ‘예상 표절’이라는 도발적인 개념을 통해 문학의 시간은 직선이 아니라 순환한다고 말했다. 과거의 작가가 미래의 작품이나 아이디어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소포클레스가 프로이트를, 볼테르가 코난 도일을 ‘미리’ 표절한다는 역설처럼, 오래된 텍스트는 종종 오늘의 독자에게 먼저 말을 걸어온다.

과거에 쓰인 문장이 지금의 현실과 기묘하게 겹쳐질 때 우리는 문학의 현재성을 실감한다. 한 해의 끝자락, 전국 32개 지역 독립서점이 광주에 모여 ‘지금, 여기’의 독서의 의미를 다시 묻는다.

광주문화재단은 오는 14일까지 전일빌딩245에서 ‘2025 광주 올해의 책 도서전’을 연다. 지역서점 팝업스토어 형식으로 마련된 이번 도서전은 전시·체험·마켓이 어우러진 무인 도서전으로 운영된다. 독립서점의 큐레이션을 한 공간에 집약해 단순한 판매를 넘어 책을 다시 사회적 의미로 호출한다는 취지다. 광주문화재단의 ‘지역서점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행사의 기획과 운영은 광주 지역 독립서점 ‘책과생활’과 ‘예지책방’이 맡았다.

특히 이번 도서전은 지난해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1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12·3 비상계엄 이후 ‘소년이 온다’를 비롯한 한국 문학이 다시 광장의 언어로 불려 나온 흐름 속에서 책이 어떻게 다시 현재의 언어가 되는지를 서점의 시선으로 묻는다. 출간 시기나 베스트셀러 순위가 아니라 지금의 사회와 맞닿은 책들이 이번 도서전의 기준이 됐다.

스탬프투어 체험존의 모습.
도서전은 전시·체험·마켓 세 개의 영역으로 구성된다.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맞는 ‘전시’ 섹션에는 전국 32개 독립서점이 선정한 ‘올해의 책’ 속 핵심 문장이 엽서 형태로 소개된다.

“늑대에게만 자유를 주는 사회는 자유로운 사회가 아니라 죽음의 사회입니다. p.16”과 같이 문장만 제시될 뿐 책 제목과 저자명은 감춰져 있다. 대신 서점 이름과 페이지 수가 힌트로 주어진다. 관람객은 문장 하나를 단서 삼아 책을 추리하고 텍스트가 지닌 울림에 먼저 귀 기울이게 된다.

‘체험’ 존에서는 스탬프 투어가 진행된다. 책 속 문장과 단어 스탬프를 조합해 자신만의 문장을 만들고, 세상에 하나뿐인 엽서를 완성하는 참여형 프로그램이다. 문장을 읽고, 고르고, 조합하는 과정을 통해 책을 눈이 아닌 온 몸으로 감각하게 하는 것이다. ‘도서 굿즈’를 사랑하는 독서가들을 위한 ‘마켓’도 마련됐다. 참여 서점이 추천한 도서 60여 종과 직접 제작한 굿즈가 함께 소개된다. 책방지기들이 직접 쓴 추천사가 담긴 책갈피는 관람객의 선택을 돕는 작은 길잡이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루리 작가의 ‘나나 올리브에게’, 정대건의 ‘급류’, 오찬호의 ‘납작한 말들’ 등 서점이 고른 책들은 현장에서 바로 구매할 수 있다.

이번 도서전을 기획한 책과생활 신헌창 대표와 예지책방 차예지 대표는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이후 오래된 책이 다시 오늘의 언어로 읽히는 장면을 목격했다”며 “2024년 12월의 기억과 광장의 경험을 지나 곧 2026년을 맞는 이 시점에 전국 책방지기들이 주목한 책들을 한자리에 모아 보고 싶었다”고 전했다.

재단 배동환 사무처장은 “짧은 준비 기간에도 불구하고 전국의 많은 지역서점이 이번 실험에 기꺼이 동참해 줬다”며 “전일빌딩245라는 역사적 공간에서 좋은 문장이 책과 독서 굿즈로 이어지는 특별한 경험을 통해 지역 서점의 가치와 역할을 다시 발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행사 관련 자세한 내용은 광주문화재단 누리집과 책과생활·예지책방 SNS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글·사진=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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