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독립영화’를 담다 <1> 제작자들의 목소리로 보는 지역영화 생태계
2024년 09월 21일(토) 18:50
독립영화 제작부터 배급까지
현직자의 생각을 확대하다

영화 ‘자전거 도둑’ 스틸컷.

1940년대 즈음 카메라의 무게가 가벼워지면서 정해진 장소가 아닌 길거리에서 촬영된 영화의 대표적인 예가 ‘자전거 도둑’이다. 이 영화는 이탈리아에서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포착한다’는 뜻의 네오리얼리즘 붐이 일어날 당시 만들어졌다. 그리고 그 흐름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다.

세트장이 아닌 실제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 한복판에서 촬영된 이 영화는, 오늘날 독립영화의 정의와 가장 가까운 예로 꼽힌다.

막대한 자본이나 고도의 기술력 없이도 제작이 가능한 영화, 그것이 바로 독립영화다.

한국의 독립영화는 시작부터 검열과 사전 심의와의 싸움을 겪으며 발전해 왔다.

1990년대까지 한국의 영화 관련 법은 일제강점기 당시 일본에서 만들어진 영화법을 그대로 차용한 것으로, 창작의 진흥보다는 관리와 검열에 중점을 두었다.

이후 여러 차례의 정권 교체와 함께 영화에 대한 인식과 의식도 변화했으며, 이러한 변화의 흐름 속에서 독립영화는 우리나라의 역사와 함께 성장해 왔다

영화산업 전반에 존폐 위기가 거론되는 요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지난 6월광주독립영화제는 성공적으로 여정을 마무리했다. 특히 올해 광주독립영화제는 지역 독립영화제 중 유일하게 영화진흥위원회 지원 대상에 선정되며 그 의미를 더했다. 단순한 지역 축제를 넘어, 독립 영화가 지역성을 초월해 보편적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광주지역의 독립영화는 어떻게 시작되었나’

광주시에서 독립영화의 발전은 1980년 광주 민주화 운동 이후, 지역의 문화적 자유와 실험이 그 필요성을 증대시켰다. 1990년대 중반, 광주문화예술회관과 광주독립영화제의 출범은 독립영화의 기초를 다졌고, 2000년대에는 독립영화관 개설과 영화제 확대가 상영 환경을 개선했다. 2010년대에는 광주 독립영화가 국제 영화제에 진출하며 인지도를 얻었고, 2020년에는 다양한 매개체에서 제작 및 상영되며 더욱 활성화됐다.

광주 지역 독립영화 사업을 위해 힘쓰고 있는 광주독립영화관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이경민(여·24)씨와 광주독립영화제 개막자 ‘내 이름’의 송원재 감독(남·37)과 지역 영화의 장점과 한계 및 독립영화관이 지역 사회에 미친 영향에 대해 이야기해 봤다.

광주시 동구 영상복합문화관 6층에 위치한 독립영화관 외관 모습. <광주독립영화관 제공>
광주독립영화관(GIFT)은 이름 그대로 ‘선물’ 같은 공간이다. 2017년 영화진흥위원회의 독립영화 전용관 설립지원 사업을 통해 문을 연 이 극장은 광주 시민들에게 다양한 영화를 선사하며, 지역 영화문화의 중심지로 자리 잡았다.

GIFT는 광주 지역의 영화 단체와 창작자들이 모인 (사)광주영화영상인연대에서 운영하고 있으며 지역 독립영화계의 발전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경민 프로그램 코디네이터 <광주독립영화관 제공>
광주에서 유일하게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광주독립영화관(GIFT)은 현재 일주일에 최대 28회차의 독립영화를 관객들에게 선보이고 있다. 이곳의 이경민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관객들에게 더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하기 위해, 매달 한 편씩 해외 예술영화를 상영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GIFT는 독립영화뿐만 아니라 예술영화를 통해 관객층을 넓히며 지역 영화 문화의 폭을 확장하고 있다.

