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에 우산을 가져갈까 - 장동언 기상청장
2025년 03월 31일(월) 21:30
흐린 하늘을 올려다보며 우산을 챙길지 말지 망설이는 순간, 우리는 모두 기상학자가 된다. “오후에 비 올 확률 70%”라는 일기예보를 들었음에도 ‘과연 비가 올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한 줄의 일기예보 속에는 ‘불확실성’과 ‘애매함’이라는 두 가지 속성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기상청은 매일 위성과 레이더, 전국의 지상 관측소를 통해 방대한 기상 자료를 수집한다. 하지만 광활한 지구를 빈틈없이 관측한다는 것은 사막의 모래 전부를 손바닥에 담으려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이다. 드넓은 바다 한가운데나 험준한 산악 지대는 관측 장비 설치조차 쉽지 않고 아무리 정교한 관측 장비라 해도 그 해상도에는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이렇게 관측 단계에서 생긴 작은 빈틈들은 예보에 ‘불확실성’이라는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더욱이 현대 기상 관측 시스템이 직면한 도전은 물리적 한계에만 머물지 않는다. 대기 중의 미세한 변화까지 찾아내려는 최첨단 센서들은 때로는 너무 많은 정보를 쏟아내 오히려 혼란을 더하기도 한다. 마치 수천 개의 퍼즐 조각을 맞추어 작품을 완성하는 일이 쉽지 않은 것처럼, 수많은 자료를 의미 있는 패턴으로 엮어내는 작업은 또 다른 차원의 도전이 된다.

다양한 방법으로 수집된 자료들은 수치예보모델이라는 정교한 예측 도구를 거쳐 미래 대기의 움직임으로 그려지는데 여기에는 ‘나비효과’라는 신비로운 자연의 법칙이 숨어있다. 서울에서의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다는 이론처럼 초기 조건의 미세한 차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눈덩이처럼 불어나 예측 불가능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한 기상 예측의 불확실성은 때로는 예기치 못한 곳에서 증폭되기도 한다. 도시화로 인한 열섬 현상,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 패턴의 변화, 심지어는 인공위성의 일시적인 오작동까지도 예보의 정확도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불확실성의 그림자를 조금이나마 걷어내고자 기상청을 비롯한 각국의 예보 기관들은 ‘앙상블 수치예보’의 지혜를 빌린다. 이는 여러 명의 현자가 각자의 관점에서 미래를 점치듯 초기 조건과 모델의 매개변수를 조금씩 달리하며 여러 차례 예측을 시도하고 이를 통해 모인 다양한 가능성 중에서 가장 그럴듯한 시나리오를 찾아내는 것이다. 현대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앙상블 예보에 정교함을 한층 더했다.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분석 기술의 도입으로 과거의 기상 패턴을 학습하고 미래의 변화를 더욱 섬세하게 예측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첨단 기술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자연의 변덕스러움을 완벽히 꿰뚫어 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은 과제로 남아있다.

불확실성이라는 그림자를 최대한 거두고 정성껏 빚어낸 예보는 국민에게 전달되는데 그 과정에서 이번에는 ‘애매함’이라는 안개가 끼어든다. “오후에 비가 오겠다”라는 간단한 문장 속에는 시간과 장소의 구체성이 희미하다.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 수도권 지역을 중심으로 시간당 30㎜의 집중호우가 예상된다” 같은 세밀한 설명도 여러 매체를 거치며 문장이 축약되면서 맥락이 흐려지기 쉽다. 그래서 “비가 온다더니 맑네?”라는 말이 자연스레 피어나는 것이다. 이러한 소통의 간극은 단순한 오해를 넘어 때로는 심각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호우 경보가 발령되었음에도 그 심각성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적절한 대비를 하지 못하거나 반대로 약한 비 소식에 과도한 경계 태세를 갖추는 등의 혼선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일기예보는 ‘불확실성’이라는 운명을 안고 태어나 ‘애매함’이라는 짐을 지고 우리에게 다가온다. 이 본질을 이해한다면 예보와 실제 날씨가 다를 때마다 답답해하기보다는 대기의 변화무쌍한 성질과 예보의 태생적 한계를 받아들이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 것이다. 일기예보를 보고 출근길에 우산을 챙기는 일도 실은 복잡한 과정 끝에 나온 예보의 한 조각을 수용하여 불확실성과 애매함 사이에서 우리가 선택한 것이다.

우리의 일상이 점점 더 날씨에 민감해지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기상 예보의 불확실성과 애매함을 이해하는 것은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이는 우산을 챙길지 말지를 결정하는 문제를 넘어 자연과 인간, 과학과 일상이 만나는 지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을지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공한다. 기상청은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수치예보모델을 정교화하고 앙상블모델의 숫자를 늘리고 예보 용어를 명확히 하는 등 부단한 노력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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