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온다’로 다시 기억하는 ‘5월 소년들’
2024년 10월 24일(목) 19:35
도청 지키려다, 헌혈하다, 폭압에 맞서다가 계엄군 총칼에 산화
박기현·박금희·전재수·안종필 등 스러져간 소년 열사들 관심
최근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소설 ‘소년이 온다’가 주목받으면서 5·18 산화한 청소년 열사들의 이야기에도 관심이 모이고 있다.

소설 ‘소년이 온다’의 주인공 동호는 실존했던 5·18 학생 시민군 문재학 열사를 모티브로 설정된 인물이다. 문 열사는 1980년 5·18 당시 고등학교 1학년생으로, 매일 도청에 나가 시민군 시신 수습 등을 도왔으며, 27일 새벽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산화했다.

5·18 당시에는 문 열사뿐 아니라 수많은 학생 시민군들이 함께 투쟁에 나서 민주화를 요구하고, 계엄군의 총칼에 스러졌다.

◇안종필 열사=안종필 열사는 광주상고(현 광주동성고) 1학년생으로 문재학 열사와 함께 계엄군에 맞서 도청을 지키다 계엄군의 총탄에 맞아 숨졌다.

안 열사는 5월 19일 금남로에 있었던 누나로부터 계엄군의 만행과 참상을 전해듣고 이튿날부터 시위 대열에 합류했다.

가족들의 만류에도 안 열사는 “끔찍하고 비참하게 죽어간 선배들의 피라도 닦아 드려야 한다”며 몰래 집을 나와 상무관에서 시민들의 시신 수습을 도왔다. 안 열사는 5월 27일 새벽까지 전남도청을 지키다 도경찰국 2층 복도에서 총탄을 맞아 숨을 거뒀다.

◇양창근 열사=양창근 열사는 5·18 당시 숭의실업고(현 숭의과학기술고) 1학년생으로, 5월 19일 휴교 조치로 학교를 일찍 파하자 가방만 집에 던져놓고 나와 시위대에 합류한 것을 시작으로 연일 시위대와 함께 민주화 목소리를 냈다.

양 열사는 계엄군이 또래 친구와 형들에게 곤봉을 휘두르고 폭행하는 것을 직접 목격하고 만행에 분노해 시위대에 합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 열사는 5월 22일에도 시위대와 함께 시외버스공영터미널 앞에서 저항하다 머리에 계엄군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소년이 온다’ 주인공 문재학 열사는 초등학교 동창인 양 열사의 사망 소식을 듣고 “친구의 시신이라도 지켜주겠다”며 투쟁 의지를 불태우기도 했다.

계엄군이 1980년 5월 27일 옛 전남도청을 사수하다 총격을 받아 숨진 소년 시민군 문재학 열사와 안종필 열사의 시신을 들것으로 실어 나르고 있다. 당시 월스트리트 기자였던 노먼 소프 외신 기자가 촬영한 사진으로 지난 2021년 최초 공개됐다. <5·18기념재단 제공>
◇박기현 열사=박기현 열사는 동신중학교 3학년생으로, 책을 사러 잠시 집을 나온 사이 계엄군의 무자비한 폭행에 목숨을 잃었다.

박 열사는 당시 광주시 동구 산수동에서 거주 중이었으며, 5월 15일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 5월 18일 광주에 왔다.

박 열사는 중학교 3년 내내 우등생이 받는 ‘금뱃지’를 줄곧 가슴에 달고 다녔던 우등생으로, 5월 20일에도 “책을 사가지고 오겠다”며 자전거를 타고 집을 나섰다.

이 때 이유도 없이 계엄군에 붙잡힌 박 열사는 “나는 중학생이다”고 항변했으나, 계엄군은 박 열사의 머리를 곤봉으로 내리치고 고꾸라뜨려 어디론가 끌고 갔다. 박 열사는 결국 5월 22일 전남대병원 영안실에서 발견됐다.

◇박금희 열사=박금희 열사는 춘태여상(현 전남여상) 3학년생으로 부상자들을 위해 헌혈을 하다 계엄군 흉탄에 숨졌다.

4남 4녀 중 막내였던 박 열사는 5월 21일 서구 농성동의 집에서 집안 청소부터 교복 빨래까지 말끔히 한 뒤 친구 문순애씨를 만나러 방림동으로 갔다.

이 때 박 열사는 지나가던 헌혈차가 ‘학생들이 피가 부족해서 죽어가고 있다’는 방송을 하는 것을 들었다. 박 열사는 이틀 전 이미 헌혈을 했음에도 기독병원을 가 다시 헌혈을 했다.

친구 문씨가 헌혈할 차례가 되자 혈액을 보관할 병이 가득 찼고, 박 열사는 다시 헌혈차에 타 지원동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지원동에 도착하자 계엄군은 헌혈차를 향해 무차별 총격을 가했고 박 열사는 버스 안에서 하복부에 총을 맞아 숨졌다.

