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도심 난립 5·18 폄훼 현수막 막을 방법 사라졌다
2024년 10월 23일(수) 22:05
상위법 위반 지적에 광주시 옥외광고물 조례서 비방·폄훼 금지조항 삭제
정당현수막 이어 일반현수막도 규제 못해…왜곡세력 대처 어려워 고심

<광주일보 자료사진>

광주 도심에 5·18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폄훼하는 현수막이 걸려도 제재할 방법이 없게 됐다.

광주시가 조례에 신설했던 ‘5·18 비방·폄훼 금지’ 조항을 삭제했고, 5·18왜곡처벌법도 사실상 사문화 돼 제기능을 못하고 있어서다.

광주시는 지난 21일 ‘광주시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 조례(안)’에 대한 입법예고를 했다.

지난 8월 대법원 판결에 따라 정당현수막에 대한 5·18 비방·폄훼 금지 조항을 삭제한 데 이어 최근 일반현수막에 대한 금지 조항마저 삭제하기로 한것이다.

개정안은 기존 조례에 있던 제12조의 3 ‘정당 현수막에 대한 표시 방법’에서 5·18 비방·폄훼 금지 내용을 전부 삭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추가로 지난 8월 공고한 입법예고에서 제12조 ‘현수막의 표시방법’에 ‘누구든지 현수막 내용에 5·18민주화운동을 비방하거나 폄훼하는 내용을 표시해서는 안된다’는 조항을 신설하기로 했던 것도 삭제했다.

앞서 광주시는 지난해 12월 옥외광고물법 개정으로 정당 현수막을 행정동 당 2개 이하로 제한한 데 따라 시 조례 개정 작업에 돌입했다. 이 과정에서 ‘정당 현수막의 표시방법 등’ 조항에 ‘5·18민주화운동을 비방하거나 폄훼하는 내용을 표시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보수정당 등에서 정당현수막을 이용해 잇따라 5·18을 왜곡·비방하자, 정치적 입장을 핑계로 5·18을 폄훼하는 일을 막기 위해 조례를 만들었던 것이다.

실제로 최근 광주시와 5·18기념재단은 광주시 도심 일대에 북한군 개입설, 가짜유공자설 등의 내용을 담은 5·18 왜곡 현수막을 게시한 민경욱 전 국회의원(가가호호공명선거대한당 창당준비위원장)과 자유민주당 등을 잇따라 경찰에 고발했다. 이들이 내건 현수막은 지금도 광주시 광산구 무진대로, 서구 서창동, 북구 운암동 등지에 걸려 있다.

지난해 6월에는 광주시 동구 금남로 일대에 ‘5·18 유공자 명단 공개하고 가짜 유공자 공무원은 사직하라’는 등 내용의 현수막이 게시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7월 대법원이 “정당현수막은 상위법인 옥외광고물법 시행령에서 규격, 표시·설치 방법 등을 정하고 있으므로 광주시 조례로 제한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시 조례가 상위법을 위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광주시는 지난 8월 정당현수막에 대한 금지 조항을 삭제하기로 하고, 대신 궁여지책으로 일반현수막에 대해서라도 5·18 비방·폄훼 내용을 담지 못하도록 별도의 조항을 신설하기로 했으나 이마저도 제동이 걸렸다.

광주시는 지난 4일 광주시 자문변호사 3명으로부터 신설 조항 내용에 위법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받았다.

‘상위법에서 시 조례로 금지·제한 권한을 위임한 바 없다’는 이유로 정당현수막을 제한할 수 없다면, 일반현수막에 대해서도 광주시가 내용을 제한할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광주시 관계자는 “옥외광고물법에서 현수막 내용을 제한하는 경우는 범죄행위를 정당화하거나 음란, 퇴폐, 인종차별 등 내용에 한정되고 있으며 5·18에 대한 내용은 없다”며 “5·18에 대한 비방·폄훼를 담은 내용이라고 할지라도 시 조례로 제한하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막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밝혔다.

결국 5·18을 왜곡·폄훼하는 내용을 실은 현수막이 광주 곳곳에 내걸린 사례가 빈번했음에도, 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이 없어졌다.

일각에서는 5·18 비방·폄훼 금지를 명문화했던 시 조례를 없애는 것은 5·18 왜곡·폄훼 세력의 활동을 부추기는 꼴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더욱이 대안으로 제시되는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5·18왜곡처벌법)만으로는 난립하는 5·18 폄훼 현수막을 근절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이 법은 5·18에 대한 허위사실 유포 금지 대상으로 신문, 잡지, 방송, 출판물 등으로 한정하고 있으며, 출판물에 현수막을 포함할 수 있는지 여부가 분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고소·고발 시 처벌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데다 지난 2021년 1월 시행된 이후 4년 동안 제대로 된 처벌 사례도 없다 보니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박강배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그렇잖아도 5·18 왜곡 세력들이 매일같이 광주시 곳곳에 5·18 폄훼 현수막을 설치하는 등 갈수록 심해지고 있어 일일이 대처하기 힘든 상황인데 답답한 일”이라며 “표현의 자유라는 것도 사회적 가치와 규범을 무너뜨리지 않는 범위 안에서 인정되는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한편 광주시는 다음 달 11일까지 조례 개정안에 대한 이의 신청을 받은 뒤, 법제심사를 거쳐 시의회 심의 안건으로 상정할 계획이다.

/유연재 기자 yjyou@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