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의 왜곡! 그게 거짓이다 - 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2024년 11월 01일(금) 00:00 가가
분명하게 있었던 일, 모두가 배웠고 그렇게 알고 있었던 과거의 어느 사건과 일을 두고 ‘사실’이라고 표현한다. ‘사실’(事實)은 실제로 존재하는 무언가, 또는 확정된 평가의 표준에 관련하여 유효한 무언가를 가리킨다. 또한 사실은 ‘실제로 있었던 일’ 자체를 말하면서 ‘진실! 거짓이 없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런데 있었던 일이나 존재에 대해 ‘사실’이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 사실이 ‘거짓’이나 없던 것으로 치부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사실’이 시간과 상황에 따라 변화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왜냐하면 어느 시대에는 ‘사실’이라는 말은 그 자체로 사실이 아니라 어떤 거짓된 선동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괴담으로 치부되거나 감성팔이로 이용되기 때문이다. 어느 집단에게는 ‘사실’이 자신들의 잘못을 들추어내는 비수처럼 여겨지기에 없던 거짓으로 변질시킨다. 어느 시대, 어느 집단 그리고 어떤 이념 체계 신봉자들은 ‘사실’을 자신 기득권 유지와 이익의 수단으로 ‘거짓’처럼 이용할 뿐이다. 왜곡되었지만 ‘사실의 왜곡’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기득권 획득 유지 그리고 전적인 이익 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사실’을 ‘거짓’으로 극단적으로 포장할 뿐이다. 여기에서 ‘사실’은 진실의 여부와는 전혀 다른 의미로 도리어 공격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최근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에 매우 영광이며 감사하고 기쁜 일이다. 다시금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를 찾아 들었지만, 처음처럼 읽히지 않는다. 한강 작가의 시선과 공감 그리고 무엇이 그토록 쓰라리고 아픈지 알고 싶어 한 자 한 자 천천히 읽어보았다. 소설이긴 하지만, 분명히 벌어졌던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고통과 슬픔이 작가의 공감과 시선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진다. 어둠이 빛을 이기지 못하는 것처럼! 1980년 5월, 사람들이 죽거나 다치거나 슬프거나 배고파하면서도 서로를 함께 책임지고 돌보고 보듬어 주었다. 이것이 ‘사실’이다.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고 변질되어서도 안되는 진짜의 사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누군가는 빨갱이 공산 좌파 등의 레드 콤플렉스적 단어를 사용하며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아직도 지켜야 할 기득권이 있고 아직도 빼앗기기 싫은 이익이 그렇게 많은가 하는 생각도 든다. 못 배워서일까 아니면 ‘사실’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것일까? 아니면 두려운 것이 많은 것인가?
예수의 일대기와 그분을 따랐던 제자들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복음서를 묵상하다 보면, 가끔 사실(진실)과 거짓의 싸움이라고 요약하고 싶다. 사실은 하느님의 존재이고, 하느님 아버지는 차별 없이 모두를 사랑하시고, 특히 도움이 절실하고 위로와 보호가 필요한 이들을 더 많이 사랑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이 사랑을 거부하고 차별을 부추기고, 부자와 가난을 분리하여 어느 특정 집단의 이익과 기득권 유지를 위한 폭력은 거짓으로 보인다. 여기서 이야기하는 ‘사실과 거짓’은 진실한 삶과 거짓된 삶으로 바꿔 생각할 수도 있다. 사실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자들의 속내는 이기심과 탐욕이 가득차 있을 것이다. 이타심이 없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겠으며, 배려와 나눔의 삶을 살지 않는데 어떻게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예수는 ‘사실’이었고, 예수를 죽이려는 자들은 실존했지만, 그들은 ‘거짓’을 살았던 이들이었다. 예수는 ‘사랑’ 그 자체였고 그 사랑을 죽이려는 자들은 탐욕과 이기심에 눈먼 자들이었다.
예수는 루카 복음 12장 51절에서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느님의 현존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은 어둠이 절대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악이 선을 이겨본 적이 없듯이 ‘거짓’이 아무리 설쳐대도 ‘사실’의 벽을 넘어설 수 없다. 이 ‘사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살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을 거부하는 자는 ‘우리는 항상 어른이었고 아기였던 적이 없었다’고 말하며 존재와 생의 과정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닐까!
예수는 루카 복음 12장 51절에서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느님의 현존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은 어둠이 절대 빛을 이겨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악이 선을 이겨본 적이 없듯이 ‘거짓’이 아무리 설쳐대도 ‘사실’의 벽을 넘어설 수 없다. 이 ‘사실’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 살 수 있는 것이다. 사실을 거부하는 자는 ‘우리는 항상 어른이었고 아기였던 적이 없었다’고 말하며 존재와 생의 과정을 부정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