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품질관리사 김대성 기자의 ‘농사만사’] 먹는 채소가 10가지도 안된다구요?
2024년 07월 29일(월) 12:00
영국 식문화 다양성 부족…한식의 위대함 새삼 느껴져

/클립아트코리아

출장으로 영국에 다녀왔다. 예상과는 달리 날씨가 좋아 편했고, 런던의 고전적인 풍경은 눈을 즐겁게 했다. 단조로운 듯하면서 담백한 음식이 시골스러운 필자의 입맛에도 맞는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그런데 영국의 음식문화 두고 안내자가 한 말에 놀랐다. “이곳 사람들은 참 불행한 것 같아요. 채소도 수산물도 먹는 게 10가지가 넘지 않아요”라는 것이다. 섬나라긴 하지만 문명이 발달한 나라치고는 음식 문화의 다양성이 부족하다는 이야기였다.

영국 전통 음식이 이렇게 단조롭고 맛없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고 한다. 근본적으로는 해안 국가로서 온난한 해류인 북대서양 해류의 영향을 받는데다 토양이 비옥하지 않아 다양한 종류의 농작물 재배하는 데 어려움이 있어서다. 과일과 채소의 다양성과 품질에 제약이 있어 영국의 음식 문화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또 역사적으로 국제 무역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었지만, 수송의 제한으로 신선한 식재료 수입이 어려웠던 점 역시 영국 음식 문화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여기에 더해 17세기 올리버 크롬웰이 이끈 청교도 혁명과 근본주의 기독교 사상 영향으로 음식문화 암흑기를 맞는데, 신앙과 근신을 중시하는 청교도의 원칙으로 맛을 즐기는 것을 향락이나 쾌락으로 보고 배격한 것이 영향을 미쳤다.

다행인 것은 그나마 18세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사람들이 도시로 이동하게 됐고, 이에 따라 음식 문화에도 큰 변화가 생겼다. 바쁜 도시 생활로 인해 전통 요리가 소멸하고 대신에 빠르게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인기를 얻게 되면서 ‘피시 앤 칩스’와 같은 간단한 요리가 국가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는 점이다. 또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을 건설하면서 세계 각국에 맛있는 요리를 마치 자국의 음식처럼 다양하게 들여왔으며, 이로 인해 맛있고 저렴한 외국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게 됐다.

일상으로 먹는 식문화의 다양성으로 치면 중국을 제일로 꼽지만, 농산물을 비롯한 식재료의 다양성을 따지고 들면 우리나라도 만만치 않다. 비빔밥과 불고기, 김치찌개, 떡볶이, 잡채 등 공식적으로 분류하는 한식만도 수십 가지며 여기에 사용되는 재료만도 족히 1만 종이 넘을 것이다. 이는 한국과 외국을 오가는 항공편의 기내식 종류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항공편에 따라 조금은 다르지만 , 기내에서 제공되는 한식 메뉴는 사슬적과 콩국수, 비빔밥, 죽요리, 북어국, 곤드레나물밥, 제육쌈밥, 김치볶음밥, 돼지불고기, 도토리묵밥, 명란 김치 콩나물국 등 15종에 달한다. 여기에 비건식까지 더하면 한식은 20여 종에 육박한다.

이처럼 세계인을 사로잡은 한식의 인기 저변에는 품질 좋은 농산물 등 수많은 식재료를 공급할 수 있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기술력이 있다. 식재료의 범위가 밭에서 재배하는 채소 외에 야생에서 자라는 초목의 잎ㆍ열매ㆍ씨앗ㆍ버섯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다는 점은 특징이자 장점이다. 삼면이 바다로 되어 있어 바다에서 채취하는 풍부한 해조류도 한식의 주재료로 사용되고 있는 것도 강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들 음식 맛없다고 하는 나라에서 입맛에 맞았다고 하는 건 좀 이상하기는 하지만,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식재료의 다양성을 보면 그 나라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어서다.

이번 여정에서 영국의 주식재료로 쓰이는 농산물을 살펴보면서 농업의 변화와 함께 그 중요성도 더욱 명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더불어 지속 가능한 식생활은 개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지구 전체의 건강에도 연결되어 있다는 점과 이를 고려하면서 식재료를 선택하는 현명한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해야한다는 생각도 했다.

/big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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