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취 감춘 외국인 노동자…김장철 배추 뽑을 사람이 없다
2025년 11월 26일(수) 20:25
출입국 단속 피하려 일 안 나와…전국 최대 해남 배추농가 일손 뚝 끊겨
절임배추 가공공장도 7명 결근…납품약속 못 지켜 위약금 물어낼 판
“계절근로자·불법체류자 뒤섞인 현실…김장철 이후 정비를” 하소연도

/클립아트코리아

정부의 외국인 불법 노동자들에 대한 단속이 본격적인 김장철에 이뤄지면서 고령화와 인력난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해남 등 농촌 농민들이 일손을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

26일 해남군에 따르면 정부가 지난 17일 불법 체류중인 외국인 노동자 10여명을 적발해 조사한 이후 추가 단속을 우려해 외국인 노동자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수확철 배추 농가가 일손을 구하지 못해 속을 태우고 있다.

해남은 전국 생산량의 25~30%를 차지하는 전국 최대 배추 생산지(가을배추 2472㏊·겨울배추 2427㏊)로, 김장용 절임배추도 743개 농가가 지난해 319만 박스(20㎏ 기준)를 판매해 129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해남군 북평면에서 15년째 6만6000㎡(2만평) 규모의 배추 농사를 짓는 50대 농민 김모씨는 광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며칠 전 출입국 기관의 단속 이후 일손이 뚝 끊겼다”면서 “김장 배추 수확(5000평)을 끝내고 나머지(1만 5000평)를 마무리하려면 하루 21명이 달라붙어야 하는데, 단속 이후 무서워서 안 오겠다고 해 수확이 불가능한 형편”이라고 하소연하고 있다. 일대 배추 재배 농민들 사이에서는 “‘검은 봉고’만 보이면 배추밭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전력질주 달리기를 한다”는 말도 나온다.

인근에서 절임배추를 가공해 판매하는 50대 장모씨도 “같이 일하던 7명이 한꺼번에 나오지 않았다”면서 “이 많은 배추를 누가 어떻게 처리할지 답답하다”고 울화통을 터트렸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몸을 숨기면서 김장철을 앞둔 해남 배추밭 일대에는 불법 체류 노동자를 채용한 농가와 인력을 소개한 이들에게도 벌금이 부과된다는 이야기가 확산하면서 일손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가 됐다.

해남 배추 밭 농민들의 경우 통상 외국인 노동자 알선 사무소를 통해 10여명을 하루 단위로 고용해 김장철 작업량을 해결해오다 최근 외국인 노동자들이 일을 기피하면서 웃돈을 얹어주면서 어르고 달래 밭으로 데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이마트, 롯데마트 등 대형마트와 김장절임배추 납품 계약을 맺은 농민들의 경우 수확이 제 때 이뤄지지 않으면 위약금까지 감수해야 하는 만큼 일손 확보에 애를 태우고 있다.

농민들 사이에서는 “납품 일자를 못 지키면 위약금을 물어야 하는데, 일손이 뚝 끊겨 수확도 못하고 배추를 그대로 날릴 처지”라며 “상당수 배추 재배 농민들이 배추 재배로는 수익 내기 쉽지 않아 갈아엎다가 절임 배추로 돌렸는데, 이제 단속 때문에 일손이 없어 그것까지 못하게 된 것 아니냐”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이러다보니 정치권에서도 현장 상황을 고려한 예방적 단속과 시스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무조건적 단속에 치우치는 대신, 외국인노동자들이 법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제도 정비에 초점을 맞춰달라는 주문이다.

더불어민주당 박지원(해남·완도·진도) 국회의원은 광주일보와 통화에서 “농·어촌은 외국인 노동자가 없으면 생산도, 소비도 죽는다”면서 “수확철, 농번기철 단속을 하면 현장은 움츠러들 수 밖에 없으니 배추 수확과 절임 작업, 김 양식 시기 등 현장 여건을 고려한 단속과 제도 운영이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