◇전영진 열사=전영진 열사는 대동고 3학년생으로 5월 14~16일 전남도청 앞에서 집회와 가두행진 등에 연일 참여하며 민주화 요구 목소리를 냈다.

5월 19일 고3 수험생으로서 등교를 했던 전 열사는 하교 도중 시내버스에서 계엄군에게 이유 없는 폭행을 당했다. 이후에도 두 동생과 함께 이튿날에도 집회에 나갔다.

5월 21일 전 열사의 부모는 전 열사가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타일렀지만, 전 열사는 “어머니, 조국이 우리를 부릅니다”라며 집을 뛰쳐나갔다.

이날 전남도청 일대에서 시위 대열에 합류한 전 열사는 계엄군의 시민을 향한 집단 발포로 인해 머리에 총상을 입고 목숨을 잃었다.

◇박현숙 열사=박현숙 열사는 신의여자실업고(현 송원여상) 3학년생으로, 희생당한 광주 시민들을 위해 관을 구하러 화순을 가다 ‘주남마을 미니버스 학살 사건’에 휘말려 산화했다.

박 열사는 5월 22일 계엄군이 광주 시내에서 철수하자, 시민군을 도와 시위 등으로 어질러진 도로를 청소하는 역할을 맡았다.

5월 23일 시민군 미니버스에 올랐던 박 열사는 버스 내 무전기를 통해 ‘관이 부족하다. 화순에서 관을 구해달라’는 목소리를 들었고, 관을 구하기 위해 화순으로 향했다.

미니버스가 광주-화순 간 국도에서 주남마을 앞을 지날 때 매복해 있던 계엄군이 미니버스에 무차별 사격을 가했고, 박 열사는 다발성 총상을 입고 숨졌다. 박 열사의 시신에는 계엄군이 ‘확인 사살’을 한 흔적인 자상까지 발견됐다.

◇전재수 열사=전재수 열사는 효덕초 4학년생으로 남구 송암동 진재마을에서 동네 아이들과 함께 놀다 계엄군의 총격에 목숨을 잃었다.

당시 계엄군 11공수여단은 남구 월남동 주남마을에서 시민군의 미니버스에 무차별 사격을 가한 뒤 송암동으로 철수하고 있었다. 계엄군은 이동하던 차 위에서 눈에 띄는 사람이나 집을 향해 총을 난사했다.

이 때 마을 야산에서 놀고 있던 전 열사는 갑작스런 총성에 놀라 산 뒤쪽으로 도망치다, 선물로 받았던 고무신이 벗겨지고 말았다.

고무신을 주우러 산을 내려갔던 전 열사는 계엄군의 총탄을 맞아 세상을 떠났다. 당시 나이는 불과 12살이었다.

◇김명숙 열사=김명숙 열사는 서광여중 3학년생으로 계엄군 총탄에 쓰러진 마지막 희생자다.

김 열사는 북구 용봉동의 전남대 정문 용봉천 인근의 주택 근처에서 거주하며 어머니의 뜻에 따라 계엄군을 피해 집 안으로 도망치는 학생들을 숨겨주기도 했다.

5월 27일 저녁 김 열사는 친구에게 책을 빌리러 집을 나왔다가 계엄군의 총성을 듣고 깜짝 놀라 용봉천 쪽으로 뛰어들어갔다. 총소리가 멈추자 김 열사는 다시 하천에서 도로로 올라왔지만, 계엄군은 기다렸다는 듯 김 열사의 왼쪽 허벅지에 실탄을 발사했다.

계엄군은 김 열사의 집 안까지 군홧발로 쳐들어와 김 열사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김 열사를 지프차에 태워 통합병원으로 보냈으나 차 안에서 눈을 감았다.

◇박성용 열사=박성용 열사는 조대부고 3학년생으로 아버지를 따라 경찰대로 진학할 것을 꿈꾸던 청년이었다.

박 열사는 민중의 지팡이가 돼야 할 경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해 학동파출소가 불타는 것과 계엄군이 시민들을 폭행하고 학살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분노했다.

박 열사는 부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같은 국민, 같은 민족을 군인들이 함부로 죽일 수가 있느냐”며 5월 25, 26일 잇따라 집을 나가 시위대에 합류했다.

5월 26일 부모에게 ‘자취하는 친구가 걱정된다’고 말하고 도청으로 향했던 박 열사는 시민군들과 함께 부상자들을 돌봤다.

끝까지 도청을 사수하겠다며 새벽까지 도청을 지키던 박 열사는 이튿날 새벽 계엄군의 도청 진압 작전에 총탄을 맞아 숨을 거뒀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