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 보내고 이탈리안 식당에 정차했습니다, 셰프로”
2024년 10월 27일(일) 21:30
[인생 2막 주인공 꿈꾸는 신중년] <14> 목포 ‘피렌체 역’ 대표 박석민
40년 몸 담은 ‘철도’ 퇴직 2년 앞두고 요리 배우러 이탈리아행
요리학교 입학 ‘열공’ 1년만에 ‘옴브리아주 셰프’ 자격증 취득
목포역 인근에 식당 차려…“손님들에게 좋은 기억 선물하고파”

식당 전경

“항상 갈망했던 것이 직업이 됐습니다. 인생 2막도 갈망에 대한 결과였습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 요리사가 된 박석민(60) 전 목포역장의 이야기다.

박씨는 어렸을 적 새로운 곳으로 데려다주는 기차의 매력에 푹 빠져 목포역장이 됐다. 그러던 그가 퇴직 2년을 앞두고 이탈리아로 떠났다가 요리사가 돼 목포역을 다시 찾았다.

무안이 고향인 그는 어릴 적 서울에 있는 형을 만나기 위해 기차를 타고 오갔던 기억으로 기차에 대한 동경을 갖기 시작했다고 한다.

크고 높은 건물, 모든 것이 반짝반짝 빛나는 ‘별천지’ 서울에 데려다주는 기차는 박씨에게 낭만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철도’는 40여 년간 그의 인생 1막이었다. 19세에 시작해 58세 코레일에서 명예퇴직을 결정하기까지 정동진역장, 광주역장, 나주 역장을 이어 목포 역장까지 거쳤다.

‘피렌체 역’ 박석민 대표.
그는 정동진역 해맞이 관광열차, 남도해양관광열차 등 기차 관광을 활성화시킨 인물이기도 하다.

탄탄대로를 걷던 그가 2년 전 이른 퇴직을 결정했던 것은 다름 아닌 ‘요리’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그는 “아무리 힘이 들어도 맛있는 요리를 먹으면 힘이 솟았다”면서 “기차를 타고 전국 곳곳을 다니며 경험한 맛집은 삶의 활력이었다”고 웃어 보였다. 이런 탓에 그는 방송국 ‘역장 추천 맛집’ 프로그램에 1년간 출연하기도 했다.

퇴직 5년 전 틈틈이 공부를 하면서 사전에 한식 조리사와 양식조리사 자격증도 따놓았다. 하얀 조리모를 쓰고 요리사가 돼 식당을 차리는 것이 퇴직 이후의 목표였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유학 당시.
그는 심도 있는 공부를 위해 곧바로 이탈리아 로마행 비행기에 올랐다. 본격적인 인생 2막을 위한 ‘빌드업’이었다.

그는 “이탈리아 요리는 세계 어느 곳에서도 가능성을 보인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파스타, 피자 등 이탈리아 요리는 모두가 알고, 모두가 즐겨 찾는 음식이라는 점에서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앞서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밀라노, 피렌체에 일주일간 사전답사도 다녀오며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는 이탈리아의 수도이자, 물가도 저렴하고 다양함을 느낄 수 있는 로마를 최종 목적지로 선택했다.

연고 하나 없이 3개월 여행 비자만 들고 무작정 로마의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설거지든 화장실 청소든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이곳에서 먹고 자고 배울 수만 있게 해주세요”고 말하며 로마 레스토랑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가 가진 여행 비자로 취업은 불가능했다.

그는 “에이전트를 통해 수수료를 내고 외국에서 배우는 방법도 있었지만, 그 당시에는 요리에 대한 열정 하나로 시작했기에 아무것도 몰랐다”고 회상했다.

결국 그는 자문을 구하기 위해 한인 교회를 찾았다. 이곳에서 1년간 요리학교를 다니며 배우라는 조언을 얻었고 그렇게 무작정 2000년 된 로마의 한 마을을 찾아 거처를 잡고 언어부터 학습했다.

처음 입학을 하려 하자 요리학교 관계자는 “당신같이 나이 많은 사람은 이곳에 온 적이 없다”고 당황했으나 한국에서 딴 음식 자격증을 보여주며 배움을 갈구하는 그의 완강한 의지는 꺾지 못했다.

결국 입학 절차를 밟고 한국으로 돌아와 유학 비자까지 받아낸 그는 로마에서 본격적인 요리 공부를 시작했다.

어학과 요리 공부를 병행하는 일은 벅차기도 했다. 양해를 구하고 수업 영상을 찍었으며 6시간의 수업이 끝나면 집에서 찍어온 영상을 틀고 6시간 동안 복습했다. 영상을 보며 교수의 말을 해석하고, ‘왜 이 요리에 이 소스를 사용했을까’ 등을 분석했다. 그 당시 함께 수업을 들었던 동기들보다 3배는 더 열심히 했다고 그는 자부한다.

파스타부터 피자, 디저트까지 섭렵한 그는 결국 1년 뒤 이탈리아 정부에서 인정한 ‘이탈리아 옴브리아주 쉐프’ 자격증을 손에 쥐었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마지막 직장이었던 목포역을 찾았다. 그는 목포역에서 걸어서 3분 거리에 있는 한 건물 1층에 ‘피렌체 역’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아내와 함께 본격적인 인생 2막을 시작했다.

피렌체역 식당 내부.
그는 “목포역을 찾는 이들이 식당에 방문해 좋은 기억을 갖고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설명했다.

최근에는 하남에서 여행 온 70대 부부에게 요리를 통해 기분 좋은 경험을 선물했을 때 인생 2막에 대한 긍지를 느꼈다고 한다.

그는 “버스를 놓쳐 속상함을 토로하던 노부부가 (내가 만든) 맛있는 음식을 먹어서 여행에 대한 좋은 기억을 안고 돌아갈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면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목포에 대한 좋은 기억을 갖고 돌아간다는 손님들을 보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을 느낀다”고 강조했다.

그의 식당 곳곳에는 이탈리아에서 모은 미술품과 베네치아와 피렌체 등 이탈리아 도시의 벽화도 그려져 있다. 올해 초 문을 열었지만 친절하고 맛있다는 입소문이 돌자 손님은 빠르게 늘어났다. 지역민부터 여행객까지 식당을 찾는 이들은 다양하다.

그는 “정년을 앞두고 인생 2막에 대한 고민이 많았지만 좋아하고 갈망했던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어 매일이 행복하고 감사하다”며 “식당을 찾은 모든 이들이 목포 여행의 기억을 기분 좋게 가져갈 수 있도록 힘이 닿을 때까지 ‘목포역 요리사’로서 머물겠다”고 말했다.

/김다인 기자 kd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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