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매(探梅) 향기에 취해보자- 곽성구 전 광주일고 교사
2025년 02월 27일(목) 00:00
개구리가 깨어나려는 경칩이 가깝다. 언제나 그랬듯이 꽃샘추위는 그냥 지나가지 않고 제 힘자랑을 한껏 해 볼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곁에 봄볕은 따스하게 얼굴을 내밀고 제 자랑을 할 것이다.

남쪽 저 멀리서부터 매화가 피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그윽하다고만 표현하기에는 느낌을 다 하지 못하였다. 가슴 깊은 곳에는 매향으로 넘친다. 눈을 감으면 내 고향 동네 고목에 피었던 매화의 향기가 가득하다. 고혹하기까지 한 그 향기를 깊게 간직하고 있다. 하여 길을 가다가 스치는 알 수 없는 곳에서 매향이 스칠 때면 근원을 찾아가 꽃을 찾아가 향기를 확인 한다. 숨겨둔 내 첫사랑의 향기다.

잘 알려진 이퇴계 선생의 두향이와의 사랑은 그 많은 나이 차이를 넘어서 애틋한 사랑으로 발전한 로맨스다. 퇴계 선생이 48세에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그 고을 관기(官妓)였던 18세의 어린 두향이 선생의 수발을 들었다. 두향은 가까이에서 모시는 선생의 인품을 흠모하였고, 퇴계 선생도 부인과 아들을 잇따라 잃었던 터라 공허한 가슴에 두향이를 옆에 두었다. 두향은 관기이면서도 성품이 법도와 예절에 어긋남이 없었고, 시와 서, 거문고에 능하며 함께 매화를 좋아했다.

퇴계 선생이 부임 9개월 만에 경상도 풍기군수로 전근 발령을 받았다. 그때 두향이 매화 시 한편과 매화분을 전해드렸다. 훗날 퇴계 선생이 남기신 “저 매화분에 물을 주라”는 유언은 유명하다. 도산서원 뜰에 저 매화는 두 향매가 대를 이어가고 있다. 한낱 어린 관기와의 사이 그 애달픔을 잊지 않음이 또한 군자의 예(禮)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선생이 남긴 매화 시(詩)가 100 수가 넘는다고 한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남도에는 너무도 환상적인 매화로 가득하다. 그 향기를 따라가면 퇴계 선생과 두향이와의 로맨스가 매향을 품고 또렷이 재생된다. 한참을 현실을 떠난 고혹적인 세계로 자유롭게 떠돌다 오곤 한다. 올해도 나의 탐매는 새로운 상상의 세계에서 노닐다가 돌아올 것 같다.

해마다 찾아간 선암사의 선암매, 백양사의 고불매, 화엄사의 화엄매, 전남대학교 대명매가 가까이 있어 나에게는 더 없는 축복이다. 잠깐 시간을 내면 이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신선의 세계로 빠져들게 된다. 어렵고 힘들었던 구질구질한 번민들이 많이도 달려 들지만 매화 향기에 취한 그 순간은 참으로 신비롭다. 그때 그때의 감정에 따라 원초적인 단계에서부터 신선들이 살고 있다는 무릉도원에 까지를 쉽게 상상하며 경험할 수 있다.

선암사의 선암매는 사찰의 성글지만 품격이 있어서 좋다. 휴일에는 현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양보하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깊게 느낄 수 있다. 선암사의 잘 가꾸어진 정원수들과 번잡하지 않은 탐매객들의 미소가 내 머리에 가득하다.

백양사 고불매는 그냥 스쳐지나서는 안 된다. 고불매는 꽃이 지고 나면 힘 없이 자리하고 있는 작은 고목으로 품위가 없게 보일 수가 있다. 만개한 고불매를 자세히 여러 각도에서 관찰하면 보면 볼수록 품격 있는 자태를 가슴에 담게 된다.

화엄사 화엄매는 그 빛깔의 붉기가 하도 진하여 흑매라고도 한다. 해마다 사진 촬영 대회가 열려서 전국에서 모여든 사진 작가들이 제각기 손씨를 발휘한다. 제주도의 한림공원에는 화엄매에서 분양된 매실나무가 곳곳에 심어져 퇴계선생과 두향이의 로맨스를 잘 전하며 함께 잘 자라며 전시되어 있다.

전남대에 있는 대명매는 그 품격이 비교할 것이 없다. 지난해에는 손자의 손을 잡고 전남대학교에 갔었다. 화창한 봄날씨와 젊은이들의 패기와도 잘 어울리는 당당함과 고고함의 절정이다.

내가 광주일고에 근무할 때는 매화에 대한 감각을 체험하기도 하였다. 일고 정문 앞에는 홍매화가 고상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매화에 관한 문학적 체험을 위해 아이들과 매화향을 경험하였다. 그냥 지나쳤던 아이들도 모두 좋아라 했다. 모두들 고상한 품격을 경험하게 되었으리라. 그 청년들은 지금도 그 향기를 기억하고 있을까?

아무리 세사에 바쁘더라도 올해의 탐매 계획은 꼭 실행하고 싶다. 나의 탐매의 향기에 취해 봄은 내가 살아있다는 힘찬 내공으로 간직 될 것 같다. 퇴계 선생과 두향이의 사랑 이야기는 내 가난한 상상력을 마음대로 끌어와 나의 영상으로 그려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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