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 조력자 - 김지을 정치부 부장
2025년 01월 14일(화) 00:00
퓰리처상 수상자인 스티븐 그린블랫은 ‘폭군’이라는 책을 통해 셰익스피어 작품 속 독재자의 뒤틀린 욕망의 뿌리를 살핀다. 셰익스피어 연구자이기도 한 그는 책에서 ‘독재자를 도와주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리처드 3세’ 작품 등장인물을 6가지 그룹으로 나눠 소개하고 있다. 리처드 3세는 영국 왕 가운데 가장 사악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 인물이다. 재위 기간은 2년에 불과했지만 조카를 폐위시키고 왕위에 오른 탓에 ‘계유정난’으로 정권을 잡은 조선 수양대군(세조)에 비교되곤 한다.

이른바 ‘독재 조력자’ 중 첫 번째 그룹은 독재자에게 진짜로 속은 이들로, 그의 주장을 정당하다고 생각했고 그의 약속을 믿었고 그의 감정 표현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 사람들. 두 번째는 괴롭힘과 폭력의 위협 앞에서 겁을 먹었거나 무기력해진 사람들을 꼽았다. 세 번째 그룹에는 독재자가 사악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포함됐다.

네 번째 그룹은 독재자가 형편없는 인물이라는 것을 잊지 않았지만 그래도 모든 일이 정상적인 방식으로 굴러갈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 다섯 번째 그룹은 다소 음흉한 그룹으로, 독재자의 집권으로 그들 자신이 이익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꼽혔다. 여섯 번째 그룹은 독재자의 명령을 수행하는 사람들. 마지못해 명령을 따르거나 적극적으로 명령을 이행하면서 그 과정에서 뭔가 챙길 수 있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이 부류다. 국내 현실은 어떤가.

비상계엄을 획책한 국무회의에서 적극적으로 반대하지 않거나 12·3 사태 이전 윤석열의 비정상적 사고와 행동양식을 직·간접적 경험을 통해서 알고 있었는데도 침묵했던 국무위원들,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 추천을 미룬 전 총리, 국회 추천을 거친 3명의 헌법재판관 중 자의적으로 2명만 임명하는가 하면 내란특검을 거부하고 체포영장 집행을 막는 경호처를 방치한 대통령 권한대행, 법원이 발부한 체포영장 집행을 막겠다며 대통령 관저 앞에 모여 ‘불법행위·원천무효’를 외친 45명의 국민의힘 국회의원 등. 독재 협력자들이 셰익스피어 작품 속에만 존재할까.

/ok2000@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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