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대목 보고 저장해 놨는데…배 값 폭락에 ‘농심 폭삭’
2025년 08월 26일(화) 21:25
지난달 15㎏ 도매가 3만1597원…전년대비 80% 가까이 떨어져
햇배 출하·지정출하제도 ‘한몫’…배생산자협, 농림부 항의 방문

/클립아트코리아

추석을 앞두고 특수를 기대했던 배 농가가 속앓이를 하고 있다. 나중에 가격이 오르면 내보내려고 저장했던 배 가격이 오히려 크게 떨어지면서다.

26일 찾은 나주배원예농협농산물공판장에서는 15㎏ 배(원황) 한 상자 기준 5만 5000원에서 6만원 사이에 거래되고 있었다. 지난해 한 상자에 최대 13만원으로 수익이 좋아 이번에도 명절특수를 기대했던 농민들은 당혹스러움을 금치 못하는 분위기다.

30년째 과일 도매상을 하는 채규남(여·64)씨는 “최근 배 15㎏ 당 5~6만 원 수준으로 팔고 있다. 명절에는 보통 7만~8만 원은 올라야 수익이 남는데, 지금은 현상 유지가 되지 않아서 마진이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KREI)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달 기준 2024년산 배(신고·상품)의 15㎏당 도매가격은 3만1597원으로 떨어졌다. 이는 지난해 같은 달 16만 8763원과 비교하면 80% 넘게 폭락한 것이며, 그 전년도 가격인 4만 8000여원에 비해서도 떨어지는 가격이다. 평년 도매가격인 8만 844원에 비하더라도 한참 떨어진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올해 햇배가 출하되더라도 가격이 제대로 형성될 수 있겠냐는 것이 농민들과 상인들의 하소연이다.

농민과 상인 등은 한 목소리로 “지난해 저장한 배 물량이 너무 많았다”고 지적하고 있다.

지난해 배 생산량이 급감하면서 가격이 폭등하자, 농민들이 “비싸면 팔려고” 배를 잔뜩 저장해 뒀다가 가격 폭락을 맞았다는 것이다.

지난 2023년 일소 피해로 배 생산량이 줄자 일부 농가가 저장한 배를 비싸게 팔아 한 상자 가격이 15~20만원까지 치솟았다. 일부 농가에는 미처 팔지 못한 물량도 남아있고, 햇배 출하 시기와 겹쳐 가격 하락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평년 전국 배 생산량은 19~20만t 안팎이지만, 2023년에는 18.4만t, 2024년 17.8만t밖에 생산되지 않았다. 특히 2024년에는 폭염, 폭우가 오가는 이상 기후로 일소 피해 등이 겹쳐 생산량이 급감했다.

농민들은 정부의 ‘지정출하제’도 가격 폭락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목하고 있다.

지정출하제는 배 값 안정화를 위해 민간 계약을 통해 정부가 일정 물량을 사전에 매입, 확보해 가격 급등락 시기에 시장에 공급하는 제도로, 배 가격 조절을 위해 올해부터 시행됐다.

정부는 지난해 생산한 배 중 2500t을 저장해 둘 것을 APC에 지시했으며, 이후 지난 4월에서 7월까지 저장분을 모두 시장에 공급했다. 이에 농민들은 “정부가 지정출하제로 많은 양의 배를 시장에 풀면서 시세가 급격히 떨어진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는 것이다.

전남지역 배 생산자로 구성돼 지난달 15일 출범한 ‘배생산자협회’는 지난 19일 정부 세종청사 농림축산식품부를 항의 방문하기도 했다. 협회는 6월 초순부터 정부가 지정출하제 실시를 예고하면서 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이다.

조대형(70·나주시 금천면) 농가 대표는 “작년처럼 10만 원 넘는 시세는 바라지도 않는다. 조금만 올라도 괜찮은데, 정부가 지정 출하제를 시작한다고 하니 시장에서는 정부가 가격에 개입하는 것으로 인식되면서 가격이 확 떨어져버린 것”이라며 “서서히 풀면서 적정 가격을 유지했어야 하는데, 무조건 풀고 보조금 준다면서 시작해버리니까 농민들이 피해를 봤다”고 말했다.

이밖에 2024년 생산된 저장 배의 품질이 좋지 않은 점, 배에 대한 수요 자체가 줄고 있는 점 등도 가격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국배연합회 관계자는 “지정 출하제의 취지는 긍정적이었으나 시행 과정에서 효과를 내지 못했다”며 “일부 농민들이 무리하게 배를 저장한 것이 가격 폭락을 자초했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저장 배는 1년 이상 보관하기 어려운데, 아직까지 출하하지 않은 농가가 있어 가격 폭락이 심화됐다. 결국 일부 농가는 손해를 보고 버리거나 가공용(배즙 등)으로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농림부 관계자는 “이상 기후로 지난해 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폭증한 데 따른 여파로 배 가격에 대한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지정출하제는 사과에 대해서도 시행되고 있는데 사과는 큰 가격 변동이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결국 작황이 안 좋은 때의 배를 장기 저장하거나 판매 부진 등 여러 원인이 겹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이어 “배 가격이 안정화될 수 있도록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덧붙였다.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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