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피플, 존 정이현 지음
2025년 10월 23일(목) 19:25 가가
카페나 식당 문 앞에서 ‘노 키즈 존’이라는 문구를 자주 본다. 아이의 출입을 제한하는 공간이라는 뜻이지만 그 말 속에는 어쩐지 서늘한 거리감이 느껴진다.
소설가 정이현이 9년 만에 펴낸 신작 소설집 제목이 뜻밖에도 ‘노 피플 존(No People Zone)’이다. 책 제목 ‘노 피플 존’은 수록작 ‘단 하나의 아이’에서 언급되는 말로, 사람 없는 구역 혹은 사람이 있지만 서로 닿지 못하는 세계를 의미한다. 제목만으로도 이미 현대 사회가 품은 고립과 단절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이번 책에서 작가는 ‘관계 이후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더 이상 관계 맺기가 당연하지 않은 시대, ‘혼자이지만 완전히 혼자이고 싶진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코로나 이후의 현실, 돌봄의 피로, 감정의 마모 같은 동시대의 징후들이 인물들의 삶 속에 녹아 있다.
책에는 각기 다른 세대와 계층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소설집의 문을 여는 ‘실패담 크루’는 삶의 실패를 솔직히 고백하며 연대하는 사람들의 느슨한 모임을 그린다. ‘언니’에서는 여성 간의 미묘한 위계와 연대가 교차하고, ‘단 하나의 아이’는 돌봄노동의 현실과 감정의 소모를 정면으로 마주한다. ‘이모에 관하여’는 타인의 삶을 지켜보며 스스로를 비추는 시선을 담고, ‘사는 사람’은 끝내 움직이지 않으려는 이들의 체념과 희망을 동시에 보여준다. 정이현의 문장은 여전히 조용하지만 힘이 있다. 일상의 균열 속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미세한 온도차’를 포착한다.
정이현은 ‘작가의 말’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저는 오늘도 수많은 모순에 둘러싸여 살아갑니다. 혼자 있기를 간절하게 바라지만 또 완전히 혼자이고 싶지만은 않은, 선택적 고립의 욕망도 거기 속할 것입니다. 제 안과 밖의 모순과 욕망들을 오래 들여다보면서 천천히, 멈추지 않고 썼습니다.” <문학동네·1만8000원>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소설가 정이현이 9년 만에 펴낸 신작 소설집 제목이 뜻밖에도 ‘노 피플 존(No People Zone)’이다. 책 제목 ‘노 피플 존’은 수록작 ‘단 하나의 아이’에서 언급되는 말로, 사람 없는 구역 혹은 사람이 있지만 서로 닿지 못하는 세계를 의미한다. 제목만으로도 이미 현대 사회가 품은 고립과 단절의 감정을 떠올리게 한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