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선원전 - 송기동 예향부장
2025년 02월 05일(수) 00:00 가가
“경복궁 전체면적 19만8624평(坪) 5합(合) 6작(勺)을 총독부에 인도하였다.”
조선왕조실록(순종실록 부록 2권) 1911년(순종 4년) 5월 17일 기사이다. 100여년 전으로 역사의 시계를 돌려보자.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를 겪은 이 땅의 민초들은 일본에 의해 궁궐 건물마저 뜯기거나 매각되는 모습을 지켜봤을 것이다.
대한제국을 강점한 일제는 경복궁 흔적 지우기에 나섰다. 1910년 5월과 1914년 7월에 경복궁과 창덕궁 건물 일부가 공매를 통해 일본인들에게 팔렸다. 조선총독부는 1915년 경복궁내 일부 건물을 헐고 박람회(조선물산공진회)를 개최했고, 이어 1926년 궁궐 자리에 신청사를 건립했다. 1915~1916년께 헐린 경복궁 건물가운데 어진(御眞·임금의 초상화)을 봉안하고 의례를 지내던 ‘선원전’(璿源殿)도 포함돼 있었다.
그동안 아득하게 잊혀졌던 궁궐 문화유산이 100여년 만에 최근 일본에서 돌아왔다. 경복궁내 ‘선원전’에 걸렸던 편액(扁額)이다. 국가유산청은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과 함께 ‘경복궁 선원전 편액’을 국내로 환수하고 최근 실물을 언론에 공개했다. 선원은 ‘옥(왕실)의 근원’을 뜻한다.
일본 아동문학가인 구루시마 다케히코(1874~1960) 기념관 김성연 관장(문학박사)은 구루시마가 구연동화 활동을 한 야마구치현을 찾았다가 우연하게 초대 조선총독인 테라우치 마사다케(1852~1919)의 ‘조선관’(朝鮮館)에 대해 알게 됐다. 그리고 이를 단서로 끈질기게 탐색해 가는 과정에서 ‘조선관’이 테라우치 고향에 이건(移建)된 경복궁의 선원전임을 알게됐고, 마침내 오래된 ‘고메쿠라’(米倉) 2층 대들보에 거꾸로 걸려있던 선원전 편액과 만나게 됐다. 김 관장은 지난해 10월 펴낸 ‘아니다 거기 있었다’(지식과 감성)에서 “(선원전은) 나라의 혼과 정기가 모여 있는 곳, 조선조 왕들의 역사와 그 얼이 서려있는 곳”이라고 묘사한다.
100여년 만에 돌아온 문화유산은 질곡의 한국 근대사를 오롯이 보여준다. ‘문화재’ 명칭을 ‘국가유산’으로 바꾼 만큼 환수 문화재를 더욱 소중하게 아껴야 할 일이다. /송기동 예향부장 song@kwangju.co.kr
조선왕조실록(순종실록 부록 2권) 1911년(순종 4년) 5월 17일 기사이다. 100여년 전으로 역사의 시계를 돌려보자. 1905년 ‘을사늑약’과 1910년 ‘경술국치’를 겪은 이 땅의 민초들은 일본에 의해 궁궐 건물마저 뜯기거나 매각되는 모습을 지켜봤을 것이다.
100여년 만에 돌아온 문화유산은 질곡의 한국 근대사를 오롯이 보여준다. ‘문화재’ 명칭을 ‘국가유산’으로 바꾼 만큼 환수 문화재를 더욱 소중하게 아껴야 할 일이다. /송기동 예향부장 song@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