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웠던 우리의 야구…호남에 위로를 던지다
2024년 10월 28일(월) 11:35
새로운 문화로 자리잡은 프로야구
선수·지역민 하나된 장엄한 서사시
전국서 몰려든 팬들 광주 맛집 돌고
중소상인들도 모처럼 함박웃음
삐끼삐끼 춤 세계로 퍼져가고
노벨문학상과 함께 자긍심 심어줘

28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한국시리즈 5차전. KIA 팬들이 응원전을 펼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KIA 타이거즈는 광주의 장엄한 서사이며, 호남인의 애끓는 서정이었다. 타이거즈는 ‘비 내리는 호남선’에서 ‘삐끼삐끼’로 이어진 음률이며, 5·18민주화운동으로 대표되는 대동세상의 은유로 꼽힌다. 그래서인지 목놓아 승리를 외친 이들은 역사의 증인이며, 울분과 환호를 기억하는 ‘타이거즈 팬’이다.

28일 KIA의 12번째 승리는 야구에 웃고 울었던 ‘호남인의 자랑’으로 또 한번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초기 ‘검빨 유니폼’을 가입 선물로 받았던 해태 타이거즈 원년 어린이회원이 중년을 훌쩍 넘겨 KIA챔피언스필드에서 또 한 번 우승을 만끽하게 됐다는 점에서 그 의미도 크다.

무등경기장의 추억을 간직한 부모 세대의 손을 잡고 야구장을 찾았던 젊은 세대들도 이제는 도화지에 감각적인 응원 문구를 적거나 휴대전화에 선수 이름을 띄우며 타이거즈의 승리를 목놓아 외쳤다.

암울한 정치 상황 탓에 출범 초기 극심한 지역감정에 휘말렸던 무등경기장에서는 ‘(이)만수 바보~’라는 함성이 울려퍼졌지만 40여년이 흐른 올해 한국시리즈에서는 삼성라이온즈를 응원하는 대구팬도 챔피언스필드 스탠드에서 마음껏 응원전을 펼쳤다.

시즌 초반부터 1위를 달렸던 타이거즈를 응원하기 위해 퇴근 후 야구장을 찾은 직장인들은 “(김)도영아 니 땀시 살아야”라며 ‘두 번째 바람의 아들’의 플레이를 만끽했다.

젊은 여성들은 빼어난 패션 감각을 선보이며 ‘타이거즈 여신’에 등극했고, 전국에서 몰려든 청년팬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광주 곳곳의 맛집을 도는 ‘프로야구 뒷풀이 문화’를 만들어냈다.

덩달아 중소 상인들도 함박 웃음을 지었다. 챔피언스필드 인근의 상가와 숙박시설이 몰려있는 상무지구 등지에서 전국 각 팀의 유니폼을 입은 원정팀 팬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게 올해 광주의 프로야구 문화였다. 정규시즌 시작부터 한국시리즈까지 인기는 하늘을 찔렀고, 당국이 대대적인 암표 단속에 나서는 등 전국적인 인기 몰이를 한 점도 프로야구 역사에 또 하나의 기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광주’라는 이름도 덩달아 힘을 얻기에 충분했다. 광주 출신 소설가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과 함께 타이거즈의 잇단 승리는 시민의 가슴에 자긍심을 심어줬다.

과거 5회말이 끝난 뒤 어김없이 등장해 흥을 돋우던 ‘해태아줌마’는 사라졌지만 타이거즈 치어리더들은 원정팀이 삼진 아웃을 당하면 ‘삐끼삐끼’ 춤을 췄고, 관련 영상은 전세계로 퍼져나가면서 한국 프로야구 문화와 KIA를 전 세계에 홍보하는 ‘일등 공신’이 됐다.

선수들의 활약도 돋보였다. 고참들은 몸을 아끼지 않고 솔선수범했으며, 신인들은 당찬 플레이를 펼쳤다. 혼신의 투혼을 보여준 선수들의 플레이는 지역민에게 스포츠 그 이상의 ‘위로’를 안겨줬다.

폭염과 의료대란, 경기침체에 허덕이던 지역민의 얼굴에도 꽃이 피었고, ‘선수 사랑’도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한국시리즈에서 맹활약한 김선빈의 단골인 화순군 능주면 한 식당 사장은 타이거즈 선수들에게 아낌없이 추어탕을 내주었고, 감독과 코치가 방문하면 생고기를 추가로 썰어주는 식당들도 많았다.

2024년을 가슴 뜨겁게 만들었던 타이거즈의 승리는 이제 모두의 승리로 기록하자. 지역민은 물론 KIA타이거즈 팬들이 올해 프로야구가 안겨준 행복한 기억을 가슴에 품고 삶의 현장에서 또 한 번의 승리를 기원하며 포효해보길 기대해본다.

/오광록 기자 kroh@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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