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도 국가대표서 경찰로…“민주도시 광주서 민주경찰 역할 다할 것”
2024년 12월 09일(월) 19:10 가가
광주북부경찰 이우주 형사
세계유소년선수권 금메달리스트…‘봐주기’ 관행에 운동 관둬
서울 떠나 특채로 광주 온 지 6년 “진심을 다해 시민 대하겠다”
세계유소년선수권 금메달리스트…‘봐주기’ 관행에 운동 관둬
서울 떠나 특채로 광주 온 지 6년 “진심을 다해 시민 대하겠다”
“나라를 빛내는 국가대표 선수에서 나라를 지키는 경찰로 거듭나겠습니다.”
세계유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에서 광주를 지키는 경찰로 거듭난 광주북부경찰 소속 이우주(여·33·사진)형사의 각오다.
광주북부경찰 형사과 유일한 여자 형사인 이 형사는 과거 세계유소년유도선수권대회와 코리아오픈 국제유도대회 등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던 유도 국가대표 출신이다.
이 형사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모두 유도 선수로, 가족의 영향을 받아 10살이 되던 해 자연스럽게 유도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됐다. 이 형사는 중학생 때 출전한 유도 대회에서 스카웃 제의를 받게 됐고 유도 특기 광영고에 진학하면서 본격적인 유도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대학에 진학할 때까지 출전한 유도 대회에서 1등을 한번도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이 형사의 말이다.
노력과 재능이 더해져 세계 대회에서 우승을 하는 등 늘 좋은 성적을 냈던 유도선수 생활은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앞두고 브레이크가 걸렸다. 체육계에 만연한 ‘봐주기’ 관행 때문이었다. 이 형사는 선발전을 준비하며 일부러 져줘야 하는 불합리한 상황을 직면했다. 선발전의 충격은 회의감으로 다가왔다. 마음이 뜨자 그 해 어깨 탈골만 6차례 이어지는 등 부상도 잦았다.
그러던 중 앞서 유도선수로 활동하다가 무도특채로 경찰이 된 형부의 “너도 한번 무도 특채 경찰에 도전해보라”는 조언에 귀를 기울이게 됐다.
이 형사는 경기 실적검정, 유도 실기를 어렵지 않게 통과했고 체력검정까지 만점으로 통과, 중앙경찰학교 졸업을 마친 뒤 2018년 12월 31일 경찰관으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서울이 고향인 이 경장이 광주에서 경찰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민주경찰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형사는 “당시 무도특채전형 지역으로 인천과 대구, 광주 3곳이 후보지에 있었는데 민주화의 근원지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싶어 광주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용봉지구대에서 시작해 생활권역수사팀, 형사에 오기까지 대부업자, 흉악범 등 범인 체포 경험은 많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건 4년 전 접수된 도난 신고 민원인이다.
“물건을 잃어버렸다며 민원을 여러 번 넣은 사람 때문에 꽤 힘들었죠. 현장에도 나가보고 목격자도 살폈지만 결국 물건을 찾아주지 못했어요. 나중에 민원인이 찾아와 “소중한 친구가 죽기 전 마지막에 줬던 선물이었다. 너무 소중해서 그랬다”고 말하더라고요. 민원인이 잃어버린 것과 최대한 비슷한 물건을 구매해 전해줬어요. 나중에 그 분이 경찰서 ‘칭찬합니다’ 게시판에 감사하다는 글을 올렸더군요.”
이 형사는 “강한 민원으로 힘들었지만 작은 친절로 민원인의 태도가 180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에 늘 진심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직업 특성상 다사다난하고, 부상을 입을 때도 있지만 경찰관이라는 직업은 매력적이라고 이 형사는 강조한다.
이 형사는 “유도를 시작한 것도, 유도를 그만둔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매 순간 최선을 다 했기 때문”이라며 “나라를 빛내는 국가대표에서 이제는 나라를 지키는 경찰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웃어보였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세계유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에서 광주를 지키는 경찰로 거듭난 광주북부경찰 소속 이우주(여·33·사진)형사의 각오다.
광주북부경찰 형사과 유일한 여자 형사인 이 형사는 과거 세계유소년유도선수권대회와 코리아오픈 국제유도대회 등에서 금메달을 휩쓸었던 유도 국가대표 출신이다.
이 형사는 경기 실적검정, 유도 실기를 어렵지 않게 통과했고 체력검정까지 만점으로 통과, 중앙경찰학교 졸업을 마친 뒤 2018년 12월 31일 경찰관으로서 새 삶을 시작했다. 서울이 고향인 이 경장이 광주에서 경찰 생활을 하게 된 것은 민주경찰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형사는 “당시 무도특채전형 지역으로 인천과 대구, 광주 3곳이 후보지에 있었는데 민주화의 근원지에서 일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싶어 광주를 선택했다”고 설명했다.
용봉지구대에서 시작해 생활권역수사팀, 형사에 오기까지 대부업자, 흉악범 등 범인 체포 경험은 많지만 유독 기억에 남는 건 4년 전 접수된 도난 신고 민원인이다.
“물건을 잃어버렸다며 민원을 여러 번 넣은 사람 때문에 꽤 힘들었죠. 현장에도 나가보고 목격자도 살폈지만 결국 물건을 찾아주지 못했어요. 나중에 민원인이 찾아와 “소중한 친구가 죽기 전 마지막에 줬던 선물이었다. 너무 소중해서 그랬다”고 말하더라고요. 민원인이 잃어버린 것과 최대한 비슷한 물건을 구매해 전해줬어요. 나중에 그 분이 경찰서 ‘칭찬합니다’ 게시판에 감사하다는 글을 올렸더군요.”
이 형사는 “강한 민원으로 힘들었지만 작은 친절로 민원인의 태도가 180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배웠기에 늘 진심을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직업 특성상 다사다난하고, 부상을 입을 때도 있지만 경찰관이라는 직업은 매력적이라고 이 형사는 강조한다.
이 형사는 “유도를 시작한 것도, 유도를 그만둔 것도 후회하지 않는다. 매 순간 최선을 다 했기 때문”이라며 “나라를 빛내는 국가대표에서 이제는 나라를 지키는 경찰관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웃어보였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