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있냐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
2025년 01월 23일(목) 00:00 가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전라도 사투리가 등장하면 일단 방어적 자세가 된다. 과장된 단어 선택과 어투가 신경 쓰여 “음, 이건 진짜 우리가 쓰는 전라도 말이 아닌데”라는 마음이 들어서다. 개인적으로는 고인이 된 김지영 배우나 ‘은실이’와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동일 배우가 가장 실제와 근접한 전라도말을 쓴다고 생각한다. 두 사람 다 전라도 출신이 아니라는 사실에 놀랐던 기억이 있다.
2020년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를 경상도(포항) 방언으로 고쳐 쓴 ‘애린왕자’를 재미있게 읽었다. 독일의 출판사 틴텐파스가 진행 중인 ‘어린 왕자’ 전세계 언어 번역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획된 책이었다.
이듬해 출간된 전라도(전북 사투리) 버전의 제목은 ‘에린왕자’였다. 유명한 어린왕자와 여우의 대화는 이렇게 변신했다. “니가 오후 네 시에 온다 허믄 난 세 시부텀 기분이 좋아질 것이여. 시간이 가믄 갈수락 더 좋아질 거고잉. 네 시가 딱 되믄 인자 난 벌써 안달이 나 갖곤 걱젱을 헐 것이여.”
지난해 출간된 강원도 판 ‘언나 왕자’의 한대목은 “내 비밀은 이기야. 머이 간단해. 마음으루 바야 진짜가 베케. 진짜 중한 그는 절대루 내 두 눈으루는 볼 수 ㅇㅡㅄ아.”다.
최근 출간된 화순 출신 손정승 작가의 ‘전라의 말들:이것을 읽어블믄 우리는 거시기여’(유유)는 흥미로운 책이다. 전라도 사투리가 담긴 100개의 문장과 이야기를 엮은 책의 제목은 가수 송가인이 ‘아는 형님’에서 했던 말을 응용했다. 사투리 책은 ‘만다꼬 그래 쌔빠지게 해쌌노’(경상의 말들), ‘여기두 사투리 있걸랑’(서울의 말들), ‘그ㄹㅡㅎ게 바쁘문 어제 오지 그랬슈’(충청의 말들)까지 시리즈로 나왔다.
‘전라의 말들’의 첫번째 문장 ‘야, 있냐’부터 사람을 끌어 당긴다. 전라도 사람이면 누구나 저 말이 전하는 뉘앙스를 알기에 미소가 지어진다. ‘야, 있냐’는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1824 쓰기 클럽의 이름이기도 하다.
며칠 후면 설 명절이다.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 친지, 친구들이 고향을 찾는 날이다. 오랜만의 만남이 주는 어색함은 이 말 한마디에 사라지고, 신나는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긍께 야, 있냐~”
/mekim@kwangju.co.kr
이듬해 출간된 전라도(전북 사투리) 버전의 제목은 ‘에린왕자’였다. 유명한 어린왕자와 여우의 대화는 이렇게 변신했다. “니가 오후 네 시에 온다 허믄 난 세 시부텀 기분이 좋아질 것이여. 시간이 가믄 갈수락 더 좋아질 거고잉. 네 시가 딱 되믄 인자 난 벌써 안달이 나 갖곤 걱젱을 헐 것이여.”
‘전라의 말들’의 첫번째 문장 ‘야, 있냐’부터 사람을 끌어 당긴다. 전라도 사람이면 누구나 저 말이 전하는 뉘앙스를 알기에 미소가 지어진다. ‘야, 있냐’는 광주청소년삶디자인센터 1824 쓰기 클럽의 이름이기도 하다.
며칠 후면 설 명절이다.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 친지, 친구들이 고향을 찾는 날이다. 오랜만의 만남이 주는 어색함은 이 말 한마디에 사라지고, 신나는 이야기가 시작될 것이다. “긍께 야,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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