광주독립영화관 상영관 내부 모습. <광주독립영화관 제공>
광주독립영화관이 진행하는 다양한 행사들도 주목할 만하다. 영화 상영뿐만 아니라, ‘영화학교’와 ‘비평지 발간’ 등 (사)광주영화영상인연대가 주관하는 여러 사업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다양한 행사를 기획하는 이유에 대해 이경민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는 “광주 영화 문화의 저변을 확대하는 것이 가장 큰 목표”라며 “광주에는 영화 관련 학과가 따로 없어 영화를 배우고 싶은 청년들이 수도권으로 떠나는 현실이 안타깝다. 그래서 광주에서도 영화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싶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행사를 통해 광주독립영화관은 지역 영화 문화의 허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영화산업 전반에서는 OTT 플랫폼이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상업영화뿐만 아니라 독립영화까지도 다양한 경로로 생산 및 유통되는 시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서 영화를 관람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에 대해 광주독립영화제 개막작 ‘내 이름’의 송원재 감독과 이경민 프로그램 코디네이터에게 그 필수적인 이유를 물었다.

◇‘아날로그 감성과 영화관의 매력 ? 영화관만이 주는 몰입의 경험’

이경민=요즘 젊은 세대가 추구하는 아날로그 감성이 독립영화관에는 살아 있습니다. 또 영화관은 같은 공간에서 관객들이 같은 영화를 보며 감정을 공유할 수 있다는 큰 장점이 있죠. 같은 장면에서 함께 웃고 울며, 불특정 다수와 같은 감정을 나누는 경험이 바로 영화관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송원재 감독. <본인 제공>
송원재=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OTT는 이미 관람 방식의 큰 흐름이 되었기에 이를 막을 순 없겠죠.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집에서 TV나 핸드폰으로 영화를 볼 때는 끝까지 집중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공감하실 겁니다. 영화관은 동굴처럼 오로지 영화에만 몰입할 수 있게 설계된 공간입니다. 영화가 시작되면 마치 나와 영화만이 존재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며, 집중도를 높여주죠. 이 점이 영화관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더 소중하게 여기는 작품일수록 영화관에서 보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영화의 스케일을 떠나서요.

지역영화 활성화 사업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는 지역영화인들 사이의 연대와 교류다. 특히 2024년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예산 편성 결과 지역 영화문화 활성화 지원사업의 예산이 아예 사라지면서 지역 영화인들간의 네트워크 형성이 매우 중요해졌다. ‘소속감’과 ‘연대감’은 지역영화를 제작하며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송원재=먼저 소속감과 연대감을 느끼기에는 이번 ‘내 이름’ 제작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기술스태프 (조명,미술감독 등) 섭외가 예산이 부족해 불가능했고 인건비 역시 충분치 않았기에 최대한 촬영 일정을 짧게 잡으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당연히 연출자 입장에서 좀 더 풍족하고 원하는 미장센을 구현하지 못했다는 아쉬움, 개인적으로는 스태프, 배우분들에게 죄송함이 있습니다.

어쨌든, 연대감이라는 건 나만 힘든 게 아니라는 위안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나 같은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구나 싶으면서, ‘다들 힘들구나, 나만 이상한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죠. 그러다 보면 전우애 같은 감정도 생기고, 함께 이 난관을 헤쳐 나가자는 힘도 생깁니다. 이렇게 다들 힘들어하면서도, 가끔 만나면 웃고 떠들며 재밌는 대화를 나누는 순간들이 있어요. 그게 바로 제가 소속감을 느끼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영화 ‘내 이름’ 촬영 모습. <송원재 감독 제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독립영화란’

현재 독립영화인들은 여전히 어려운 환경 속 각자의 전선에서 싸우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지원 예산 삭감, 극장의 불투명한 정산, 스크린 독과점, 홀드백 법제화, OTT 공정 분배 문제, 전국영화산업노동조합의 제안 의제 등 산업계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독립영화란 무엇인지 물었다.

이경민=우리 사회의 문화적 수준을 높이는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주변의 이야기’를 다루며 나 자신의 이야기나 가족, 친구의 이야기이며 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잘 연출하고 공들이면 어느 순간 내 이야기처럼 느껴지는 것, 그게 독립영화이지 않나 생각해요.

송원재=독립영화란 한 우물을 파는 행위와 일맥상통한다고 생각합니다. 한 주제나 감성, 메시지에 깊이 천착해서 한 우물만을 파는 매체, 겉으로 보기엔 잘 드러나지도 않고 작아서 무시하기도 쉽지만 그 깊이를 보면 놀라게 되는, 그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정경선 대학생 기자

/김진아 기자 jingg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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