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을!- 한미경 독일 하늘퍼블리싱 대표
2025년 04월 08일(화) 00:00
2025년 봄 지구 전체에, 자본과 권력이 소수에게 집중되는 새로운 독재의 출현에 대항하여 민주주의의 가치를 수호하고 시민사회의 정의를 다시 세우려는 목소리들이 우렁차다. 19년째 독일에서 살고 그곳에서 두 자녀를 키운 재독 한국인인 나는 지난해 11월 한국에 입국했다가 한국사회에서는 이 갈등이 어떻게 표출되고 진행되는지를 피부로 체험하게 되었다. 출판인이며 교육가인 나는 한국에 머무르는 4개월 동안 국공립교육기관, 독일 발도르프 학교 및 대안교육기관, 또 여러 서점과 출판인들과도 교류할 수 있는 기회를 여러번 가졌다. 그 사이 저학년 어린이들을 위해 간절하게 다가온 생각이 있어 오늘 이렇게 나누고자 한다.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독재자들은 권력을 장악하고 공고히 하기 위해 우민화 정책을 사용하는데, 시민들을 통제하기 쉬운 군중으로 전락시키기 위해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을 많이 길러내고 교육 내용을 국가가 철저하게 통제한다.

독서 인구 감소는 세계적인 현상이긴 하나 여전히 비교적 높은 독서 인구를 가진 인문학 강국인 독일에 살아온 나는 마음 속으로 나의 모국 또한 문화강국의 반열에 들어섰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그런데 서점을 방문하였다가 심각한 충격에 휩싸였다. 어린이 출판물의 모든 분야, 학습, 과학, 문학 할 것 없이 한결같이 만화풍 일색이었던 것이다.

서점에선 어린이들이 직접 고르기 때문에 판매량이 높은 만화풍의 책이 현재 대부분 유통된다고 설명했다. 아는 학부모는 출판사들이 이윤에 급급해 저학년 출판물이 하나같이 천편일률적인 그림과 조악한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어 학부모 입장에선 대안이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국 어린이들이 독일 어린이들보다 수준이 낮을리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의 어린이들은 우스꽝스런 그림과 유치한 문장의 책만을 잘 읽을 것이라고 출판인들은 생각한 것일까?

이 논의를 더 이어가기 전에 우선 저학년 아이들의 특징을 살펴보자. 7세에서 9세에 걸쳐 아이들의 몸에선 이 갈이가 진행된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치를 자기의 영구치로 하나씩 갈아나가면서 음식물을 섭취하여 영양분을 흡수하는데 쓸 자기만의 치아 구조를 견고히 만들어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은 신체의 영양소만이 아니라 정신적 자양분도 꾸준히 공급받아야 건강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고, 이 마음의 양식을 섭취하는 가장 기본적인 방법이 바로 독서인 것이다. 그러니, 책을 읽는 즐거움을 배워가는 첫 독자들인 저학년 어린이들에게 최고로 아름다운 책을 쥐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이들이 자라 출판을 지탱해주는 토양, 단단한 독서인구로 자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독서는 사람이 저절로 할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안내되고 익혀야 하는 문화습관인 것이다. 부모 품에서 나와 조심스럽게 세상을 향해 팔을 벌리고 있는 어린이들의 순수한 눈빛을 떠올려 보라! 이 어린이들에겐 더더욱 아름다운 문장과 그림으로 채워진 양서를 열정적으로 출판하여 그들을 깨어있는 ‘책 읽는 시민’으로 키워가야 하는 것이 출판인의 신성한 의무가 아닐까?

저학년 자녀를 둔 부모 또한 유해식품을 가려내고 안전하고 영양가 높은 음식을 골라 먹이듯이 좋은 책을 골라 읽히고 해로운 책을 멀리하게 하여 좋은 독서습관이 형성될 수 있도록 더 보살펴주기를 권한다. 유아기까지 소중하게 키운 자녀를 학령기가 되었다고 그냥 방임해버리기엔 너무 이르다.

‘늑대와 일곱마리 아기염소’ 속의 이야기처럼 부모가 부재한 사이, “얘들아, 문 열어라. 너희들에게 맛있는 것을 주려고 엄마가 왔다”고 꼬시는 늑대에게 자녀의 미래를 통째로 삼키게 만드는 어리석음을 피해 갈 지혜를 모든 부모들이 꼭 가졌으면 하는 간곡한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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