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을 읽습니다, 서민선 지음
2025년 07월 04일(금) 00:00
어느 날 문득, 삶의 끝이 저만치 보이기 시작한다. 한 군데 두 군데 몸이 아프기 시작한 부모님, 그리고 거울 속 낯선 내 얼굴에서 노화의 징후는 하나둘 현실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노년’이라는 긴 강을 건너야 할 때를 맞이한다.

서민선의 ‘노년을 읽습니다’는 노년을 맞이한 이들이 겪는 불안과 체념, 그 안에서도 다정함과 연대를 찾으려는 기록이다. 저자는 시어머니의 말년을 지켜본 경험을 바탕으로 치매·질병·돌봄·죽음 같은 구체적인 문제들을 마주한다. 이 과정에서 만난 36권의 책의 이야기들을 실제 경험과 함께 곁들인다.

책은 건강과 생존, 가족과 네트워크, 돌봄과 죽음, 노년의 삶이라는 네 가지 주제로 나뉜다. 한 사람의 노년은 단일한 문제로 요약되지 않는다. 병든 몸으로 외로이 일상을 견디는 아버지, 무릎으로 기는 삶에 적응해 살아낸 어머니, 장기 요양 속에서도 또래 집단에 안도하던 할머니의 모습은 저마다의 사연과 시련을 지닌 채 남겨진 시간 속을 살아간다. “오늘 밤에 죽었으면 좋겠다”던 시어머니의 말에서 저자는 통증을 맑은 정신으로 견뎌야 했던 노인의 자존과 수치를 함께 읽어낸다. 그래서 말한다. ‘적당한 치매’란 없다고.

노년은 누구에게나 예정되어 있으나, 제대로 마주한 사람은 드물다. 책은 노화의 풍경을 다정하게 들춰내면서도, 그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지를 묻는다. 가족 안에서의 역할 변화, 일과 소득의 단절, 친구의 부재, 돌봄의 고통, 죽음을 받아들이는 일까지. 무엇보다 책은 한 사람의 노년이 그저 개인의 몫이 아님을 말한다. 가족과 사회가 함께 감당해야 하는 일이며, 또한 늦은 시간에도 여전히 존엄을 지킬 수 있다는 믿음이다. 죽음이라는 끝을 향해 가는 시간 앞에서 그 하루하루를 조금 더 단정하게, 다정하게 살아내도록 북돋아준다. <헤르츠나인·1만9800원>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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