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컬러 - 이보람 예향부 차장
2024년 11월 05일(화) 22:00 가가
가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 하나가 황금빛 갈대 군락과 은빛 물결의 억새 군락지다. 이맘때가 되면 갈대와 억새를 배경으로 사진 촬영을 하기 위해 나들이를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 갈대와 억새는 볏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가을이면 가느다란 줄기에 보풀처럼 꽃이 피는데 갈대는 밝은 갈색, 억새는 흰색이나 은색이 된다. 꽃이 피는 시기나 생김새가 비슷해 구별이 힘들다는 사람이 많지만 갈대는 습지에서 자라고 억새는 산과 들처럼 건조한 곳에서 자란다는 점만 기억하면 어렵지 않게 구별이 가능하다. 가을이 깊어갈수록 색깔은 더욱 다양해진다. 남도의 유명 산마다 단풍이 붉게 물들고 은행나무 가로수길은 노란 물감을 풀어놓은 듯 노랗게 물들어 있다.
몇 년 전부터 가을의 이미지에 새로운 컬러가 등장했다. 근래 SNS에 올라오는 사진과 동영상이 온통 핑크 물결이다.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핑크뮬리와 함께한 인증샷이 대세로 떠오르고 있다. 가을을 대변하던 컬러가 브라운, 베이지에서 핑크로 바뀌는 건 아닌가 위기감(?)까지 느껴진다.
핑크뮬리(Muhlenbergia capillaris)는 털쥐꼬리새, 분홍쥐꼬리새라고도 불리는 여러해살이풀이다. 미국이 원산인 외래종으로 겉모습이 분홍빛을 띈다고 해서 ‘핑크뮬리’라는 이름을 가졌다. 생김새는 갈대나 억새와 얼추 비슷해 ‘분홍 갈대’, ‘분홍 억새’라고 부르는 이들도 있다. 관광지마다 핑크뮬리를 심는 곳이 많아지면서 한때 생태계를 교란시킨다는 위기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국내 자생식물들의 정착과 성장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논란은 잠잠해졌다.
핑크뮬리 인기가 높아질수록 토종이 밀린다는 왠지 모를 씁쓸함이 느껴진다. 글로벌·국제화를 외치는 시대에 토종만을 고집하는 건 아니지만 오래도록 뇌리에 박혀 온 가을 컬러를 지키고 싶은 기분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더 늦기 전에 가을을 두 눈 가득 담아오고 싶은 마음도 간절해진다. 순천만습지, 강진만생태공원, 장흥 천관산, 광주 서창까지… 광주와 전남 곳곳에 갈대와 억새를 만끽할 수 있는 명소가 많다. 이번 주말, 가을 컬러를 만나러 떠나보는 건 어떨까.
/ bora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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